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란 무엇인가/김영민/어크로스

-외로울 땐 독서

by 푸른 오리

책 제목이 『공부란 무엇인가』이다.

공부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흥미를 유발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시선을 돌리게 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사람들에게 작은 파문(?)을 던지는 제목이다.

공부란 학생들만 하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공부란 사람을 지혜롭게 하는 것이고, 지혜는 살아가는 동안 꼭 필요한 삶의 무기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공부가 ‘정신의 척추 기립근’을 세우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식이 깊어지면 좀 더 섬세한 인식을 하게 된다면서, 섬세함이 중요한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섬세함은 사회적 삶에서도 중요하다. 섬세한 언어를 매개로 자신을 타인에게 이해시키고 또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훈련을 할 때 비로소 공동체를 이루고 살 수 있다(...) 섬세한 언어야말로 자신의 정신을 진전시킬 정교한 쇄빙선이다.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고 싶다면, 다른 세계를 가진 사람을 만나야 하고, 그 만남에는 섬세한 언어가 필수적이다. 언어라는 쇄빙선을 잘 운용할 수 있다면, 물리적인 의미의 세계는 불변하더라도 자신이 체험하는 우주는 확장할 수 있다. 그 과정 전체에 대해 메타적인 이해마저 더한다면, 그 우주는 입체적으로 변할 것이다. (84~85쪽)


학교를 졸업한 일이 까마득한 전생의 일처럼 느껴지는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공부는 독서인 것 같다. 책을 통해서, 나와 다른 타인과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물리적인 의미의 세계는 불변하더라도, 내가 체험하는 세계를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경험에 합당한 언어를 부여하지 않으면 그 경험은 사라지게 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섬세한 언어로 자신의 경험을 피력하지 못한다면, 그 경험 자체가 사라진다고 하니, 언어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알 수 있다.

경험이 단순히 일과성 사건으로만 끝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자기 성찰이 필요하고, 그 성찰에는 섬세한 언어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언어가 먼저인가, 사고가 먼저인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겠지만, 결국 인간은 그가 가진 언어로 사고하고, 그가 가진 언어의 범위만큼 사고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간이 가진 언어의 폭이 넓고 섬세할수록, 그가 직접 경험한 일의 맥락을 더 분명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공부는 주로 책이나 경험을 통해서 할 수 있는데, 내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책인 것 같다. 이 책에서도, 책에 대한 글들이 많았다.


책을 왜 읽는가? 어떤 이는 사회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책을 읽는다. 프랑스의 비평가 에밀 파게는 말했다. “독서의 적(敵)은 인생 그 자체다. 삶은 질투와 경쟁으로 뒤흔들리고, 우리를 독서를 통한 자기 성찰에서 멀어지게 한다.” 그리하여 질투와 경쟁으로 뒤범벅이 된 사회, 그 모래 지옥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책을 읽는다.
책은 다른 매체보다 훨씬 더 독자에게 집중력과 몰입을 요구한다. 숨죽여 책에 집중해 있노라면, 세상이 고요해지고, 독서가는 참평화를 얻는다. 미국의 작가 수전 손택은 말했다. “독서는 제게 유흥이고 휴식이고 위로고 내 작은 자살이에요. 세상이 못 견디겠으면 책을 들고 쪼그려 눕죠. 그건 내가 모든 걸 잊고 떠날 수 있게 해주는 작은 우주선이에요.”(139~140쪽)


책 읽기의 즐거움을 토로한 글들이다. 작은 책 한 권을 통해서, 우리는 모험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휴식을 하기도 한다. 책만큼 다양한 체험을 하게 하는 것도 많지 않은 것 같다. 책은 나이가 어리거나, 나이가 많거나, 가난하거나, 부자이거나, 누구나 손쉽게 접할 수 있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책은 인간이 만들어낸 최고의 발명품이다.


책이 주는 즐거움은 아래 글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책은 사회와 자아의 중간에 있다. 사회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 독서에 몰입할 수도 있고, 자아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 책을 읽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책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준다. 책의 내용은 언어로 되어 있고, 언어는 사회가 공유하는 것이며, 그 언어를 통해 사람들은 의사소통을 한다. 사회로부터 도망치게 위해 책을 읽다가 거꾸로 소통을 위한 언어가 풍부해지는 역설이 독서 행위에 있다.
언어가 풍부해지면, 사회에 나가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더라도 작은 축제와 같은 나날을 보내게 된다. 이것저것 머리에 넣어두면, 그것들은 자기들이 알아서 부딪히고 발효되어, 다채로운 상상을 일으킨다. (140~141쪽)


학생들에게는 공부의 목적이 대체로 구체적인 것이겠지만, 이미 노년에 이른 나는, 굳이 목적 있는 공부를 안 해도 될 것 같다.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의 즐거움을 조금은 알기 때문이다.


공부가 즉각적인 쓸모와 거리가 멀면 멀수록, 묘한 ‘간지’가 난다는 것이다. 당장 쓸모가 무엇인지는 모르겠는데,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 것들. 이를테면 라틴어나 한문 공부, 혹은 초서 읽기나 암벽 등반은 어떤가. 현실적으로 무슨 이득을 가져다주는지 언뜻 불분명한 일들에 성심껏 종사하는 이들에게는 자기 통제력을 놓지 않은 파계승 같은 ‘간지’가 감돈다. (87쪽)


나는 주로 책 읽기를 통한 공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세상은 넓고 책들은 많다!

즐거움도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 나이에도 여전히 유효한 금언 하나로 글을 맺을까 한다.

No pain, no 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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