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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목나무와 매미 Oct 18. 2022

서로 다른 취향 : 트레치메, 브라이에스 호수

할 수 있다, 부모님과 유럽여행 Log 5

 트레 치메(Tre Cime di Lavaredo)는 3개의 봉우리라는 뜻이다. 돌로미티에 다녀온 많은 사람들은 트레 치메를 인생 여행지로 뽑는다. 한 여행객은 트레 치메를 먼저 본 후 세체다에 갔더니 세체다가 너무 보잘것없어서 실망했다고 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우리나라식으로 표현하자면-돌로미티 제1경으로 뽑는 트레 치메는 그 명성만큼 항상 사람들로 북적북적하다. 우리도 트레 치메를 보기 위해 다른 날보다 일찍 일어나 차를 탔다. 

  트레 치메를 한 바퀴 도는 트레킹은 아우론조(Auronzo) 산장의 주차장에서 시작한다. 서둘렀지만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아우론조 주차장에 가지 들어가지 못하게 차량을 통제하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우리는 좀 더 떨어진 미주리나(Misurina) 호수 근처 주차장에 차를 댔다. 여기조차도 차를 댈 곳이 많지 않아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미주리나 주차장에 겨우 주차를 하고 주차장과 아우론조 산장을 왕복하는 버스를 타러 갔다. 버스 티켓을 사는 데 1시간, 버스를 타는 데 1시간이 걸릴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이 끝나고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5분 정도가 지나자 엄청 큰 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버스를 타고 약 20분 만에 아우론조 산장에 도착했다. 산장에서부터 트레치메의 거대함이 느껴졌다. 트레치메의 반대편에는 깊고 넓은 골짜기 사이로 아우론조 호수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보라색의 부처꽃이 풍경 곳곳을 장식했다.  

 양쪽의 서로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는 풍경들을 보며 101번 코스를 따라 트레킹을 시작했다. 아우론조 산장에서 라바레도(Lavaredo) 산장까지는 평탄한 길이었다. 문제는 라바레도 산장에서 로카텔리(Locatelli) 산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하얀 백운암 자갈들이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깔려 있었다. 해발고도 2300m가 넘는 길을 40분 넘게 걸어가려니 절로 숨이 찼다. 


 헉헉거리며 도착한 로카텔리 산장. 트레 치메 3개의 봉우리가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꽃들과 회색, 황토색이 섞여 있는 봉우리들이 대비되면서도 묘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웅장하고 거대한 봉우리들을 마주 보고 점심을 먹었다. 시각이 음식의 맛에 영향을 준다더니, 광활한 풍경을 보며 먹는 점심은 더 맛있었다. 서늘한 산 위에서 먹는 컵라면의 맛은 말할 필요도 없이 최고였다.  

점심을 배불리 먹은 후 다시 트레 치메를 마주하며 아우론조 산장으로 돌아왔다. 트레킹을 하며 트레 치메를 3시간 가까이 보고 있으니 트레 치메가 뇌의 한 구석에 콕 박힌 느낌이었다. 

 트레킹을 마치고 브라이에스(Lago di Braies/Pragser Wildsee) 호수를 찾았다. 여름의 브라이에스 호수는 뒤의 험준한 암석 산과 그 앞의 영롱한 옥색 호수가 아름다워 인기가 많다. '알프스의 진주'라고 불릴 정도다. 관광객의 사랑을 듬뿍 받아 오후 4시까지는 차량을 통제하고 주차료도 1시간에 20유로(약 28000원)로 비싸게 부과한다. 브라이에스 호수에 가면서 도비아코 호수, 뒤렌제 호수 등 크고 작은 여러 호수들을 봤다. 바람이 불지 않아 각각의 호수들은 저마다 다른 돌로미티의 반영을 담고 있었다. 호숫가에서 느긋하게 앉아 책을 읽거나 모래놀이를 하는 사람들을 보며 브라이에스 호수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하지만, 브라이에스 호수에 도착한 우리는 실망했다. 사람이 하도 많아 호수는 물 반, 배 반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많은 배들 때문에 호수에는 멋진 산들의 반영이 비치지 않았다. 햇볕도 들지 않아 호수는 옥색보다는 탁한 청록색이었다. 심지어 호수 근처에서는 물 비린내도 났다. 수영복을 챙겨 왔어야 하는 게 아니냐며 이야기했던 우리는 주차비를 아까워하며 1시간도 있지 않고 다시 차를 돌려 나왔다. 

