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la Cabello - Find U Again
좋아한 줄도 몰랐다
도통 현재를 사는 법이 없어 과거를 더듬다 보면, 혹은 조금 더 솔직한 무의식이 어느날 갑자기 꿈 속으로 잊고 있던 추억들을 불러오곤 해서 깨닫게 되는데, 나는 비록 그 때는 몰랐지만, 적어도 그 사람에게 호감이 있었다. 생각을 해보면 내게 그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 사람이 준 물건, 사라고 해서 샀던 물건, 그 사람이 알려줬던 길, 그 사람이 보여준 풍경, 그 사람이 가르쳐준 습관, 그 사람의 취향.
만약 내가 다시 없을 인연을 놓쳐버리고 만 거 아닐까? 좀 더 가깝게 잘 지내볼 걸. 미련과 후회로 가득차서 며칠을 보내게 된다. 지금이라도 연락을 하면 어떨까? 애시당초 왜 멀어지게 되었을까. 내가 다가간다면, 날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사실 우리 둘 다 서로를 원한 적이 있던 것 아닐까? 나는 너에게 뭐였고 넌 나에게 뭐였을까? 미화되는 기억들과 부풀어오르는 자의식의 콤보로 한층 더 괴롭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억울하다. 왜 나는 내 감정도 그때그때 제대로 돌보고 살피지를 못해서 시작도 못하고 이런 식으로 뒤늦은 짝사랑에 혼자 북치고 장구치다가 끝내는 걸까. 그러다가 자기 합리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아니지, 만약 내 마음을 의식했더라면 삽질이나 했을 거고 괜히 불편하고 어색해지기만 했겠지. 마지막은 또 기적을 바라고 마무리한다- 진짜 인연이라면 다시 만나겠지.
회피성 덕질
내 경우에는 어떤 셀레브리티에 제대로 치이고 나면 문득 애인과 헤어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원래 눈이 높긴 하지만 '내가 뭘 재고 따진단 말인가' 싶어서 큰맘먹고 나 좋다는 사람과 연애를 시작하는 때도 드물게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없던 콩깍지가 뿅하고 생기는 일은 없는 것이다.
결국 입덕한 대상과 설레는 가상연애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것이 현실의 소소하고 고민 많은 실제 연애보다 매력 있게 느껴진다. 이렇게 벌어지는 참사에 나 스스로도 나 자신의 인성에 혀를 내두른다. 결국은 마음 속에 저울을 하나 두고 있었으면서, 언제나 다른 사람을 올릴 준비가 되어있었으면서, 이럴 거면 애초에 사귀지 말걸, 하고 번번이 후회한다.
라캉의 욕망이론에 따르면 사람의 욕망이란 것은 공허, 결핍과 관계가 있다. 내 욕망은 결코 완전히 충족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나는 가지지 못할 것을 갖고 싶어'만' 하는 것이 편해진 사람이다. 진짜 갖게 되었을 때 그것에 떨어질 흥미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내가 갖게 된 것이 내가 진정 원하던 것은 아닐 것이므로, 나는 그저 욕망 속에서 부유한다. 상상은 자유라지.
심지어는 가상의 인물까지
이따금은 허구의 존재를 꺼내기도 한다. 아마 회피형 인간들이 연애 중에 가장 많이 회의감을 느끼는 순간은 이 생각을 할 때일 것이다. "아, 나 이 사람을 좋아하지 않나봐. '진짜 좋아하는 사람'을 사귀었더라면 이런 고민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솔직히 말하면, 당신 그리고 나는, 우리는 어쩌면, 누군가를 결코 '진짜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이다.
완벽한 이상형을 만났다고 생각하다가도 어떻게든 흠집을 찾아내는 게 당신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흠집이 있고 당신은 틈을 비집는 것에 귀신같은 사람이므로 언젠가는 실망하고 말 것이다. 이제 당신은 알아야 한다, 이 흠집내기에 브레이크를 거는 게 좋겠단 것을. 이 못된 버릇은 반복될수록 그 속도를 높인다. 결국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게 당신의 목표라면 모르겠지만.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감이 좀 다르지 않은가?
나 역시 사랑이 답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랑의 범위는 생각보다 넓다. 로맨틱한 일대일 관계만 사랑이 아니라, 존경, 우정, 연대의식, 소속감, 크게는 인류애까지 포함한다. 우리의 못된 버릇은 마찬가지로, 반복될수록 바이러스처럼 그 범위를 넓혀갈 것이다. 나는 그것을 실감했고 멈춰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비록 회피형 인간이 무엇엔가 구속되는 걸 싫어한다지만, 회피형이라는 정체성에게 잠식되어버리고 만다면 결국 제약을 받는 게 우리 자신이란 건 정말 바보 같은 자충수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