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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목나무와 매미 Oct 11. 2022

고생 끝에 마주한 풍경 : 라가주오이, 친퀘토리

할 수 있다, 부모님과 유럽여행 Log 4

파쏘 가르데나

 돌로미티 서부에서의 첫날. 구불구불한 파쏘 가르데나(Passo Gardena)를 지나 라가 주오이(Lagazuoi) 산으로 향했다.


"지나가다가 어디 멋진 곳 있으면 세워서 보고 가자."


 어제 즉흥적으로 올라간 사쏘 룽고가 마음에 들었는지, 아부지는 지나가는 길에 풍경이 좋은 곳이 있으면 관광하고 가자고 말씀하셨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예정에 없던 치르(Cir) 산군을 볼 수 있는 케이블카를 탔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과 회색 산, 초록색 풀밭이 눈앞에 펼쳐졌다.  넓은 초록색과 더 넓은 초록색이 눈의 피로를 씻어 주었다.

 짧은 관광을 마치고 라가주오이로 향했다. 라가주오이는 암페쪼(Ampezzo) 국립 자연공원에 있는 산으로 돌로미티를 파노라마 뷰로 감상할 수 있다. 한쪽으로는 거대한 암석산들 사이의 구불구불한 길들이 보인다. 끝없이 펼쳐진 산들의 모습, 산들을 유유히 지나다니는 서양 고전 회화 속에서 볼 법한 구름들, 자연과 최대한 조화를 이루어 낸 길들. 압도적인 풍광에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아부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와........ 풍경이 깡패다, 깡패야."

넓게 펼쳐진 절벽들을 자세히 보면 크고 작은 구멍들이 뚫려있다. 제1차 세계 대전 때 이탈리아가 헝가리-오스트리아와 전쟁을 벌일 때 만들어놓은 참호들이다. 참호들 안에 들어가서 잠시 당시의 상황을 상상해봤다.


 아주 추운 겨울날이다. 산속의 겨울은 로마, 밀라노보다 훨씬 혹독하다. 날이 맑다가도 바로 눈보라가 몰아친다. 적군들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서는 해발 3,000미터 가까이 되는 절벽들에 참호를 뚫어야 한다. 가지고 있는 장비는 신통치 않다. 곡괭이, 삽, 못과 망치 등이다. 줄에 의지해서 절벽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 어제는 나폴리에서 온 동료가 눈보라 속에서 참호를 파러 올라가다가 떨어져 죽었다. 적들보다 더 무서운 건 눈앞의 창백한 절벽들, 코와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칼바람이다.


 1910년대에 변변한 장비도 없이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신념만으로 절벽을 올랐을 이탈리아 군인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3년 동안의 전쟁 끝에 그들은 이 산을 지켜냈고 지금의 라가주오이 산장 앞에는 이탈리아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라가주오이는 "깡패 같은 풍경"으로 해마다 엄청난 양의 관광객들과 수입을 불러들인다.  


 "라가주오이 산장의 밥이 그렇게 맛있대!"


 엄마가 이야기를 했다. 산에 다니는 3일 동안 도시락을 싸들고 다녔던 우리는 라가주오이에서 만큼은 꼭 산장에서 점심을 사 먹기로 한국에서부터 결심했다. 우리는 세 가지 뇨끼, 알리오 올리오, 슈니첼을 시켰다. 알리오 올리오는 정말로 맛이 없었다. 마늘 향은커녕 올리브 오일도 충분하지 않아 정말 삶은 스파게티면을 먹는 느낌이었다. 밍밍하고 퍽퍽하고 아무런 맛이 없어서 얼마 되지 않는 뇨끼 소스에 찍어 먹어야 했다. 세 가지의 뇨끼는 맛있었다. 꾸덕꾸덕한 치즈 소스와 쫀득쫀득한 뇨끼의 식감이 잘 어울렸다. 슈니첼은 원래 독일어권에서 주로 먹는 음식으로 얇은 돈가스와 비슷하다. 슈니첼 역시 바삭바삭하고 맛있었다. 텁텁한 알리오 올리오의 맛을 맥주로 씻어내고 다음 목적지인 친퀘 토리(Cinque Torri)로 향했다.

친퀘 토리 위키피디아에 들어가면 가장 윗줄에 이런 설명이 있다.


"친퀘 테레(Cinque Terre)와 헷갈리지 마세요."


