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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많은김자까 Jan 22. 2020

주워 들은 뭉크 이야기

아르테 출판사의 클래식클라우드21 시리즈를 개인적으로 참 좋아한다.

다양한 예술과 문학 인문학을 쉽고 재밌게 풀어낸

아주 좋은 기획이다.

푸치니 클림트 모짜르트 마키아벨리 모네 피츠제럴드 헤밍웨이 아리스토텔레스.....등등등

오늘은 절규의 작가 뭉크에 대한 '주워들은 얘기'를 나누고자 한다.


클클시리즈 뭉크편은 유성혜 작가가 집필했다.

유작가는 노르웨이서 유학하면서 

뭉크박물관의 인턴십을 거쳤다.

이후 노르웨이에서 결혼,

지금은 노르웨이 현지 문화재청에서 근무하고 있다.

아시다시피 뭉크의 태생은 노르웨이다.


진즉 인터뷰하고 싶었던 뭉크편이었지만, 유작가가 노르웨이에 거주하는 바람에 미뤄지고 미뤄지다

한국에 방문했던 지난 연말, 전격적인 인터뷰가 이뤄졌다.

본인은 한국말이 서툴하다고 했지만,

유작가는 그야말로 이야기꾼, 탁월한 스토리텔러였다.

오늘 소개코저하는 내용은, 책에서도 방송에서도 미처 다 말하지 못한,

유성혜 작가가 스튜디오 밖에서 들려 준, 뭉크 작품의 대한 웃지못할 기록이다.


우리는 흔히 뭉크 작품이 하나라고 알고 있지만,

뭉크의 절규는 총 4가지 버전이 있다.

심지어 네 작품이 조금씩 다르다.

4작품 중, 하나가 판화작품이므로,

찍어낸 판화까지 치면 

절규는 대략 20편 안팎의 숫자로(정확히 파악되고 않고 있다고 했다)

어딘가에 전시되고 있거나

누군가에게 소장된 상태일 것이다.


주워들은 뭉크의 절규이야기는

오슬로대학 기숙사로부터 시작된다.


뭉크의 최대 후원자였던 Rolf Stenersen,

롤스 스텐네르센이라는 사람은

뭉크의 작품 중 400편을 소장하고 있었다.

뭉크 사후, 그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뭉크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길 바랐고,

그래서

그가 소장한 뭉크 작품 400편을 포함한

총 900편의 대작을 오슬로대학에 전시하기로 한다.

(세상에~~!! 뭉크의 작품의 대학기숙사 전시라니.)

그러나 문제는 열악한 전시환경이었다.

대학안에 900편이나 되는 대작들을 전시할 장소가 있을리 만무했다.

결국 뭉크작품 400편은 오슬로대학 기숙사 방과

복도 벽에 무작위로 걸리게 됐다.

그나마 방이나 복도에 걸렸다면 그건 다행~

뭉크의 그림은

물이 튀고 불길이 올라오고,

음식냄새로 꽉찬

오슬로대학 주방 조리대 위에도 걸렸고,

심지어 남자 화장실 변기 위에도

뭉크의 대작들이 걸렸다고 한다.

뭉크 작품 앞에서 볼일을 보는 기분은 어떤 걸까?...큼큼...


오슬로대학의 뭉크작품 얘기를 듣자하니,

뭉크의 유골함이 떠올랐다.

뭉크는 사후 화장해서 유골함에 담겼는데,

평생 미혼으로 살았던 뭉크의 유골함은

그야말로 어느 건물 선반 위에 덩그러니 수년간 방치됐다가

몇년이 지난 어느날, 청소부가 '이거뭐지?'하며 발견하곤

지금의 자리에 안치됐다고 한다. 


오슬로대학기숙사의 뭉크 작품 역시

그와 다를 바 없었다.

사실상의 방치...

불행 중 다행으로 그 후로부터 몇년 후, 노르웨이 정부가,

오슬로 대학 기숙사의 뭉크 작품을 전수조사하게 된다.

뭉크그림 400편 중,

이미 20편이 사라진 후였다.

