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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목나무와 매미 Oct 03. 2022

날씨는 언제나 흐린 뒤 맑음 : 세체다, 사쏘 포르도이

할 수 있다, 부모님과 유럽 여행 Log 3

"오히려 구름이 있어서 더 신비로워 보여."


 세체다 구경을 뒤로하고 내려오는 케이블카에서 아부지가 말씀하셨다. 세체다(Seceda)산은 많은 사람들이 돌로미티의 절경 1순위로 뽑는 유네스코 자연문화유산이다. 구글 지도에 세체다의 봉우리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 "Seceda Famous View"로 표시가 되어있을 정도다. 세체다에 대한 기대를 잔뜩 품고 케이블카를 탔다.

 케이블카에서 내렸는데 세체다 봉우리 근처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그 유명한 세체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내리자마자 펼쳐지는 파란 하늘 밑의 세체다 봉우리가 나를 맞이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어깨가 축 처졌다. 10분마다 바뀌는 것이 산 위의 날씨라는 말을 위안으로 삼고 트레킹을 시작했다.

 산들 사이를 트레킹 하며 돌로미티 산의 다양한 모습들을 마주쳤다. 져버린 풀들과 꽃들 사이로 한 송이씩 피어있는 야생화들을 볼 수 있었는데, 시기를 놓쳐 핀 덕분에 우리가 볼 수 있어 작은 야생화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한창 트레킹을 하던 중 풀을 뜯고 있는 소를 만났다. 우리가 지나가야 할 길 바로 위에서 풀을 먹고 있는 소에게 말을 걸었다. "소님, 지나가게 길 좀 비켜주세요." 검은색의 순하고 큰 눈을 가지고 있는 소는 우리를 한 번 힐끔 보더니 순순히 길을 내주었다.  

 트레킹을 마치고 다시 세체다 산 봉우리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올라왔다. 처음에 도착했을 때보다는 구름이 많이 걷혔지만 그래도 꼭대기에는 구름이 걸려있었다. 산 봉우리의 건너편 마을에는 구름 사이로 햇빛이 내리쬐었기에 근처를 산책하며 조금 기다려보기로 했다. 30분, 40분이 지나도 꼭대기는 얼굴을 쉽게 보여주지 않았다. 다음 일정이 있었기에 계속 뒤를 돌아보며 세체다에서 내려왔다.

 내려오니 세체다에서 보았던 회색 구름들은 하얀 구름들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감질나게 보였던 파란 하늘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인 사쏘 포르도이(Sass Pordoi)에 가기 위해서는 산들 사이에 난 구불구불한 길, 파쏘 가르데나(Pass Gardena)를 통과해야 했다. 파쏘 가르데나를 지나다 보니 돌로미티의 산들이 펼쳐진 곳이 나왔다.

 돌로미티의 산들을 보며 점심을 먹기로 했다. 바람이 많이 불어 날씨는 추웠지만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먹는 점심은 꿀맛이었다. 점심을 먹은 후 우리는 사쏘 포르도이에 도착했다. 사쏘 포르도이는 돌로미티의 테라스라고 불린다. 사쏘 포르도이에 올라가면 한 편으로는 외계행성에 온 듯한 하얀 세상이 펼쳐진다. 파란 하늘로부터 쏟아진 햇빛이 돌들에 반사되어 더 하얗게 보였다. 백운암이라는 돌로미티의 이름에 가장 어울리는 곳이었다.

 하얀 산들에서 고개를 돌리면 사쏘 포르도이가 돌로미티의 테라스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셀라산군(群), 사쏘 룽고(Sasso Lungo), 돌로미티의 최고봉인 마르몰라다 등과 꼬불꼬불한 길들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하얀빛을 뿜는 사쏘 포르도이에서 내려와 사쏘 룽고로 향했다. 사쏘 룽고로 올라가는 케이블카는 다른 케이블카와 다르다. 두 명씩만 탈 수 있는데 좁은 데다 속도도 빨라 달려가면서 타야 한다. 탑승 자체가 스포츠다. 전화부스 케이블카, 관짝 케이블카로 불린다.

 좁고 작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니 두 봉우리 사이로 파쏘 가르데나가 보였다. 좀 더 둘러보고 싶었지만 갑자기 바람이 불면서 비가 후드득 내리기 시작해 사진만 찍고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일정을 마치고 저녁거리를 사기 위해 근처 마트로 향했다. 사슴고기 소시지, 다양한 종류의 치즈, 돌로미티를 대표하는 귀여운 조각이 올려져 있는 사탕 등 보는 재미가 있었다.

 마트를 보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갑자기 하늘이 검은색으로 변하더니 구슬만 한 우박이 쏟아졌다.  산악지역의 변화무쌍한 날씨를 체험해볼 수 있었다.

 언제 다시 올 지 모르는데 세체다의 하늘이 흐려 아쉬웠다. 장소를 옮겨 가서도 세체다는 지금 날씨가 어떨지 한편으로 계속 궁금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아빠 말씀대로 날씨가 흐린 대신 흐린 대로의 멋이 있었다. 봉우리에서 연기가 나는 것처럼 흘러가는 구름은 맑은 날이었다면 보지 못했을 장관이었다. 또 이후에 파쏘 가르데나와 사쏘 포르도이에서 본 맑은 하늘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인생에 비유하곤 한다. 우여곡절이 많은 여정 자체가 인생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이야기한다. 여행의 날씨 역시 여행을 하며 인생을 떠올리게 하는 요인 중 하나로 생각한다.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오면 여행을 망쳤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날씨가 좋지 않으면 좋지 않은 대로 추억이 생긴다. 또 흐린 날이 있으면 맑은 날도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흐린 세체다와 맑은 사쏘 포르도이, 비가 오던 사쏘 룽고 역시 나름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뽀제이 엄마의 여행 팁

세체다와 알페 디 시우시는 모두 오르티세이에서 케이블카를 탈 수 있다. 일정 조절을 잘 하면 하루 안에 두 곳 모두 관광할 수 있으니 날씨와 트레킹 시간을 잘 맞춰보자.   

보통 여름 세체다에서는 세체다 케이블카 - 피에르론지아 산장(Malga Pierlongia Alm) - 세지오비아 페르메다(Seggiovia Fermeda) 케이블카로 트레킹을 한다.   

세체다 케이블카를 타는 곳 아래에 여러 곳의 주차장이 있는데 가격이 조금씩 다르니 내려서 비교해보고 주차장을 들어가자.   

투제이 실무의 여행 팁

파쏘 가르데나를 지나가다보면 풍경이 멋진 곳에 피크닉 테이블들이 자리하고 있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파쏘 가르데나의 피크닉 테이블에서 웅장한 전경들을 보며 점심을 먹어보자.   

돌로미티에는 여러 브랜드의 슈퍼마켓이 있는데 오르티세이 근처에는 Selva di Gardena의 DESPAR가 가장 크다. 다양한 물건을 사야한다면 이곳에 들려보자.   

구불구불한 파쏘 가르데나와 파쏘 셀라 차도에는 중앙선도 없고 급커브에 반사경이 없다. 여기에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으니 항상 조심하면서 운전해야 한다.

산악지역의 변화무쌍한 날씨를 피하고 싶다면 구글에 '내가 갈 목적지+웹캠'을 검색해보자. 실시간 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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