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초년생 소녀가장
영화과를 졸업하고, 휴식겸 여행을 다니고, 말레이시아에 머무는 동안 아버지가 폐암에 걸리셨다. 부랴부랴 돌아왔지만 소세포폐암이라고, 암세포가 급성으로 빠르게 퍼져 아버지는 판정을 받으신 후 2개월만에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마흔 살에 결혼을 하셨고, 늘 몸이 안 좋으셨다. 친구네 아버지들은 팔팔하고 머리도 검은데, 우리 아버지는 안 그러시니,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조금 일러서 마음이 아팠지만, 아버지를 너무 사랑해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런 날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 날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셨다고 한다. 자기보다 나이가 열 살이나 많은 남자랑 결혼했으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아버지는 빚을 남기고 가셨다. 침착하게 생각하면 그리 많은 빚은 아닌데, 내집마련도 현금 100%로 하신 생활력 강한 어머니는 그 빚이 공포스러우셨나보다. 병수발을 드느라 삐쩍 마른 어머니를 두고, 내 적성을 찾아볼 시간 따위는 없었다. 당장에 돈을 벌어야했다.
어머니도 같은 생각을 하셨는지, 상을 치르고 일주일 만에 다시 회사로 복귀하셨다. 일은 해야하니까 하셨지만, 혼자 두면, 식사를 못하셨다. 밥을 차릴 의지도 없으셨고, 의지가 생겨도 식탁이 아닌 부엌에서 서서, 불편하게 식사를 하셨다. 밖에서 밥을 먹고 온 날에도 그 뒷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파서 어머니와 저녁을 한 번 더 먹었다. 혼자서 밥을 먹지 못하는 어머니를 두고 다시 독립할 수도 없었고, 결국은 프리랜서행인 촬영 현장에 갈 수도 없었다.
급하게 이력서를 만들었다. 잡코리아에 들어가서 제발 나를 뽑아달라는 마음으로 집 주변 회사들에 이력서를 폭격했다. 면접에 가서도 제발 나를 뽑아달라고 애원했다. 그렇게 집 주변 IT회사 미디어팀에 들어갔을 때, 내 월급은 220만원이었다. 아버지가 초봉은 3,000은 넘어야한다고 하셨어서, 면접 때 희망연봉을 3,000이상으로 부탁드렸는데, 2,900으로 통보 받았다. '100만원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지! 여행 한 번 덜 가면 되는 거 아니야?' 연봉 개념이 없을 때라 괜찮을줄 알았다. 집앞인데 밥도 주고 커피도 주고 점심시간도 한 시간 반! 사원수도 150명 이상, 인테리어도 삐까번쩍. 팀원들도 모두 또래여서 백수보단 나았으니까.
그런데 월급을 직접 받아보니 황당했다. 병상 위의 아버지가 계속 생각 났다. "초봉은 삼천이상 받아야해..."(실제로 이런 그림은 없었지만, 머릿속에 떠다닌 이미지) 나는 학교를 다니면서 과외, 학원, 아르바이트를 지속해 생활비와 등록금을 충당해왔는데, 그때도 이것보단 더 벌었던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제대로된 사회생활을 처음 해봐서 이 금액이 터무니 없게 작게 느껴졌다.(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맞는 금액이었고, 그냥 다닐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어머니가 안쓰러워 월급에서 100만원은 이체해드렸는데, 남은 돈으로 청년적금을 넣고 청약을 넣으면 남는 돈이 없었다. 그러니까 친구를 못만났다. 돈이 없어서 연락을 못했다.(얻어먹고 싶지 않아서...) 원래 인생이 이런건가? 거기에 내 직군은 작가였고, 연봉테이블상 임금이 크게 오르지도 않는단다. 두번째 월급날에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지금 생각해보면, 주제 넘은 생각이었던 것 같기도...)
3개월 수습이 끝나기 전에 다른 회사로 가야겠다는 판단이 들어, 이력서에 희망연봉을 추가했다. 3,600만원 이상으로. 노션으로 만들었던 포트폴리오를 PDF로 개편하니 회사로부터 연락 오는 빈도가 늘었다.
2개월차 신입이라 월차는 단 두 번 사용할 수 있었기에, 이직에 임하는 자세가 참 신중했다. 캠핑용품을 파는 이커머스 회사와 처우협상을 하고 있었는데, 인테리어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대표님이 직접 전화를 주셨는데, 쓰읍-... 하는 호흡에 "얘는 왜 지원했을까?"하는 의문이 바로 읽혔다. "와볼래요?"라는 말씀에 연차를 내고 면접을 보러 나갔다. 둥지를 벗어나 서울로!
대표님은 나를 부르자마자 취업난이 심한지 여쭤보셨다. 그렇다고 했다. 이것저것 어필하고, 과제를 했는데 엄청 좋아하셨다. 채용과제니까 열심히 했다. 붙어서 처우 협상을 할 때, "다른 회사에도 붙었는데 3,700 주신답니다." 말씀드렸더니 갑자기 이러신다.
"삼백오십."
-네?
"월급 350 받게 해줄게."
350만원을 주신다고요? 잘못들은 줄 알았다.
그럼 내 연봉이 4,500이라는 거야? 오마이갓 아빠! 다시 일어나봐!(불에 타서 사라지셨지만)
그 길로 퇴사를 하고, 합격한 회사들에 죄송하다는 메일을 보내고, 인테리어 회사에서 인하우스마케터 일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1년간 몰라도 될 것 같은 세상에서 살았다.
왜냐면 진짜 몰랐다.
감성에 빠져살던 내가 돈에 눈이 멀어서 이 차가운 사회로, 그것도 소기업, 매일아침 고성이 오가는 사기꾼 소굴로, 제 발로 들어와 매일매일 미칠 것 같은 하루를 보내게 될 것이라고.
그런데? 그게 사회라는 것을.
나만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