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이 저택의 유령을 보고
그날의 자화상을 그리려고 작은 손거울을 세워놓고 각도를 조절하는 중이었다. 비니를 쓴 체크 셔츠 차림의 여자가 거울에 비쳤다. 아멜리아는 거울을 쳐다보며 콧등을 벅벅 긁었다. 그리고 손톱을 깨물기 시작했다. 그리고 싶은 게 생기면 바로 그려야 했다. 무언가에 골똘하고 있는 그 사람의 실루엣을 따 거침없이 종이에 옮기는 중에도 별 생각은 안 들었다. 그 때까지 뭔가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는 말이다. 다 그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것도 아니었다. 완성된 드로잉 옆에서 몇 번씩 물어뜯긴 짧은 손톱이 종이를 묘한 리듬으로 두드렸다. 아멜리아는 눈살을 찌푸리다가 결국 흘긋 뒤를 돌아봤다.
그 여자는 아무 움직임 없이, 누군가에게 관찰의 대상이 되는 줄도 모르는 듯 노트북을 들여다보며 제 작업에 바빴다. 아멜리아는 그를 정면으로 볼 수 있게 맞은편 의자로 건너가 털썩 앉았다. 다른 각도의 그림을 하나 더 그릴 생각이었다. 분명히 손을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모든 게 멈춰있었다. 무의식 중에 턱까지 괴고 그 사람을 빤히 지켜보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맹세코 그렇게 쳐다볼 의도는 없었으니 다만, 그를 배경으로 넋을 놓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놀랐다, 그와 눈길이 마주쳤을 때에, 제가 그를 바라보고 있던 것도 몰랐기 때문에.
우선은 그의 시선에 초점을 맞춰 그가 자신을 보고 있단 걸 알아차려야 했고, 아니 그 전에 그를 한참이나 응시하고 있던 게 본인임을 자각해야 했다. 그러니 아멜리아와 그, 두 사람은 꽤나 오랜 시간 서로를 뚫어지게 보았다. 그가 이윽고 미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기울였을 때에야, 아멜리아는 번개라도 맞은 듯 눈을 깜빡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쉽사리 그에게서 눈을 떼지는 못했다. 그래, 눈을 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냥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고. 결국 고개를 먼저 숙인 것은 그 사람이었다. 그는 카페를 나갈 때까지 다신 이 쪽을 보지 않았다. 아멜리아의 손톱이 피를 보고 있었다.
(나머지 내용은 아래에서)
https://sohyeyoon.postype.com/post/82325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