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울 땐 독서
떠돌이 철학자 에릭 호퍼를 처음 알게 되었다. 이 책에는 그의 삶을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27개의 에세이에 실려 있다. 철학자의 책이긴 하지만, 삶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여서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야기의 울림은 꽤 컸다.
에릭 호퍼(Eric Hoffer, 1902~1983)는 평생을 길 위에서 일하며 사색한 미국의 사회철학자이다. 그는 어렸을 때 사고로 시력을 잃어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열다섯 살에 기적적으로 시력을 다시 회복했고, 언젠가 다시 앞을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며 독서에 몰두했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오렌지 행상, 시간제 웨이터, 사금 채취 공, 부두 노동자로 전전하면서 평생 떠돌이 노동자로 일하면서 얻은 체험으로 독자적인 사상을 지닌 글을 썼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발표한 《대중 운동의 실상 The True Believer》(1951)은 집단 동일시에 관한 심리 연구서적으로서, 오늘날에도 테러리스트, 자살 폭탄자들의 경우에 유용하게 적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으로 호퍼는 엄청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 밖의 저서로는 《마음의 열정적 상태와 그 밖의 잠언 The Passionate State of Mind and Other Aphorism》(1954), 《변화의 시련 The ordeal of change 》(1963), 《우리 시대의 기질 The Temper of Our Time》(1967), 《인간 상황의 고찰 Reflections on the Human Condition》(1973), 《우리 시대 In Our Time》1976), 자서전《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 Truth Imagined》등이 있다.
그는 1983년 사망하였으며, 그해 미국 대통령의 자유훈장이 수여되었다. 2001년 호퍼의 이름을 딴 ‘에릭 호퍼 문학상(Eric Hoffer Award)’이 제정되었다.
이 책에는 에릭 호퍼가 다룬 9가지 주제를 요약한 글이 있는데, 그의 사상을 잘 드러내고 있어서 그대로 옮겨 본다.
-Education
교육의 주된 역할은 배우려는 의욕과 능력을 몸에 심어주는 데 있다. ‘배운 인간’이 아닌 계속 배워 나가는 인간을 배출해야 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인간적인 사회란 조부모도, 부모도, 아이도 모두 배우는 사회이다.(29쪽)
-멋진 말이다. 어쩌면 인간은 죽을 때 완성되는 존재인지 모른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동안은 부단히 배워야 한다. 죽음이 그를 이 세상과 갈라놓을 때까지.
삶은 니체의 ‘초인(Übermensch)’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Power
절대 권력은 선의의 목적으로 행사될 때에도 부패한다. 백성들의 목자를 자처하는 자비로운 군주는 그럼에도 백성들에게 양과 같은 복종을 요구한다. (52쪽)
-절대 권력의 위험을 잘 지적한 말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절대 권력은 백성들이나 국민들의 절대복종을 요구했다. 무서운 진실이다.
-Failure
우리는 주로 자신이 우위에 설 희망이 없는 문제에서 평등을 주장한다. 절실히 원하지만 가질 수 없음을 알고 있는 그것을 찾기 위해서는 자신이 절대적 평등을 내세우는 분야를 찾아야 한다. 그런 시험에서 공산주의자란 좌절한 자본주의자라는 것이 드러난다. (72쪽)
-에릭 호퍼의 이런 주장은 니체의 사상과 거의 일치하는 듯하다. 인간은 교묘하게 자기 자신을 속이거나 포장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건 본능이기도 하지만.
-Hope
절망과 고통은 정태적인 요소이다. 상승의 동력은 희망과 긍지에서 나온다. 인간들로 하여금 반항하게 하는 것은 현실의 고통이 아니라 보다 나은 것들에 대한 희구이다.(89쪽)
-인간의 삶에서 절망과 고통은 상수(常數)다. 때로는 이런 절망과 고통이 인간들로 하여금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여, 불평이나 불만을 가지기보다는 절망과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인간의 몫이련가.
-Language
언어는 질문을 하기 위해 창안되었다. 대답은 투덜대거나 제스처로 할 수 있지만 질문은 반드시 말로 해야 한다. 사람이 사람다운 것은 첫 질문을 던졌던 때부터였다. 사회적 정체는 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질문을 할 충동이 없는 데에서 비롯된다.(105쪽)
-사람이 사람다운 것은 첫 질문을 던졌던 때부터였다.
