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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많은김자까 Jun 07. 2021

사주에 '물(水)'이 많아서

천주신자로서 딱히 믿는 건 아니지만.

역학을 공부한 몇몇 지인들과

재미 삼아 몇번 문턱을 밟아본

철학관에서의 얘기들을 종합해보면,

내 사주엔 '물'이 많다고 한다.

사주에 물이 많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은 이구동성 "당신 사주엔 물이 많아"


몇년 전 집을 처분할까 말까 고민을 할때,

철학관 두곳을 거푸 찾아간 적이 있다.  

역시나 두곳 모두에서, '사주에 물이 많다'로 시작했는데,

물과 집에 대한 해석은 달랐다.


A철학관에선 "사주에 물이 많은 사람이 물가에 있는 집이면 금상첨화지 팔긴 왜팔아"

또다른 B철학관에선 "사주에 물 천지인데, 집도 물을 끼고 있으면 되겠어? 당장 팔아"


그 후로 나는 종종 재미삼아 '내 사주에 물이 많아서'를 마치 후렴구처럼 써먹는데,

가령 이런 거다.


사나흘 물을 마시지 않아도 갈증을 느끼지 는 나에게

가족들은  똑같은 잔소리를 한다.

"여보는 물을 너무 안마셔. 억지로라도 좀 마셔봐"

"엄마는 갈증이 안나요? 어떻게 며칠동안 물을 안먹고 살아? 그러다 몸이 타들어가겠어요."

울엄마 김여사도 질새라 "야 하루에 2리터씩는 물을 마셔야 한대."


지치지도 않는 가족들의 잔소리에 난

"난 사주에 물이 많아서, 굳이 물을 마실 필요가 없어"


나는 쉽게 갈증을 느끼지도 않지만,

한여름에도 땀을 흘리지 않는다.

여름이 되면, 또 걱정들이 늘어져선,

"물을 안마시니 땀을 안흘리지"

"땀안나는 몸에 안좋대"


그때마다 난,

"난 사주에 물이 많아서, 땀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면 안될게야.아마도"


다혈질 불같이 화를 내지만,

뒤돌아 서면 잊어버리는 뒤끝없는 나의 성격을 두고 가족들은

"너는 할말 다하고, 뒤끝없다는 게 자랑이냐"고 타박하지만,

"불같이 화내고 안풀고 꽁한거 보단 뒤끝없는 게 낫지. 내 사주에 물이 많아서, 뒤끝없이 화가 식는 줄이나 알아들!!"


빌미나 핑계거리는

순간을 모면하기 좋은 재료다.


방송약속을 비롯해, 밥먹듯 약속을 어기는 사람들을 보면.

게으른건지 창의성이 없는건지, 아니면 새로운 핑계거리를 찾을 성의도 없는건지.

'차가 막혀서'

'요앞에 차사고가 나서'

'어머니 병원 모셔다 드리느라'

'몸이 아파서'


서울시내에서 '차막힌다'는 핑계는,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져요'와 동의어고,

뉴스에도 나오지 않는

매주 똑같은 시간 똑같은 장소의 사고는

납량특집 혹은 머피의법칙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에피소드를 굳이 나에게 믿으라 하는 거고.

어머니 아버지 가족들이 매주 똑같은 요일 똑같은 시간에 병원에 가야하고, 동행해야 하는 처지의 상대에겐

'가정의 반복되는 우환에 심심한 위로를' 이라고 해야 하나

'당신의 효심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해야 하나.

(애초 그날은 병원예약이 있어서 안된다고 했으면 됨)

몸이 아파서....는 글쎄 나도 모르겠다. 난 아파도, 꾸역꾸역 는 편이라서..


나 역시 약속에 늦고,

닥쳐서 약속을 연기해야 할 때도 있다.

그때마다 난처하고, 상대에게 뭐라해야 할까

'애가 아프다는 둥''급히 미팅이 잡혔다는 둥''차가 막힌다는 둥'

본디 뭐묻은 뭐가 뭐묻은 뭐 뭐라듯

남의 핑계가 싫다면서도,

나역시도 그런 핑계거리를 찾는다.


'죄송합니다. 5분 늦을 것 같아요. 차가 막......'

이라고 카톡에 적으려다, 싹싹지우고,

요즘은 마지막 문장은 쓰지 않는 편이다.

그리고, 다짐한다. 차라리 핑계를 댈라면 초지일관하자.


'죄송합니다. 5분 늦을 것 같아요. 사주에 물이 많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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