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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의 공동체

-외로울 땐 독서

by 푸른 오리

느낌의 공동체/신형철 산문 2006~2009/문학동네


책머리 앞에 쓴 글을 먼저 읽어보았다.

‘<몰락의 에티카>에서 뽑아 다듬어 옮기다’라는 글에서, 이 산문집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느낌의 세계 안에서 드물게 발생하는 사건일 것이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명확히 표명될 수 없는 느낌들의 기적적인 교류, 그러니까 어떤 느낌 안에서 두 존재가 만나는 짧은 순간.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 너를 사로잡고 있는 느낌을 알 수 있고 그 느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그렇게 느낌의 세계 안에서 우리는 만난다. 서로 사랑하는 이들만이 느낌의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다. 사랑은 능력이다.


신형철은 문학이라는 통로를 통해 그 느낌의 세계로 들어가자고 말하는 것 같다. 우리는 서로 이해하고 사랑해야 그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 나와 당신, 혹은 나와 그들이, 느낌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면 우리는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감정을 공유하게 될 것이다. 그곳은 아픈 사람이 위로받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나며, 허심탄회한 이야기들이 자유롭게 오고 가는 진정한 소통의 장(場)이 될 것이다. 그런 세계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신형철은 그 멋진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했고, 스스로 가이드를 자처했으니, 우리는 그저 그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가면 될 것이다. 즐거운 여정이 되리라는 기대를 하며 책의 문을 열었다.


그는 이 책이 그의 두 번째 평론집이 아니라 첫 번째 산문집이라고 했다. 그는 ‘산문에는 두 종류가 있다. 시가 된 산문과 그냥 산문. 산문시를 꿈꾼 흔적이 없는 산문은 시시하다’고 했다. 그는 김훈의 <풍경과 상처>나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 같은 극소수의 책들이 그 꿈을 이루었다면서, 자신의 내밀한 소망도 은근히 내보였다. 이 책은 상당 부분 그의 소망에 부합되지 않았을까.


<느낌의 공동체>는 2006년 봄부터 2009년 겨울까지 쓴 짧은 글들을 추렸다. 그 글들은 경향신문, <한겨레 21>, 대학신문, <시사IN>, 청소년 잡지 <풋>에 실린 것들이었다. 책에서는 차례대로 시인, 시집, 세상, 소설, 영화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사이, 사이에 전주, 간주, 후주를 끼워 넣어 기둥 역할을 하게 했다.


그가 책에서 소개한 시집, 소설, 영화를 위시 리스트(wish list)에 쟁여두었다가 야금야금 꺼내서 먹고 싶다. 내 영혼의 곡간이 풍성해진 느낌이다.


일반적으로 평론집을 읽을 때는 즐거움의 기억보다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경험이 더 많았던 것 같았다. 그런데 <느낌의 공동체>는 평론집이었지만 색다른 맛이 있었다.

신형철은 이 책이 평론집이 아니라, 산문집이라고 주장했지만 말이다. 그의 주장에 일리가 있었다. 마치 아름다운 산문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므로. 독자 입장에서는 솔직히 반갑고 고마운, 산문 같은 평론들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읽었다. 나는 <느낌의 공동체>가 훨씬 더 아름다운 산문 같았다. 취향의 문제일 수는 있지만.


이 책의 후주에서는 ‘문학 작품의 세 가지 가치’에 대해서 다루었는데, 참고할 만해서 대략의 내용을 옮겨 보았다.


1. 인식적 가치


훌륭한 예술 작품은 인간과 세계에 대해서 우리가 미처 몰랐던 무언가를 알게 한다(...) 좋은 문학 작품에서 인식적 가치는 그 작품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그때 작품은 내용물을 꺼내려하면 부서지고 마는 도자기와 같다.



2. 정서적 가치


훌륭한 예술 작품은 우리를 기쁘게 혹은 슬프게 한다. 기쁨이 필요한 사람에게 기쁨을, 슬픔이 필요한 사람에게 슬픔을 제공하는 일이 일반적으로 작품에 요구되는 것들이다. 그러나 어떤 작품은 기쁨을 슬프게 하고 슬픔을 기쁘게 해서 낯선 정서를 창출해내기도 한다. 그 경우 우리는 익숙한 정서를 작품에서 재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제공하는 낯선 정서에 서서히 젖어 들어가게 될 것이다. 어떤 정서는 특정한 작품 안에서만 느낄 수 있다. 작품은 정서의 창조다.



3. 미적 가치


훌륭한 예술 작품은 아름답다. 문학의 경우 그 아름다움은 대개 모국어의 조탁(彫琢)과 선용(善用)에서 생겨나는 아름다움이고 내용과 형식의 긴밀한 조화가 뿜어내는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 작품은 흔히 아름답다고 간주되는 것을 전복하는 추의 미학을 보여주기도 하고 심드렁한 방식으로 미추를 해체하여 이상한 아름다움에 도달하기도 한다. 아름다움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만,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다.


이 책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그 이야기들을 직접 읽으면서, 스스로 느끼는 시간을 가지고, 그 느낌이 우리의 내부로 들어와 우리 자신의 것으로 자리 잡을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느낌의 공동체’ 일원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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