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난징에 방문했다. 원래 목적은 난징에 있는 위안부 기념관이었다. 일본의 위안부 사실을 최초로 증언한 고 김학순 할머니가 고초를 겪었던 곳을 직접 방문해 보고 싶었다. 난징에 간 김에 교과서에서 보던 난징 대학살 기념관도 함께 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역사 박물관' 정도로만 생각했던 난징 대학살 기념관에서 난징 대학살의 참상을 알게 되었다. 기념관의 끝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前事不忘, 后事之师
<战国策>
중국의 고서인 <전국책>에 나오는 말로 '이전의 일을 잊지 말고, 미래의 스승으로 삼으라'라는 뜻이었다. 아이리스 장의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원제 : <난징의 강간>)(미다스북스, 2014)는 이 글귀에 꼭 맞는 책이었다.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는 일본군이 난징을 점령한 1937년부터 단 몇 달 동안 벌어진 참상들을 파헤친다. 생존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난징안전지대의 서양인들이 남긴 일기와 그들의 증언을 통해 당시의 끔찍했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재미 삼아 중국인들의 목 베기 시합을 했던 일본군들, 산을 이룬 중국인들의 시체와 그 시체를 파먹어 살이 오른 들개들, 윤간 당한 약 8만 명(추산)의 여성들과 고통받았던 가족들 등, 일본군이 자행한 잔인하고 잔학했던 일들이 서술되어 있다.
난징 대학살의 과정을 살펴보면서 우리에게는 비교적 친숙하지 않은 '난징안전지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중국인들에 비해 비교적 신변을 보장받을 수 있었던-물론 이들도 고초를 겪었으며 심한 경우 총, 칼에 맞기도 했다-서양인들은 국제안전기구를 만들어 많은 중국인들을 돕기도 했다. 참혹했던 현실 속에서 그들이 보여준 온정과 정의는 일본군들의 잔혹함과 비교된다. 동시에 이런 상황에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인류애를 느끼게 해준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역사를 잊으려는 세력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들려준다. 아이리스 장의 비판은 난징 대학살 희생자 후손의 입장에서 하는 비판에 그치지 않는다. 책의 전체와 마찬가지로 여러 사료들에서 그 근거들을 조목 조목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난징 대학살은 중국인들의 날조다', '조선 위안부들은 창녀들이었다' 등의 망발을 일삼는 일본 극우 세력의 주장에는 국제 안전 기구의 수장이었던 존 라베의 일기와 기자들의 기사, 사진 등을 이용해 반박한다. 더 나아가 소련에 대한 견제로 일본의 만행을 외면했던 미국의 태도도 함께 비판한다. 주도적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세력뿐만 아니라 이에 동조하는 세력까지 밝힘으로써 아이리스 장은 많은 젊은 일본인들의 잘못된 역사 인식으로 얼룩져 있는 지금의 상황이 누구 잘못인지를 날카롭게 보여준다.
난징 대학살 기념관을 방문했을 때, 예상을 뛰어넘는 잔인함에 하루 종일 입맛이 없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간접적으로 경험한 난징 대학살의 끔찍함은 기념관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객관적인 증거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여전히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더 나아가 수많은 여성들을 강간하거나 민간인을 학살한 일들이 '전쟁 중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합리화를 한다.
푸틴의 러시아 침공 과정에서 일어난 잔학 행위, 많은 민간인들에게서 인간의 존엄성을 빼앗고 있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 등등. 여전히 세계에서는 인간이 인간이길 포기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 가해자들은 항상 같은 변명을 한다. "전쟁 중에/위급 시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말이다. 똑같은 비인간적인 역사가 반복되는 이유는 과거의 일을 필사적으로 잊고, 현재에도 되풀이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