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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리처드 플래너건/문학동네

-외로울 땐 독서

by 푸른 오리


2014년 맨 부커상과 오스트레일리아 총리 문학상 수상 작품.


저자는 이차대전 당시 일본군의 전쟁포로였던 아버지에게 이 책을 바쳤다. 그는 그의 아버지를 통해 들은 그 당시 전쟁의 실상을 생생하게 소설로 쓰기 위해 12년간 집필에 매달렸다. 이 책은 오스트레일리아판 <전쟁과 평화>로 불릴 정도로 뛰어난, 전쟁에 관한 대서사시다.


작품 주인공은 이차대전 당시 일본 군의 타이-미얀마 간 '죽음의 철도'라인에서 살아남은 오스트레일리아 외과의사 도리고 에번스이다. 그는 지금 화려한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지만, 그의 내면은 늘 불안한 과거 속에서 배회하고 있었다.


전쟁 당시에 그는 기차 레일 작업에 투여될 포로들을 뽑아야 했는데, 대부분의 포로들은 이미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그는 그중에서 그나마 상태가 좀 나은 사람들을 차출해야만 했다. 몸 상태가 극도로 나쁜 포로들은 결국 죽고 말 것이라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차출된 사람들을 죽을 수밖에 없는 곳으로 보내는 것이다. 도리고는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고심했지만, 결국 모든 사람들을 죽음의 현장으로 보냈다는 자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런 사실은 전쟁이 끝난 후, 평생 동안 도리고의 트로마가 되었다. 그에게는 약혼자 엘라가 있었지만 사랑을 느낄 수 없었고, 사랑하는 여인 에이미가 있었지만 결혼은 할 수 없었다. 그의 삶은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전개되었고, 그는 자기 삶의 주인이 아니라 방관자처럼 자신의 삶을 받아들였다.


전쟁 포로들에 대한 일본군의 만행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전쟁은 인간에게서 이성을 철저히 제거하고 본능만을 키우는 것 같았다. 본능만을 가진 인간은 동물처럼 생각하고 동물처럼 행동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동물보다 더 지독했다.


전쟁은 도대체 왜 일어나는 걸까? 아마 끝없는 인간의 욕심 때문일 것이다. 고대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쟁은 소수 위정자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고, 죄 없는 국민들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 희생되었다.


일본군은 만들어진 우상인 천황을 위해 포로들을 기차선로를 놓기 위한 소모품으로 여겼고, 그들 자신의 목숨도 바칠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상부 기관의 명령을 절대적인 신념으로 받들면서 포로들을 동물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했고 죄책감도 거의 느끼지 않았다. 한나 아렌트가 지적한 '악의 평범성'이 여기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이 작품은 독자들이 당시 전쟁터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현장을 느끼게 했다. 전쟁이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이유를, 화려한 말이나 고상한 사상을 피력하지 않고서도, 독자 스스로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인간의 참모습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책을 읽는 동안, 지금 우리가 살아 있는 현실이 오히려 비현실적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작품 속에 푹 빠져 있었다.



라인, 즉 선이란 무엇인가? 선이란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현실에서 비현실로, 삶에서 지옥으로 나아가는 것. 학교 때 기하학을 배우며 들은 유클리드의 설명으로는 '너비가 없는 길이.' 너비가 없는 길이, 의미가 없는 삶, 삶에서 죽음으로 가는 행렬. 지옥으로 가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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