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소용돌이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 줄 알아?" 도담이 해솔을 보며 물었다. "어떻게 해야 되는데?" "수면에서 나오려 하지 말고 숨 참고 밑바닥까지 잠수해서 빠져나와야 돼."
32쪽
어느 날, 도담의 아빠 창석과 해솔의 엄마 미영의 시체가 나체로 끌어안은 채 발견된다. 작은 마을이던 진평에서는 이를 두고 불륜이니 아니니 소문이 돌고, 연인 사이던 고등학생 도담과 해솔은 헤어지게 된다. 시간이 흐르며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한다. 둘은 이어질 수 있을까?
급류(표준국어대사전)
1. 물이 빠른 속도로 흐름. 또는 그 물.
2. 어떤 현상이나 사회의 급작스러운 변화를 이르는 말.
<급류>(민음사, 2023)은 그야말로 급류에 휘말린 도담과 해솔의 사랑을 그린다. 각자의 아빠와 엄마가 끌어안은 채 사망한 사건은 어린 도담과 해솔에게 큰 상처를 남긴다. 도담과 해솔은 상처를 끌어안고 각자의 방식으로 바닥까지 가라앉는다. 도담은 사건이 없었던 것처럼 살아가고자 하지만 쉽지 않다. 자신을 보듬어주지 않는 엄마 옆에서 도담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을 망가뜨리는 일이었다. "어떻게 하면 너를 더 괴롭게 할까 연구하는 애"처럼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자해하면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파괴했다.
반면 해솔은 오히려 더 나태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도담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명을 위한 희생이라는 가치 안에서" 해솔 역시 자기 자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물속으로, 불구덩이 속으로, 자신을 희생해서 사람들을 구하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죗값을 치른다는 생각으로 위험한 곳으로 달려들었다.
해솔과 도담은 저마다의 급류 속에서 허우적댔다. 도담은 사람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 거리를 뒀다. 해솔은 겉으로는 괜찮았지만 다른 사람과 진심으로 관계를 맺지 못했다. 각자 밑바닥을 찍은 다음에야 둘은 상처를 직시할 수 있었다. 해솔은 도담에게 그동안 하지 못했던 고백을 할 수 있었고, 도담은 진평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상처를 마주하고 비로소 둘은 서로에게 닿았다.
얼핏 읽으면 신파극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부모의 불륜과 그로 인한 사랑의 위기, 서로의 상처로 상대방에게 아픔을 주는 관계. 주말 드라마에서 주로 쓰이는 전개다. 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으로 아쉬운 점을 쓸어내렸다. 바로 몰입감이다. 책을 한 번 펼쳐 든 순간 급류에 휩쓸리는 것처럼 등장인물들에 이입하게 된다. 300쪽 정도 되는 책의 분량을 잊고 단숨에 책을 읽게 된다. 주인공들의 감정선을 세심하면서 속도감 있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도담, 해솔과 함께 급류에 빠졌다 나온 느낌이 드는 만큼 앞으로 더 단단할 둘의 관계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