 밀라노 남쪽의 해변 마을인 친퀘 테레와 헷갈리는 이름을 가진 친퀘 토리는 '5개의 탑'이라는 뜻이다. 5개의 암석이 탑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친퀘 토리 역시 많은 사람들이 돌로미티에서 가장 멋진 경험으로 뽑는 곳 중 하나여서 가기 전에 기대를 많이 했다. 하지만 막상 올라간 우리는 큰 감명을 받지 못했다. 주변의 산들과 어우러지지 못한 5개의 돌덩이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친퀘 토리의 풍경을 더 잘 감상하기 위해서는 왕복 약 2시간의 트레킹을 해야 한다는 말을 믿고 발을 뗐다.

 친퀘 토리 케이블카에서 누볼라우(Nuvolau) 산장까지 가는 길은 험난했다. 경사가 급하지는 않았지만 길이 따로 없는 데다 바닥이 작은 자갈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발을 단단히 딛지 않으면 미끄러졌다. 울퉁불퉁한 바닥에 힘을 주어 걸으니 힘이 배로 들었다. 몇십 년간의 등산으로 다져진 아부지도 힘이 든다고 이야기하실 정도였다. 속으로 욕을 여러 번 하며 한 시간 만에 누볼라우 산장에 도착했다.

 절벽의 꼭대기에 있는 누볼라우 산장에서는 360 º로 누볼라우 산군과 라가주오이 산을 바라볼 수 있다. 가까이서 봤을 때는 거대한 돌덩이였던 친퀘 토리도 누볼라우 산장에서는 조그맣게 보였다.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들이 햇빛을 받아서 빛났고 그 위를 구름 그림자들이 지나갔다.

 누볼라우 산장에서 다시 올록볼록, 먼지가 폴폴 나는 자갈길을 걸어 내려왔다. 손톱만큼 작았던 친퀘 토리는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 생겼다. 2시간 트레킹을 하고 내려오니 그저 5개의 큰 돌덩이였던 친퀘 토리가 갑자기 웅장하고 멋있어 보였다. 누볼라우 산장에서 봤던 산군들의 파노라마보다 우두커니 놓여 있는 5개의 큰 돌들이 더 성대해 보이기까지 했다. 똑같은 돌들인데 왜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의 느낌이 다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친퀘 토리를 보기 위해 들였던 노력의 차이였던 것 같다. 힘을 들이지 않고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와서 친퀘 토리를 봤을 때보다 기를 써서 올라갔다 내려온 후에 본 친퀘 토리가 더 멋졌던 것이다. 거창하게는 영토, 성공 작게는 풍경, 내 마음의 안정까지 무엇이든지 얻기 위해 노력했을 때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저녁을 먹으면서 아빠가 이야기했다.


"엄마가 누볼라우 산장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걸 보니 아직까지는 우리가 해외여행 다닐 만 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


 하지만 누볼라우 산장까지의 트레킹이 힘들기는 했다. 원래 무릎이 좋지 않았던 엄마는 숙소에 돌아와서 파스를 붙여야 했다. 아직 돌로미티의 핵심인 트레치메 트레킹이 남았기에 엄마의 다리를 정성껏 마사지했다.




뽀제이 엄마의 여행 팁


1. 라가주오이 산장에 올라갈 때에는 팔자레고(Falzalego) 7 주차장에, 친퀘 토리에 올라갈 때에는 팔자레고 3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면 된다. 

2. 친퀘 토리와 주변의 산군들을 함께 감상하고 싶다면 아베라우(Averau) 산장에 먼저 들러서 잠시 쉬었다가 누볼라우 산장으로 올라가는 트레킹 코스를 택하면 된다. 

투제이 실무의 여행 팁


1. 라가주오이 산장에서 점심을 먹고 카드로 계산을 할 때에는 산장 안에 들어가서 테이블 번호를 말하고 계산해야 한다. 현금은 직원이 직접 받는다. 

2. 라가주오이 산장의 뇨끼와 슈니첼은 맛있었는데 알리오 올리오는 정말 맛이 없다. 더군다나 시키기 위해서는 2인분을 기본적으로 시켜야하니 다른 메뉴를 시키자. 

3. 누볼라우 산장과 아베라우 산장의 화장실은 상태가 매우 좋지 않으니 화장실은 친퀘 토리 케이블카에서 내리자마자 이용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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