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울 땐 독서
보후밀 흐라발은 프란츠 카프카 이후 밀란 쿤데라와 함께 체코를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힌다. ‘프라하의 봄’ 이후 밀란 쿤데라를 비롯한 많은 작가들이 프랑스 등으로 망명했지만, 그는 체코에 남아서 체코어로 작품을 썼다.
밀란 쿤데라는 흐라발을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체코 최고의 작가’라고 말했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흐라발 본인이 ‘나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세상에 나왔다’고 선언할 만큼 그가 아끼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삼십 오 년째 책과 폐지를 압축하고 있는 ‘한탸’이다. 작품은 이렇게 시작된다.
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 일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러브 스토리다. 삼십오 년째 책과 폐지를 압축하느라 삼십오 년간 활자에 찌든 나는, 그동안 내 손으로 족히 3톤은 압축했을 백과사전들과 흡사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나는 맑은 샘물과 고인 물이 가득한 항아리여서 조금만 몸을 기울여도 근사한 생각의 물줄기가 흘러나온다.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 된 나는 이제 어느 것이 내 생각이고 어느 것이 책에서 읽은 건지도 명확히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삼십오 년간 나는 그렇게 주변 세계에 적응해왔다. 사실 내 독서는 딱히 읽는 행위라고 말할 수 없다. 나는 근사한 문장을 통째로 쪼아 사탕처럼 빨아먹고, 작은 잔에 든 리큐어처럼 홀짝대며 음미한다. 사상이 내 안에 알코올처럼 녹아들 때까지. 문장은 천천히 스며들어 나의 뇌와 심장을 적실 뿐 아니라 혈관 깊숙이 모세혈관까지 비집고 들어온다. 그런 식으로 나는 단 한 달 만에 2톤의 책을 압축한다.(9~10쪽)
이렇게 시작하는 글은 작품 전체를 은밀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았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작가가 ‘책에 바치는 오마주’로 느껴졌다.
특히 ‘사상이 내 안에 알코올처럼 녹아들 때까지. 문장은 천천히 스며들어 나의 뇌와 심장을 적실 뿐 아니라 혈관 깊숙이 모세혈관까지 비집고 들어온다’는 부분은, 책을 어떻게 읽어야하는지 보여주는 글 같다. 책의 내용이 나의 ‘뇌와 심장’을 적시고 ‘모세혈관’까지 들어온다는 것은, 책이 독자에게 완전히 체화됨을 뜻하는 것일 것이다. 이런 경지에 이르게 된다면 정말 책은 독자에게 피와 살이 될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경지이다.
시작하는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주인공 한탸의 일인칭 고백으로 전개된다. 폐지 압축공인 한탸는 폐지를 압축하는 압축기가 있는 지하실에서 삼십 오년 동안이나 폐지를 압축했다.
이 작품은 모두 8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 2, 3, 6, 7장에서 시작은 거의 언제나 ‘삼십오 년 동안 나는 폐지를 압축해왔다’라는 문장의 비슷하면서 다양한 변주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독특한 방식의 글쓰기는 독자들도 그 똑같은 일의 지겨움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게 했다. 이런 지겨움은 우리 삶을 상징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겠다. 그렇게 볼 수 있다면 한탸에게서 시시포스의 모습이 보인다고 해도 큰 무리는 아닐 듯싶다.
삼십오 년 동안 나는 폐지를 압축해왔다. 내게 선택권이 다시 주어진다 해도 다른 일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래도 석 달에 한 번쯤은 내 일에 대한 소신에도 변화가 닥쳐 지하실이 혐오스러워지곤 한다.(35쪽)
그는 가끔 이렇게 불평을 하기도 하지만, 지하실은 그에게 정신적인 성소와도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독서를 하며 교양을 쌓았고 렘브란트와 할스, 모네, 마네, 클림트, 세잔 같은 유명 화가들의 복제화를 보며 즐거워했다. 그리고 환상이었지만 예수와 노자를 만나기도 하는, 멋진 곳이었다.
이렇게 책을 좋아하는 한탸가, 책을 없애버리는 폐지 압축일을 해야 하는 것은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 이 일을 하게 되면서 한탸가 책을 좋아하게 된 것이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삶에서는 가끔 이런 역설적인 일이 벌어지기도 하므로.
내 손 밑에서, 내 압축기 안에서 희귀한 책들이 죽어가지만 그 흐름을 막을 길이 없다. (12쪽)
한탸는 자기가 하는 일을 너무나 사랑했다. 그래서 은퇴 후에도 그 폐지 압축기를 가지기를 원했다.
삼십오 년째 압축기로 폐지를 압축해왔지만 오 년 후면 나도 내 기계와 함께 은퇴한다. 하지만 이 기계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려고 나는 저금을 하고 있고, 저금통장까지 가지고 있다. 우리는 함께 은퇴할 것이다······ (17쪽)
그런데 어느 날 한탸는 현대적 시설을 갖춘 폐지 처리장에서 거대한 압축기를 보게 되었다. 그가 폐지 작업 중에 만나는 책들을 음미하며 충만한 시간을 보낸데 비해, 그곳에서는 비인간적인 컨베이어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는 그 장면을 보고 큰 충격에 빠졌다. 이 장면은 여러 가지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것 같지만, 그 중 하나로 볼 수 있는 것은, 개인의 정체성이 집단 생산의 체제 속에서 실종되어버리는 것이었다.
한탸는 자신이 하던 폐지 작업 일을 하다가 은퇴하고 싶었지만, 그의 작업장도 새로운 시대의 기계화의 흐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그는 새로운 작업장에서 백지를 꾸려야 하는 일을 해야 했다. 그는 이런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 변화는, 그에게는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일이었고, 그에게 정체성의 포기는 죽음과 다를 바가 없었다.
결국 한탸는 그가 사랑하는 책들의 세계 속으로, 즉 압축기 속으로 들어가면서 자신의 세계를 포기하지 않는 쪽의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 작품은 132쪽밖에 안 되는 분량이지만, 작품에 응축된 의미들이 다양하게 변주되었다. 인간의 고독과 책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고, 책이 인간의 고독에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했다. 물론 책이 인간의 고독을 완전히 치유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고독을 즐거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는 힘은 있는 것 같다.
인간은 근원적으로 고독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고독에 고요하게 빠지기도 힘든 존재인 것 같다. 고요하게 고독에 빠지는 것은 일종의 명상상태와 비슷할 듯싶다. 인간은 고독하면서도 고요하게 있지 못하고, 머릿속은 온갖 번뇌 망상이 시끄럽게 자리 잡고 있다. 그 모습이 인간의 솔직한 모습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혹시 이런 점에서 작가가 책 제목을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하고 내 멋대로 상상해보았다.
물론 작품 속에서 드러난 것처럼, 폐지 압축기가 시끄럽고 돌아가고 쥐가 찍찍대는 지하실 공간에서 한탸가 혼자 있는 시간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너무 표피적인 것이 될 것 같다.
때때로 어떤 문학 작품에서는 한 줄의 글이 많은 은유와 상상을 불러일으킬 때가 있다. 내게는 이 작품이 바로 그랬다.
마치 거대한 한 편의 시와 같다는 생각.
* 참고; 이 작품은 1977년 프라하에서 지하 출판samisdat으로 유통되었던 이 작품은 1980년 독일에서 출판되었고, 체코에서는 1989년에 이르러서야 공식적으로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