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울 땐 독서
주로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서 일어나는 학대 관계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한 책. 저자는 미국 국가 공인 심리치료사인 에이버리 닐이다.
추천 글을 쓴 로이스 P. 프랑켈은 학대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권력에 관한 문제라고 했다. 현재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자신을 해치는 관계를 계속하는 이유를, ‘끓는 물속 개구리 증후군’, ‘반복 강박’, ‘권위자는 무조건 존경해야 한다는 가르침’, ‘매물비용(어떤 선택을 한 뒤에는 번복 여부와 상관없이 회수할 수 없는 비용. 함몰 비용이라고도 한다) 딜레마’, ‘사회가 가하는 압력’등의 몇 가지 가설로 설명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런 가설에 상당 부분 동의하게 된다.
저자는 학대 abuse를 간단하게 정의했다. ‘누군가가 당신을 부당하게 취급하는 것, 함부로 대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정의를 보면, 누군가가 자기를 함부로 대하는데 가만히 있는 사람이 있겠는가, 싶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알게 모르게 학대당하는 사람들, 특히 여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것도 사랑하는 사이인 연인과 부부 사이에 말이다. 무척 충격적인 일이다.
저자는 이런 실제의 사례를 들어, 여러 종류의 학대 유형과 그에 대한 정신적 외상 치유법을 제시했다.
학대는 크게 나누어본다면 육체적 학대와 감정적인 학대가 있다. 일반적으로 육체적 학대는 명백하게 학대라는 것을 알지만, 감정적인 학대는 굉장히 은밀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피해자가 그것을 학대라고 생각하지 못한다는 점이, 더 심각한 듯했다.
저자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학대의 예를 이렇게 들었다.
나는 사람을 우습게 만드는 말, 사람을 휘두르려는 의도들, 강압적인 태도, 계속되는 부당한 대우,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 수동 공격 행동, 언어폭력,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학대를 모두 포함하는 학대의 정의를 내리고 싶다.(31쪽)
그리고 누가 봐도 학대임이 분명한 경우라고 해도 학대자가 바로 행동을 멈추고 좋은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럴 때에는 피해자가 그것에 대해 제대로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데, 여기에, 학대의 심각성이 있다.
저자는 만남 초기에 학대자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위험 징후의 예를 보여주었다. 그런 예들을 다 옮기기에는 너무 많아서 대표적인 것들 몇 개만 옮겨본다.
•지나치게 열정적이고 과도하게 상대방의 일에 관여한다.
•끊임없이 연락을 하려고 한다.
•지나치게 친절해서 어떨 때는 위선적이라고 느껴진다.
•당신을 존중하지 않는다.
•당신이 원하지 않는 호의를 베풀거나 불편하게 만든다.
•여성을 대하는 태도가 부정적이다.
•다른 사람이 있으면 당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당신이 한 일이나 하고자 하는 일을 우습게 여긴다.
이런 신호를 학대자의 특징으로 알고 미리 대처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이 책을 미혼 여성이 읽는다면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다.
학대자는 공감 능력이 떨어져서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거의 없고, 철저하게 학대자 위주의 사고방식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그와 함께하는 사람은 피해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학대자의 피해자는 일반적으로 공감 능력이 높다는 것이다.
학대자가 자신의 불우함에 대해 이야기하면, 피해자는 거기에 깊이 공감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학대자가 흔히 상대방을 이용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매우 비열한 방식이다.
저자는 ‘치유하기 위해 분노하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학대자의 동반자는 다른 사람을 심하게 배려하고 순종적이며 지나치게 책임감이 강해서, 분노를 인정하는 일이 특히 어렵다고 하며, 칼 융의 그림자 가설 Shadow Theory을 예를 들었다.
사람은 자신에게 있는(빛에 해당하는) 특정 속성을 자기 자신의 모습이라고 규정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속성에 매달릴수록 그런 속성과는 반대되는(그림자에 해당하는) 속성을 부정하기 때문에 균형이 깨질 수 있다.(263쪽)
저자는 이에 대해 아래와 같이 부연 설명을 했다.
그림자 속성들 또한 인간관계에서는 실제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 사람이 특정 속성은 계속해서 드러내려고 하고 특정 속성은 계속해서 억누르면 인간관계에서는 양극화 효과 polarizing effect가 나타난다. 학대 관계에서는 양극화 효과를 분명하게 볼 수 있다. 한 사람이 화를 잘 내고 자기주장이 강하고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 상대방은 친절하고 순종적이고 배려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관계에서는 빠른 속도로 두 사람의 힘의 균형이 무너지고 파괴적인 패턴이 드러난다.(263쪽)
나는 이 말을 피해자가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건강한 삶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맥락으로 받아들였다. 인간의 내면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 그런데 빛만을 드러내고 그림자를 부정하면 자기 자신과 자신의 욕구를 알 수 없으므로, 자유로운 삶을 살 수가 없다.
피해자는 학대자의 태도가 언젠가는 변할 것이라고 믿으며 쉽게 헤어지지 못한다. 죄책감이나 부담감을 느껴서인데, 그 이유가 자식들이나 ‘매물비용’의 문제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는 심리 상담을 통해서 학대자의 태도를 바꾸어보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저자는 단언컨대 그런 시도는 거의 실패한다고 했다. 학대자는 결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의 결론은, 피해자가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는 학대자와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저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피해자들의 낮아진 자존감을 세워주기 위한 글을 썼는데, 그 내용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마치 ‘피해자들을 위한 권리장전’ 같았다. 좀 길지만 그대로 옮겨본다.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저 당신의 직업으로, 여자 친구나 아내, 어머니의 역할로, 당신이 맡은 책임으로 평가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괜찮은 특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충분히 사랑받고 사랑할 가치가 있는 사람입니다. 존중받고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당신의 기본 권리로서 당신은 그 권리를 누릴 자격이 충분히 있습니다.
당신은 욕구와 감정, 생각과 욕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경험이 이룬 결실이며 그런 경험들을 당신이 해석한 결과입니다. 당신에게는 행복과 즐거움을 느낄 권리가 있는 것처럼 슬픔과 분노, 두려움을 느낄 권리도 있습니다. 당신의 감정과 욕구는 다른 사람의 감정과 욕구만큼이나 중요합니다. 당신의 행복은 중요합니다. 당신이라는 존재는 당신의 몸을 넘어 확장됩니다. 당신이 사랑해주고 포용해줘야 하는 존재입니다. 당신을 스스로 소중하게 여기면 당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고 제대로 대우해주는 사람에게 끌리게 됩니다.(2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