롤스 스텐레르센이 기증한 뭉크그림 400편 중, 20편이 증발한 것이었다.


그런데, 재밌는 건 노르웨이 정부가 전수조사를 하게 된 배경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한 잡지사 기자가, 어느날 우연히 오슬로 대학 앞 카페에서 신문을 보며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다,

깜찍한 작당모의를 엿듣게 된다.

옆자리에 앉은 오슬로 대학생 두명의 작당모의는 다름아닌,

'기숙사에서 뭉크작품 빼돌려 팔아먹기' 였다.

기자는 당장 이 상황을 기사화하고, '올해의 기자상' 정도를 받고

깜찍발랄한 대학생 두명은 경찰이든 학교에 고발해야 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딴 꿍꿍이가 있었다.

되레 어설픈 대학생들의 깜찍한 공모에 동참하기로 한다.

잠재적 뭉크절도범들에게

기자는 먼저 제안했다.

"학생들!! 학생들이 뭉크의 작품을 훔쳐서 가지고 나와 봐."

"??"

어차피 작당모의를 들켰겠다 시키면 시키는대로 해야했던 오슬로대학생 두명은

기자가 시키는대로, 뭉크의 작품을 기숙사에서 훔치기로 하고,

실제로 학교 밖으로 가지고 나왔다.

뭉크작품 절도에 성공한 것이다.

기자는 두번째 절도를 지시(부탁)했고,

학생들은 또다시 아무런 제재 없이,

두번째 절도에 성공한다.

세번째 절도 시도에서야, 경비원으로부터 제지를 받았다.


기자는 이 모든 상황을 고스란히 기사화했다.

국민작가 뭉크의 작품이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기획기사를 썼고,

당시 노르웨이에서 이 기사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탄을 받은 노르웨이정부는 부랴부랴

오슬로대학 기숙사의 뭉크작품을 전수조사해,

방치되다시피한

뭉크의 작품들을 회수해 박물관에 전시하게 된 것이다.


뭉크의 대표작 절규는 두번 도난당했다. 특히 두번째 도난사건은 희극스럽다. 

개그적이다.

절규 도난을 담당한 조직원들은

상당히 똑똑하지 않은 이들로 구성됐었던 것 같다.

절도 첫번째 시도에선 세명이 접선장소를 혼동해

박물관에 아예 들어가 보지도 못한채 귀가했다고 한다. 실패였다.

두번째도 실패하고,

의기투합한 세번째 시도는 주도면밀 치밀하게 준비했지만,

역시나 어설펐다.

작전은 박물관이 개장하자마자 한산한 시간대에 그림을 떼오자는 거였는데,

이들은 개장시간을 잘못 알았고,

그들이 뱍물관에 도착했을땐 이미 관람객들로

발딛을 틈이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돌아가면 그들의 보수에게 욕을 먹거나 재떨이로 두들려 맞을 게 뻔한 상황이었으므로

이들은 절도를 단행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벽에 걸려있는 '절규' 오기!

어리숙한 절도범들은

관객이나 경비들을 향한 그 흔한 "꼼짝마" 위협 한번 없이

유유히 절규를 떼서 당당하게 들고 나왔다.


눈앞에서 코베간듯 절규를 도난당한 박물관과는 달리,

절규를 찾기 위한 경찰은 치밀했다.

한 형사는

절규 절도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 조직원의 옆집으로 이사를 간다.

(그야말로 한국의 천만영화 노르웨이판 극한직업이었다.)

조직원에게 접근해 친분을 쌓고, 심지어 베프쯤이 된 후,

단서 찾기에 나선다.

(절도 범인과 뒷얘기가 흥미진진하나 그건 책에서 확인하시길~~)


도난당한지 2년만에 가까스로 되찾은 절규는 당시 상당히 손상돼 있었고,

복원작업을 거친 후, 대중앞에 다시 선보이게 됐다.

이 도난 사건을 계기로 노르웨이 정부는

뭉크작품에 대한 허술한 관리실태를 인지하고,

새 뭉크박물관 신축에 들어간다.

올해 완공이 목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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