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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오리 Feb 18. 2021

나이듦에 관하여/루이즈 애런슨 지음/Being

  -외로울 땐 독서

 나이듦을 재정의하고 의료 서비스를 혁신하여 우리 삶을 재구상하다

 Redefining Aging, Transforming Medicine, Reimagining Life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우연히 책 소개하는 방송을 듣게 되었다. 책 제목은 「나이듦에 관하여」였다. 그리고 그날 오후 도서관에서 이 책이 서가에 꽂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 이 책을 읽어보라는 계시였나?’ 하는 신비로움까지 느끼며 책을 빌렸다. 책의 쪽수는 장장 800쪽이 넘었다. 공포의 벽돌 책이었지만, 내게 다가온 ‘인연’이라는 생각 때문에 거부할 수 없었다. 다분히 미신적인 생각이지만 책과의 만남이 가끔 이렇게 이루어졌다. 






 인간의 기대 수명을 백세까지 바라보게 된 초고령시대를 맞이하게 된 요즘, ‘늙어감과 노인’에 관해 깊이 있는 성찰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던 중,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저자인 루이즈 애런스 Louise Aronson은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프란시스코 캠퍼스 의과대학 교수인 노인의학 전문의이다.


 이 책에는 노인학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담겨있는데, 그녀는 오늘날 의학계가 노인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녀의 이런 태도는 여태까지 의료계가 노인들을 대해온 방식에 대한 일종의 양심 고백으로 여겨졌다. 

 노인이 아닌, 일반 사람들도 병원에서의 기분 나빴던 경험이 한두 가지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인들의 경우는 더 심했을 것이라고 쉽게 상상해볼 수 있겠다. 

 흔히 노인이 아파서 병원에 갔을 때, 의사들은 간단히 ‘노환’이라며 젊은 사람들만큼 성의 있게 보살펴주지 않거나, 죽음을 앞둔 노인 환자들에게 ‘고식적’ 치료를 하기도 한다. 

 ‘고식적’이란 말은, 이 책에서 처음으로 알게 된 용어인데, 사전을 찾아보니 ‘근본적인 대책 없이 임시변통으로 하는 (것)’이라는 뜻이었다. 사람의 생명은 나이와 관계없이 소중한 것인데, 현실은 나이에 따라 생명가치가 달라질 때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회복 가능성이 거의 없는 노인 환자들에게 불필요한 여러 가지 의례적인 검사를 하는 병원 시스템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환자들이 그런 검사를 받으며 힘든 시간을 겪으며 더 많은 고통에 시달리게 되는 경우를 지적했다. 그런 경우에는 차라리 고통을 경감시켜주는 진통제를 쓰면서 마지막 남은 시간을 편안하게 가족들과 함께 보내게 하는 것이, 그 환자에 대한 진정한 배려라고 저자는 주장했다. 


 이런 일은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의 문제는 사실 한 사람의 인생을 마무리하는 문제이다. 그러므로 병원이나 의사들은 환자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서 치료 방향을 숙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런 일이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마지막 순간이 가까워도 자신이 뭘 원하는지 혹은 어디까지 소망할 수 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세상에 몇 안 된다. 사람들은 의사의 말이라면 다 객관적 진실이라 믿으며 의사의 권고를 무조건 따른다. 그러나 의사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그렇기에 때때로 그릇된 정보를 전달하거나 어리석은 판단을 내린다. 의사도 다른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시대와 사상의 합작품인 까닭이다. (382쪽)

 

그리고 저자는, ‘고식적 의료’라는 말을 만든 캐나다 의사 팰퍼드 마운트의 말을 인용했다.


 오늘날의 의학은 칭찬받을 자격이 없다. 현대 의학이 할 줄 아는 건 아파도 찍 소리 한번 못 내는 환자들의 고통을 모른 체하는 것뿐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말기 환자들에게 특히 공공연한 의학의 오만함은 폭로될 기회가 없다.······ 우리는 스스로 선한 마음과 실력을 겸비한 의사라 자부하고 그렇게 되고자 노력하지만, 둘 다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환자들은 담당 의사가 모욕을 느끼거나 언짢게 여길까 봐 노심초사한다.(382~383쪽)