언어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 말이다. 우리 삶에 대해서 대답보다는 ‘질문’을 하며 살아가야 할 듯. 대답보다는 ‘질문’이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삶의 방식 같다.
-Happiness
이런저런 것만 있으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는 것은 불행의 원인이 불완전하고 오염된 자아에 있다는 인식을 억누르는 것이 된다. 따라서 과도한 욕망은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느낌을 억누르는 수단이 된다.(123쪽)
-소박하고 자족하는 삶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인 듯.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는 과도한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체제다. 이런 제도 아래에서 개인 혼자서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가치관을 지키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이 시대에 철학이 필요하긴 하지만.
Religion
종교는 신이나 교회, 성스러운 동기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액세서리에 지나지 않는다. 종교적 몰입의 근원은 자아에, 아니 그보다는 오히려 자아의 거부에 있다. 헌신은 자아 거부의 앞면이다. 종교적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 왜냐하면 몽테뉴도 지적했듯이 ‘자기를 증오하고 경멸하는 것은 다른 피조물에서는 볼 수 없는 인간에 국한된 병’이기 때문이다.(139쪽)
-종교 몰입의 근원이 자아 거부에 있다고 했다. 약한 인간으로서 신을 믿고 신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하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호퍼의 지적에 공감한다.
-Hatred
증오가 정당한 불평보다는 자기 경멸에서 솟아난다는 것은 증오와 죄의식의 밀접한 관계에서 드러난다.(157쪽)
-심리학적으로 맞는 얘기인 듯. 불평은 근원적으로 들어가 보면 자기 경멸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증오하면서 한편으로는 죄의식을 느끼는 복잡한 인간의 심리.
-Money
돈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는 상투어를 만들어낸 사람은 악의 본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며, 인간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게 없다.(170쪽)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잃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약간의 ‘돈’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돈’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닌 중립적이다. 다만 그 ‘돈’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린 문제.
책 말미에 에릭 호퍼가 일흔두 살이었던, 1974년 7월 21일에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San Francisco Chronicle』에 「Eric Hoffe at Seventy-Two」라는 제목으로 실린 인터뷰를 옮긴 내용이 실려 있다. 그 내용들 중에 멋진 글들이 무척 많았지만 몇 개만 옮겨본다.
“사람들이 하루 6시간만 일을 하고, 그다음에는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을 추구한다면 은퇴라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은퇴란 단지 자신들이 이제까지 줄곧 해 왔던 것들에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 주는 것일 뿐이지요.”(161쪽)
“의미 있는 생활은 배우는 생활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하는 데 몰두해야 해요. 나는 기술 요법이 신앙 치료나 정신 의학보다 중요하다고 믿고 있어요. 기술을 습득하게 되면 그 기술 자체는 쓸모없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당신은 자부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섯 살 난 아이를 지켜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술을 익히려는 아이들의 열망을 목격했을 겁니다. 나는 어른스러움이란 다섯 살 난 아이가 놀이를 할 때 보여 주는 진지함을 재 획득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보들레르가 천재를 ‘다시 찾은 유년’이라고 정의한 것을 읽기 전까지 나는 내가 한 이 말을 독창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요.”(190쪽)
“내게 글쓰기는 육체적으로 꼭 필요한 일입니다. 나는 좋아지는 것을 느끼기 위해 글을 써야 합니다. 그건 많은 사람들에게도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D.H. 로렌스는 글을 쓰는 동안에는 노이로제와 같은 질병을 떨쳐 버릴 수 있다고 했지요. 도서관에 왜 그렇게 많은 책들이 있는지는 그걸로 충분한 설명이 됩니다. 책을 한 권 쓰게 되면 계속 쓰게 됩니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더 나아지는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나는 부두에서는 은퇴할 수 있었지만 글쓰기에서는 결코 은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내 책은 모두 짧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지요.”(192~193쪽)
그가 철학자들이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한 멋진 말로 이 글을 맺는다.
“철학자들의 의도는 무엇이 옳은지를 사람들의 코 밑에 가져다 보여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