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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김영사

-외로울 땐 독서

by 푸른 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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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들어가는 말’에서 정치철학에 대한 언급을 했다. 그런 언급은 이 책의 성격을 잘 드러내 주었다.


정치철학은 논쟁을 주고받는 학문이며, ‘정의’ 수업의 묘미 하나는 학생들이 철학자에게, 다른 학생에게, 그리고 나에게 반박한다는 점이다.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나이 먹은 세대들에게는 토론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그냥 받아들이기만 했기 때문이다. 이런 교육방식은 개인의 의견이나 생각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저자는 수십 년 동안 강단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치며 학생들에게 정의를 다룬 뛰어난 철학서를 소개하고, 철학적 문제를 제기하며 오늘날의 법적· 정치적 논쟁을 다루는 수업을 했다.


마이클 샌델은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을 이렇게 말했다.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연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이것들을 올바르게 분배한다. 다시 말해, 각 개인에게 합당한 몫을 나누어 준다. 이때 누가, 왜 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묻다 보면 복잡해진다.


나는 그동안 깊은 생각 없이 막연하게 ‘정의’는 사회적으로 확고한 개념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자의 주장을 읽어보면 무엇이 정의(正義)인가에 대해서 쉽게 정의(定義) 내릴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정의(正義)의 기본개념을 확실히 알아보기 위해서 사전에서 찾아보니 아래와 같았다.


1.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

2. 바른 의의(意義)

3. 개인 간의 올바른 도리. 또는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


3번째 개념이 철학적인 개념인데, 올바르거나 공정한 도리라고 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올바르거나 공정한’의 의미가 굉장히 모호하고, 상황이나 입장에 따라서 가변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저자는 제러미 벤담 , 존 스튜어트 밀, 칸트, 존 롤스, 아리스토텔레스 등을 소환해서 정의에 관한 문제를 고민하게 한다. 그런 철학자들에 대한 기본 개념이 거의 없는 내게는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저자는 실례를 들어 철학에 문외한인 일반인들도 정의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 그런 점이 이 책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이 첫 출판된 것이 십 년 전이다. 그렇지만 ‘정의’에 대한 판단은 그때나 마찬가지로 쉽지 않은 일이다.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세계를 충격과 공포 속에 몰아넣는 요즘, 정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책에 나온 예와 현재 상황을 비교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어서 살펴보기로 한다.


미국에서 하리케인 찰리의 여파로 일어난 가격 폭등의 예가 나오는데, 올해 봄에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마스크 가격 폭등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볼 수 있겠다.


2004년 여름, 멕시코 만에서 세력을 일으킨 허리케인 찰리가 플로리다를 휩쓸고 대서양으로 빠져나갔다. 그 결과 스물두 명이 목숨을 잃고 110억 달러에 이르는 손실이 발생했다. 뒤이어 가격 폭리 논쟁이 불붙었다. 평소 2달러 하던 얼음주머니가 10달러가 됐고, 태풍으로 지붕을 덮친 나무 두 그루 처리 비용으로 2만 3000달러를 요구했다. 250달러 하던 가정용 소형 발전기 가격이 2000달러에 팔았고, 하루 40달러 하던 모텔 방값이 160달러를 요구했다.


플로리다에는 가격 폭리 처벌법이 있어서, 허리케인이 지나간 뒤 2000건이 넘는 피해 사례가 접수되었다. 주 법무장관이 가격 폭리 처벌법을 집행하려고 하자 일부 경제학자들은 해당 법에, 그리고 주민들의 분노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경제학자들은 시장 사회로 진입하면서 가격은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되었을 뿐 ‘공정 가격’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가격 급등은 폭풍으로 삶이 수렁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화가 나는 일이지만, 자유 시장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터무니없어 보이는 가격이지만, 필요한 물건을 더 많이 생산하도록 공급업자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실보다 득이 많다고 주장했다.

이에 주 법무장관은 ≪탬파 트리뷴≫특별기고 난에 가격 폭리 처벌법을 옹호하는 글을 실었다.


허리케인이 지나간 비상사태를 맞아, 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대피하고 가족을 위해 기본 생필품을 구하러 다니는 동안 업자들이 비양심적인 가격으로 이득을 보는 상황을 정부가 팔짱을 끼고 바라볼 수만은 없다.


그는 “비양심적인” 가격이 진정한 자유 교환을 반영한다는 의견을 반박했다.


허리케인 찰리가 지나간 뒤에 일어난 가격 폭리 논쟁은 도덕과 법에 관한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이러한 질문은 단지 개인이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묻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법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며, 사회는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는지를 묻는데, 한마디로 정의를 묻는 질문이라고 했다. 그는 가격 폭리에 반응하는 우리의 모습이 이중적이라고 꼬집었다.


