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거북이>(지만지드라마, 2019)를 읽고
다윈의 거북이
2019년, 호주 동물원에서 한 거북이가 숨졌다. 이 거북이의 사망 소식은 전 세계에 보도됐는데 이 거북이가 이렇게 유명한 이유는 그가 찰스 다윈이 1835년 갈라파고스를 탐사할 때 데려온 거북이 중 한 마리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암컷으로 확인된 이 거북이는 중간에 해리에서 해리엇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대표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가 쓴 <다윈의 거북이>(지만지드라마, 2019)는 이 해리엇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역사적 공백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
<다윈의 거북이>는 해리엇이 역사학자를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해리엇은 "사람들은 과거 문제로 서로 죽이기까지 하는"(14쪽) 시대에서 자신의 기억이 보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해리엇은 역사학자에게 자신의 기억을 들려준다. 역사학자 사이에서 의견 분분한 요한 바오로 1세의 죽음, 스탈린과 트로츠키 사이의 관계 등을 들려줄 때 작가는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한다. 역사의 공백이 작가의 풍부한 문학적 능력으로 흥미롭게 채워진다.
역사란 무엇인가
작가는 역사의 빈 페이지를 채워 넣으면서 우리에게 묻는다.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학자는 역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해리엇 부인, 역사는 과학입니다. 객관적이란 말입니다!
62쪽
역사는 객관적이라고 볼 수 있는가. 흔히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승자들은 패자의 기록을 지우거나 자신의 입장에 유리하게 재단하기 때문이다. 해리엇과의 대화에서도 이런 점이 드러난다. 작가의 상상이긴 하지만 스탈린에게 숙청당한 쌍둥이, 처형당한 드레퓌스 대령 등을 역사는 기억하지 않았다. 반면 해리엇은 시간의 모든 장면에 있었던 사람들을 역사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역사예요. 역사야말로 그런 것에 대한 거죠! 탈주병의 목숨을 살려줬을 때 뮐러 대위의 떨리는 손, 무솔리니의 머리를 정육점 쇠고랑에 거꾸로 매달았던 저항군 마촐라의 번뜩이는 눈...
28-29쪽
인간은 진화했는가
해리엇을 두고 역사학자, 의사, 역사학자의 부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치열하게 궁리하고 다툰다. 셋은 인간의 입장에서 해리엇을 자신의 소유로 여기거나 돈벌이의 수단으로 느낀다. 이들의 해리엇에 대한 관점은 인간 중심주의의 단편을 보여준다.
교수: (전략) 어찌 됐든 인류는 뭔가 더 좋은 것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인류는 발전하고 있다고요!
(중략)
해리엇: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난 인류가 뭔가를 배우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30쪽
하지만 해리엇에 의하면 인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할 뿐이다. "어느 순간이 되면 인간은 짐승 수준으로 퇴화한다."(95쪽)
난 그때부터 새로운 걸 본 게 없어요. 보스니아, 르완다, 쌍둥이 빌딩, 이라크, 레바논...... 다 똑같이 무시무시해요. 진화는 인간 폭탄에서 절정을 이루죠.
88쪽
유명한 표현이지만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했다. 이는 민족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에게도 적용된다. 그동안 저질렀던 수많은 전쟁, 환경파괴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달라지지 않는다면 인류에게는 미래가 없을 것이다. <다윈의 거북이>는 해리엇의 시선을 통해 인간이 그동안 그려온 궤적에 대해 생각해 보고 반성해 볼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