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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많은김자까 Jan 24. 2021

작가님과 김작가님

막역함과 거리감에 대하여



브런치 구독자들께서

애정해 마지않는

올해 고3이 되는 2호가

5학년쯤 때의 일이다. (그땐 슬하에 2남2녀였다)


일요일 아침 성당 다녀오는 길에
2호가 말을 걸었다.
"엄마"

-왜

"저도 '정*아~'고 불러주시면 안돼요?"

-뭔소리야. 니가 정*인데, 정*아 하고 안부르면, 뭐라고 불러?

"엄만 정*라고 안부르시는데요."

-내가?

"네"

-말도 안돼. 그럼 라고 불러?

"엄만 늘 성을 붙여서 이정*이라고 부르셔요


그렇다. 그러고보니

우리집 1,4호의 성은
'李'이고,
2,3호는 '야이'였다.
딸들 1,4호를 부를땐
"정*아" "정*아"
2,3호를 부를땐
"야 이정*" "야 이정*" 이렇게 부르고 있었던 거다.
2호가 성을 떼고 불러달라고 한 그날이 아녔음 나는

사실을 오래도록 알지도, 인식하지 못한채로

여러해를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날 2호의 읍소에 비로소  우리집 '야이'군들에게.....미안했다. 

(아들들에거 평소 더 엄격한거 인정)


내가 국민학교 시절

이성친구들간에 성을 붙여 부르는 건 불문율 같은 거였다.

만약 장동건을 동건아~~하고 부르거나

남자아이가 고소영을 고소영이 아닌 소영아~~라고 부르면

이건 틀림없이

즉 성이 뗀채 불리는 상대를 좋아하는

얼레리꼴레리 상황이었던 거다.


요즘 아이들이 그러는지 안그러는진 모르겠으나,

고집스럽게 성을 붙여 부르는 건

거리감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촌스러워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걸 달리 표현하면,

성을떼고 부르는 건 막역함.

굳이 성을 붙여 부르는 건 막역함의 거절이라고 하면

나의 넘겨짚음이 너무 간걸까


성인이 된 지금,

나는 사회에선 작가님으로 불린다.

김작가에 님을 붙이는 사람과

님을 떼고 부르는 사람, 두 부류가 있는데,

김작가는 일종의 이름같은 호칭이다.

함께 일하는 윗사람이 날 부를땐

김**씨 대신 김작가라고 부르는 것이다.

김과장 김부장 김대리와 같은 호칭인게다


하지만, 작가님의 호칭은 다르다.

여러 김작가가 있을때, 나를 콕 짚어 불러야 한다면

"김작가님"또는 "김**작가님"이라겠지만,

단둘이 대화하거나 메신저에서라면

"작가님"이 보편적이고, 자연스러운 호칭일게다

그러나, 곧죽어도 "김작가님"이라는 호칭을

고수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때마다 어색했고, 왜일까를 생각해봤다.

상대의 습관일수도 있지만

성을 붙여 나를 호칭하는 사람은

나 역시 끝까지 어렵다.

어쩌면 상대는

막역함 대신 거리감을 원한다는 다른 표현으로

작가님 대신 김작가님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우회적이고 완곡하지만,

양보할 수 없는 거리감에 대한 열망. 막역함의 거절.

그게 아니라면,

그 사람은 누구에게도

곁을 쉽게 주지 않는, 마음을 쉽게 열지 않는

사람일게다.


그러고보니, 평소 이름만 부르다가

분위기가 따짐이나 경고가 필요할 때,

나 역시 성을 붙여 상대를 부름으로써

엄격하고 엄중함을 전달하곤 한다.

'댕댕아' '댕댕씨'를

'김댕댕' 혹은 '김댕댕씨!'


함부로 성을 붙여 부르지 말것이며,

함부로 성을 떼고 부르지도 말아야겠단 다짐을 해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는 누군가에게 '작가님'인가 '김작가님'인가

나는 누군가에게 '작가님'이고 싶은가

'김작가님'이고 싶은가


내가 알고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은

나에게 성을 붙여 불리고 싶은가

뗀채 불리고 싶은가.

난 그들이 원하는대로 불러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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