 돌로미티에서의 마지막 밤을 기념하며 저녁은 코르티나 담페쪼(Cortina D'ampezzo)에서 외식을 하기로 했다. 코르티나 담페쪼는 돌로미티 동쪽 여행의 베이스캠프가 되는 도시다. 2026년 동계 올림픽이 열릴 도시기도 하다. 코르티나 담페쪼는 운치 있는 알프스의 작은 마을이었다. 스위스 양식의 낮은 집들을 색색의 꽃으로 꾸며 아기자기하고 예뻤다. 

 구글 지도를 보니 한국 여행객들이 "유럽에서 먹은 피자들 중 최고"라며 극찬을 한 피쩨리아가 보였다. 코르티나 담페쪼의 가장 번화한 광장에 자리한 피자집에서 우리는 그동안의 여행을 회상하며 저녁을 먹었다. 고생한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디저트로 사과 슈트르델(Strudel)까지 주문했다.  

 오늘 여행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사람들이 꼭 가보라고 한 곳은 다 가 본 여행'이었다. 돌로미티 제1경 트레치메, 돌로미티 호수 중 가장 아름답다는 브라이에스, 코르티나 담페쪼에서 가장 맛있다는 피자집. 풍광들은 다 멋졌고 음식도 맛있었다. 하지만 여행이 끝난 후 우리 가족 중 트레 치메를 최애(가장 좋아하는)로 뽑은 사람은 없었다. 아빠는 구름이 가득했던 세체다가 광활해서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엄마, 나, 동생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날씨 아래서 즐겼던 알페 디 시우시가 가장 좋았다. 

 여행은 개인의 경험, 시각에 따라 다가오는 게 다르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색에 따라서도 여행은 전혀 다르게 기억될 수도 있다. 감성에 살고 감성에 죽는 동생은 비가 오는 날 노래를 작게 틀어놓고 야외 테라스에서 마신 와인 한 잔을 최고의 추억으로 뽑을 것이다. 여기저기 새로운 지식, 새로운 문화를 흡수하는 걸 좋아하는 나는 밀라노 미술관에서 본 여러 화가들의 그림을 최고로 뽑을 것이다. 웅장한 자연을 좋아하는 아빠는 구름이 지나가는 넓은 초원을, 장소가 어디든 그날의 날씨가 가장 중요한 엄마는 파란 하늘 아래 초록 초원을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할 것이다. 이 외에도 매일매일의 날씨, 신체 컨디션에 따라 여행지는 다른 그림을 만들어내고 다른 인상을 줄 것이다. 말이 길어졌지만 결국, 여행도 개인의 취향을 탄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이 가장 멋있다고 생각한 장소는 내가 생각하기에는 별로일 수도 있다. 남이 짜주는 계획보다 나를 제일 잘 아는 나의 취향에 따라 하는 여행이 작은 용량의 뇌에서 결국 가장 오래 살아남지 않을까?



뽀제이 엄마의 여행 팁  

     아우론조 산장에서 로카텔리 산장까지 가는 트레킹 루트는 두 가지다. 101번과 105번. 체력과 시간이 된다면 101번으로 가서 105번으로 돌아오는 코스를 선택해보자. 트레 치메를 360도로 조망할 수 있다.    

     트레 치메 주변을 트레킹 하는 일은 생각보다 고되니 가벼운 등산 스틱을 챙겨가는 것도 좋다.    

     한국 여행객들이 많이 가는 포토 스폿이 있다. 로카텔리 산장을 지나 경사가 조금 있는 산을 올라가면 트레 치메를 액자 같은 구멍 사이에 넣고 사진 찍을 수 있다.    

     성수기 브라이에스 호수에서 차량을 통제한다. 주차난과 교통 혼잡을 피하려면 근처 마을인 도비아코에 주차하고 442번 버스(미리 예약)를 타고 갈 수도 있다.    

     브라이에스 호수 주변을 트레킹 할 수 있는 코스도 있다. 왕복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니 브라이에스 호수를 더 즐기고 싶은 사람은 도전해보자.    

투제이 실무의 여행 팁  

     한 여름이나 성수기에 트레 치메를 방문한다면 7시 이전이나 아예 오후 2시 이전에 방문하자. 아니면 주차하기 어렵다.    

     트레 치메 근처에는 산장이 3개다. 아우론조, 라바레도, 로카텔리. 아우론조 산장의 화장실은 1유로, 라바레도 산장의 화장실은 0.5유로, 로카텔리 산장의 화장실은 무료다.    

     오스트리아 국경과 가까운 로카텔리 산장에서는 독일식 소시지를 판다. 함께 파는 라거 맥주와 함께 독일식 소시지를 사 먹어보자. 가격이 비싸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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