 저자와 팰퍼드 마운트는, 환자가 의사와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의사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현실에 대해서 따끔하게 지적했다. 이들의 말에 절대 공감한다. 한국도 조금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의사이면서도 의학이 꼭 만병통치는 아니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20세기 들어 노화와 임종이 마치 반드시 의학적 조치를 취해야 하는 사건인 것처럼 인식되면서, 의학은 스스로를 죽음이라는 절대악에 대항하는 무기라 자처해 왔다. 그러나 사실 의학은 인간이 자연스러운 생의 단계를 보다 편안하게 넘기도록 돕는 사회적 수단이어야 마땅하다. 그러려면 의사들은 어려운 대화를 원만하게 이끌고, 나쁜 소식을 잘 전하고, 환자가 생각하는 삶의 우선순위를 파악하고, 말년의 증상들을 적절히 관리할 줄 알아야 한다. (383)



 노인 전문의인 저자의 시각을 통해서 의료계의 현실을 좀 더 사실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점이 이 책의 큰 미덕이었다. 

 저자가 지적한 의료계의 현실을 감안해본다면, 노인이 되어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를 상상해서 향후 계획을 미리 세워보고 자신의 뜻을 가족들에게 미리 밝혀두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므로 차분하게 그때를 대비하면, 죽음 앞에서 덜 불안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은 젊어서 죽거나, 아니면 나이 들어서 병을 앓다가 죽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자에 속한다. 그런 엄연한 사실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늙어감’은 부인하거나, 저항하려고 한다. 

태어나서, 성장하고, 늙고, 죽는 과정 하나하나가 자연스러운 일이며, 거의 모든 생명체가 겪는 일이다. 그런데도 유독 ‘늙어감’에 대해서는 ‘초라하고 가치가 없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하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그런 인식이 잘못된 것이라며, 시인인 메리 루플 Mary Ruefle의 말을 인용했다.


 “늙는다는 것은 절대로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늙음이 선사하는 절대자유가 얼마나 놀랍고 감동적인지 아는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개의치 말라. 투명인간이 되는 순간- 이때는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더 빨리 찾아온다- 눈앞에는 무한한 자유의 세상이 펼쳐진다. 내게 이래라저래라 할 만한 인물들은 다 사라진 지 오래다. 부모님도 이미 돌아가셨다. 부모의 죽음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해방의 결정적 계기이기도 하다.”(507~508쪽)


 ‘늙음’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긍정적인 면도 많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말에, 즐겁게 공감했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다는 말처럼, 늙어서 얻게 되는 자유와 해방감은 즐길만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노년기에 삶의 만족도가 다시 높아지는 현상은 막상 노년기에 들어서면 부정적 인식은 줄고 긍정적 인식은 늘어나는 복합적 결과로 여겨진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저자는 불안감에 관해 조사한 연구 결과를 이렇게 소개했다.


최근 완결된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불안감 그래프는 10대부터 계속 증가하다가 35~59세 사이에서 정점을 찍는 모양새를 그린다. 그러다 60대 초반에 뚝 떨어진 뒤 65세에 다시 한번 껑충 내려가고 그런 다음에는 평생 최저치 수준이 유지된다. 행복과 만족감의 경우는 정반대 양상을 보였는데, 60~64세 집단의 점수가 20~59세 집단에 비해서는 더 높았고 65세 이상 집단과 비교하면 별반 다르지 않았다. 특이한 점은 90세 이상이 중년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는 것이다.(507쪽) 


 젊어서 죽지 않는다면 누구나 다 늙어간다. 그렇다면 우리는 늙어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이것은 가치관의 문제이다. 저자의 생각은 이랬다.


 노화에 대한 가치관은 자기 최면과도 같다. 노년기의 건강과 삶의 질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각자 상상해 온 그대로의 모습으로 실현된다. 생물학은 중요한 요소지만 마음가짐, 행동, 인간관계, 사회, 문화 등 다른 굵직한 변수도 많다. (694쪽)


 노후의 삶도 결국 스스로에게 달린 것이라는 것. 상상한 대로 노년기의 삶이 진행될 것이라고 하니, 긍정적인 시각으로 노년기를 맞이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늙음도 인간 발달 과정의 한 부분이므로 살아온 시간만큼이나 소중하게 받아들여야 하겠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인 ‘마침표’에서 저자는 말했다.


 흔히 사건이라 함은 전체 맥락이 아닌 절정의 순간과 마지막 장면들만 가지고 정의된다. 그렇다면 사람의 인생이란 뭘까?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일 중 가장 긴 시간에 걸쳐 일어나면서 희로애락이 수도 없이 교차하는 사건 아닐까? 그런 인생이 3부작 드라마라면 노년기는 마지막 3막이다. 이 최종 무대가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는 전부 우리 손에 달려 있다. (7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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