다들 자격 없는 사람이 무언가를 얻을 때 분노하며, 인간의 불행을 이용하는 탐욕은 포상이 아닌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법을 만들어 미덕을 심판하려 할 때는 우려를 표한다.
이 딜레마는 정치철학의 중대한 문제 하나를 드러낸다. 정의로운 사회라면 시민의 미덕을 장려해야 하는가? 아니면 법은 미덕에 관한 서로 다른 개념들 사이에 중립을 지키면서 시민 스스로 최선의 삶을 선택하도록 해야 하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장 바람직한 삶의 방식부터 심사숙고해야만 무엇이 정의로운 법인지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법은 좋은 삶을 묻는 질문에 중립적일 수 없다.
반면 18세기의 이마누엘 칸트부터 20세기의 존 롤스에 이르기까지 근현대 정치철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 권리를 규정하는 정의의 원칙은 미덕과 최선의 삶에 관한 주관적 견해에 좌우되지 말아야 한다. 정의로운 사회라면 개인의 자유를 존중해, 각자 좋은 삶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내세우는 주장은 언뜻 보기에는 경제적 풍요를 지지하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주장에 찬성하거나 맞서면서, 어떤 미덕이 영광과 포상을 누릴 자격이 있는지, 좋은 사회가 장려해야 하는 생활방식은 무엇인지에 관해 은근슬쩍 다른 신념을 넘보기 일쑤다. 다시 말해 풍요로움과 자유를 굳건히 지지하면서도 정의에서 심판이라는 한 가닥 끈을 완전히 끊어버리지 못한다. 정의에는 선택뿐 아니라 미덕도 포함된다는 생각은 뿌리가 깊다. 정의를 고민하는 것은 곧 최선의 삶을 고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20~22쪽)


가격 폭등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서 알 수 있듯이, 무엇이 가장 확실한 정의라고 쉽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저자의 말처럼, ‘정의를 고민하는 것은 곧 최선의 삶을 고민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다른 예, <철로를 이탈한 전차>를 보기로 하자.


당신은 전차 기관사이고, 시속 100킬로미터로 철로를 질주한다고 가정해보자. 저 앞에 인부 다섯 명이 작업 도구를 들고 철로에 서 있다. 전차를 멈추려 했지만 불가능하다.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이 속도로 들이받으면 인부들이 모두 죽고 만다는 사실에 알기에(이 생각이 옳다고 가정하자) 절박한 심정이 된다.
이때 오른쪽에 있는 비상 철로가 눈에 들어온다. 그곳에도 인부가 있지만, 한 명이다. 전차를 비상 철로로 돌리면 인부 한 사람이 죽는 대신 다섯 사람이 살 수 있다.


이제 다른 전차 이야기를 해보자. 당신은 기관사가 아니라, 철로를 바라보며 다리 위에 서 있는 구경꾼이다(이번에는 비상 철로가 없다). 저 아래 철로로 전차가 들어오고, 철로 끝에 인부 다섯 명이 있다. 이번에도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전차가 인부 다섯 명을 들이받기 직전이다. 피할 수 없는 재앙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다가 문득 당신 옆에 서 있는 덩치가 산만 한 남자를 발견한다. 당신은 그 사람을 밀어 전차가 들어오는 철로로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러면 남자는 죽겠지만 인부 다섯 명은 목숨을 건질 것이다(당신인 직접 철로로 몸을 던질까 생각도 했지만, 전차를 멈추기에는 몸집이 너무 작다).


이 두 가지 예에서 사람들은 각각 다른 판단을 하게 된다. 첫 번째에서는 한 사람을 희생해서 다섯 사람을 구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지만, 두 번째 예에서는 그 남자를 철로로 미는 건 아주 몹쓸 짓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두 가지 예에서 사람들은 어째서 한 사람의 목숨의 가치를 각각 다르게 판단하게 되는 걸까?

이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어떤 도덕적 딜레마는 도덕 원칙이 서로 충돌하면서 생긴다(...) 하나는 가능하면 많은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원칙이며, 또 하나는 아무리 명분이 옳다 해도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잘못이라는 원칙이다. 많은 생명을 구하자니 죄 없는 사람 한 명을 죽여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도덕적으로 난처한 입장에 놓인다. 상황에 따라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이 저 적절한지 찾아내야 한다.(39~40쪽)


이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예는 아니지만, 코로나 19가 막 창궐하기 시작했을 때의 이탈리아 상황을 떠올리게 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급격한 창궐로 의료진과 의료시설이 현저하게 부족하다. 그래서 의료진들은 치료에 매달려도 회복하기 힘든 노인들에게 매달리기보다는, 좀 더 빨리 회복 가능한 젊은이들부터 치료하는 것이 효율적인 대처법이 아닌가, 하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고 했다.


이와 같은 상황은 그야말로 도덕적으로 무척 난처한 상황이다. 저자는 ‘상황에 따라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이 저 적절한지 찾아내야 한다’ 고 하지만, 의료진으로서는 심히 난감한 사안이다.


책에는 이런 식으로 많은 사례들이 실려 있고, 독자들은 그 사례를 통해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수많은 질문을 하게 된다.

그동안 어떤 사안에 대해서 막연하게, 혹은 당연하게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며 모호한 확신을 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런 태도보다는 ‘과연 그런가?’하는 의심을 해보는 편이, 정의正義실현을 위한 더 합리적인 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정의(正義)에 대한 완벽한 정의(定義)는 불가능한 것 같다. 그렇지만 무엇이 정의(正義)인가에 대한 질문은, 독자들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폭과 깊이를 더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좋은 책이란 이런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물론 책에서 언급한 정치철학의 개념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평소에 접해보지 못한 개념에 대해 생각해본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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