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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은 처음인데요/안휘경, 제시카 체라시 지음

-외로울 땐 독서

by 푸른 오리

현대미술은 처음인데요/안휘경, 제시카 체라시 지음/행성 B잎새




평소 미술에 대해 관심은 좀 있었지만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음악은 그에 대한 자세한 정보 없어도 감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았다. 그 느낌이 틀리든 맞든 간에 말이다. 그렇지만 미술, 그중에서도 특히 현대미술은 배경이 되는 전문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 힘든 분야 같았다.


『현대미술은 처음인데요』를 봤을 때 책 제목에 확 끌렸다. 내 반응만 두고 봐도 책이 내용만큼이나 제목도 꽤 중요한 것 같다. 그렇지만 책 제목이 눈길을 끈만큼, 내용은 그에 도달하지 못한 듯해서 아쉬웠다.





저자는 한국인 안휘경과 영국인 제시카 체라시다. 원래 영문으로 출판된 것을 우리말로 옮긴 책이다. 그래서인지 책의 목차 형식이 알파벳 순(A~Z까지)으로 되어 있었고, 영문 첫 알파벳에 맞춰서 목차 제목이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었다. 영어 원본으로 봤다면 이 책의 구성이 재치 있어 보였지만 한글판에서도 그런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 저자는 그 재미를 살려보려고 목차 제목에 영문과 한글 번역문을 같이 써두었지만.


서문에서 저자는 이런 말을 했다.


이 책은 현대미술을 주제로 이야기 나눌 때 물러서지 않고 꿋꿋이 버틸 수 있는 자신감을 갖는 데 필요한 모든 내용을 담아내려고 했다. 어쩌면 어떤 전시를 보고 그 전시가 마음에 드는지 어떤지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도울 수도 있으리라(...) 우리는 미술 세계에 관해 A에서 Z까지 두루 훑는 이번 여행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하려고 한다. 여행이 끝날 무렵에는 미술에 대해 겁먹지 않고 현대미술이 자신의 지적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무척 흥미로운 주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다수의 독자들이 저자의 바람대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면 좋겠다. 내 경우에는 그렇지 못해서 아쉬웠다.


책의 구성 방식이 좀 산만한 느낌이었다. 각 파트별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중에, 불쑥 다른 파트로 가라는 표시가 뜬다.

예를 들면 C. Contemporary /What makes it so contemporary? 현대미술/ 현대미술은 왜 현대적일까 부분에서, 중간에 ‘(...⇒I로)로 ’로 가라는 표시가 나온다. 그런데 내게는 이런 형식이 글의 흐름을 끊어버리고 본문에 집중하기에 힘들게 했다. 인터넷이라면 표시된 그 부분을 바로 클릭해서 들어갈 수 있겠지만, 종이책에서는 목차와 페이지를 확인해서 다시 찾아보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리고 나만의 느낌이겠지만, 본문이 목차에 걸맞은 내용으로 잘 채워진 것 같지 않았다. 한 예를 보면,

C. 현대미술은 왜 현대적일까, 에서 현대미술이 왜 현대적일까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얻을 수 없었다. 각 목차마다 핵심이 되는 내용은 푸른 글씨로 따로 표시되어 있었지만. C. 현대미술은 왜 현대적일까 의 핵심 문단은 아래와 같다.


현재라는 순간을 해석하는 작업은 좀처럼 쉽지 않고, 현대라는 사회를 이해하는 일 역시 혁신적인 기술과 새로운 접근방식을 요구한다.


그 핵심 문단만으로는 나의 궁금증이 해결되지는 않았다. 핵심 문단으로 표기하는 문장이라면 그 목차의 중심 내용이 담겨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다만 현대미술에 대한 개념을 아래와 같은 문장에서 파악할 수 있었다.


현대미술은 우리가 사는 세계와 직면한 쟁점들을 곰곰이 되새겨 보고 고민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덕분에 우리는 예리하게 사회를 의식할 수 있게 되었다.(31쪽)


책에서는 창작자와 갤러리와 작품 매수자들에 얽힌 내용을 다룬 부분이 있었지만, 대체로 일반적인 정보였고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물론 책에는 이슈가 되었던 현대미술 작품에 대한 내용들도 있었다. 책 표지 사진에도 나오는 이탈리아 예술가 피에로 만초니의 똥 30그램이 들어 있는 양철 캔 이야기를 비롯해 몇몇 흥미로운 작품 이야기들이 있었다.


미술계 내부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미술계에도 더러운 돈으로 움직이는 미술계를 고발하는 슈타이얼 같은 사람도 있고, 예스맨의 두 주인공인 자크 세르빈과 이고르 바모스 같은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예술은 도전하고 질문하고 비판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예술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생활상을 알리고, 환경 문제에 관심을 두게 하며 정치· 경제 · 권력 구조에 반기를 든다.(158쪽)


예술은 살아가는 데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실용적인 면에서 그다지 쓸모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사실, 예술은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일상 속의 문제점과 고정관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촉구하는 큰 쓸모가 있다. 인용한 윗글과 마찬가지로 예술은 (주로 은유적으로) 비판하는 힘이 있다. 이런 힘은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사회나 국가에는 균형감각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떤 소수의 특정인들만 예술을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삶에서도 예술이 자연스럽게 유통(?)되면 좋겠다. 일상에서 예술이 생활화된다면 우리 삶이 더욱 풍요로워질 것 같다.


책에서 너무 큰 기대를 했기 때문에 실망한 점도 있었다. 그렇지만 책을 통해 현대 미술의 동향과 여러 현대 미술가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적지 않은 소득이었다.

예술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 내가, 예술의 역할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봤으니 나름 괜찮게 시간을 보낸 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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