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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목나무와 매미 Apr 27. 2024

독특한 문체로 써 내려간 장기 이식의 24시간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열린책들, 2023)를 읽고

 19살의 건강한 청년, 시몽 랭브르는 친구들과 함께 서핑하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한다. 무반응 코마 상태. 기계 장치에 의존하여 숨은 쉬고 심장은 뛰고 있지만 의식이 돌아올 가능성이 희박한 상태다. 시몽의 장기 이식을 둘러싸고 시몽의 부모님인 숀과 마리안, 장기 기증 코디네이터 토마 레미주, 소생의학과 의사 피에르 레볼 등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펼친다.


 책을 처음 읽으면 독특한 문체에 당황하게 된다. 일반 소설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희곡 같기도 하고 이야기꾼이 청자에게 전지적 시점에서 설명하는 듯하기도 하다. 배경 묘사가 섬세하고, 등장인물들의 사연을 자세히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는 더 멀어지기 전에 늘 그러기를 즐겨 왔듯이 해안가를 돌아본다. 푸르스름한 여명에 잠긴 검은 등딱지 같은 육지가 저기, 길게 늘어져 있다.

18쪽


 첫 만남에서 독자를 당황시키는 서술 방식은 책을 읽을수록 그 가치를 발휘한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흡입력이 생기고 몰입하게 된다. 이름이 소개되는 인물들을 허투루 등장시키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시몽의 부모님인 숀과 마리안의 이야기, 시몽의 여자친구인 쥘리에트와 시몽의 시간들, 토마 레미주의 과거와 현재 등.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얽힌 등장인물들의 사연을 읽다 보면 지금 그들이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가 된다. 토마 레미주가 왜 시신을 염하면서 노래를 부르는지, 숀이 왜 시몽의 눈만은 절대 기증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지 등을 그들의 입장에서 상상할 수 있다.


 이 책의 소재는 장기 기증이다. 장기 기증의 과정을 병원 안팎을 넘나들면서 자세하게 묘사한다. 자연스럽게 장기 기증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면서도 독자의 머릿속에는 '내가 숀과 마리안이었다면 장기 기증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내가 장기 이식 대상자라면 어떤 기분일까?' 등의 장기 기증과 관련된 물음이 자리 잡게 된다. 장기 기증자 유족의 입장, 수혜자의 입장 등을 계속 떠올린다. 이와 동시에 장기 기증과 관련된 사회적 이슈들도 알 수 있다. 토마가 숀과 마리안에게 장기 기증을 설명할 때 나오는 프랑스의 법률이라든지, 시신을 존중하지 않고 장기 저장고처럼 생각하는 의사들은 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장기 기증을 두려워하는지를 간접적으로 설명한다.


예를 들어, 장기 기증 거부 국가 대장에 이름을 등록하지 않은 경우 동의 추정 원칙을 채택하게 되어 있다는 법을 들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152쪽
심장외과의들과 흉부외과의들이 좀 더 길게 혈관을 잘라 가려고, 혹은 폐동맥을 몇 밀리미터나마 추가로 더 얻어 가려고 다툰다.

298쪽

이는 기증자를 끝까지 존중하는 토마 레미주와 극명히 대비된다. 토마는 유족들의 부탁대로 시몽에게 가족들의 사랑을 전해주고, 마지막까지 예의를 갖추어 염을 한다. 장기 기증자와 그 유족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전 장기 기증과 관련된 논란이 있었다. 장기 기증자와 그 유족들을 적절히 대우해 주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그 후 대우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장기 기증률은 다른 나라에 비해 낮다. 이 책에서 드러난 장기 기증 유족의 입장, 장기 기증 수혜자의 입장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나라의 장기 기증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수 있었다. 장기 기증은 꼭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마 레미주가 지적한 것처럼 "장기가 부족한 상황에서 법에 의해 그 정당성을 강화해 가며 우격다짐으로 밀고 나가는 현행 절차"(153쪽)의 형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충분히 가족을 잃은 유족의 슬픔에 공감하고, 그들을 설득 시킨 다음에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 가는 길까지 온전하고 아름답게 배웅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장기기증률이 더 높아지지 않을까?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0/20/201710200223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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