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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오리 Aug 01. 2022

장발에서 대머리로!


폭염이 계속되니 베란다 화단의 나무들의 우거진(?) 가지와 나뭇잎들이 너무 답답해 보였다. 하나는 홍콩 야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십여 년 전에 이사 올 때 인터넷으로 주문한 나무였는데, 이름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그 나무는 무서운 속도로 가지를 뻗고 키를 높이며 자랐다. 홍콩 야자도 성장 속도가 무서울 정도였다. 때때로 가지와 잎들을 잘라주었는데도 몸집을 불려 나가서 따라 잡기가 힘들었다.




계획했던 일은 아니었지만, 화단을 보는 순간에 갑자기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가끔 이런 충동에 휘둘릴 때가 있는데, 오늘이 그날이었다.

어지럽게 이리저리 얽혀있는 좁은 화단 속을 고개를 숙이고 몸을 웅크리고 겨우 들어갔다. 눈앞에 보이는 가지들과 잎들이 지나치게 번성하고 있었다. 그래서 큰 그림은 보지 않은 채, 오로지 잘라내야겠다는 생각만을 하며, 정신없이 싹둑싹둑 전정가위를 휘둘렀다.


한참 후에 바닥에 수북하게 쌓인 가지와 이파리들을 보고서야 겨우 허리를 펴고 화단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아, 이런, 이런!

뒤로 물러서서 본 풍경은 충격적이었다. 장발처럼 보이던 나무들이 거의 대머리처럼 되어버렸다. 화단은 무성한 여름에서 갑자기 휑한 겨울로 가버린 것 같았다. 나무들에게 몹시 미안했다. 정리를 한 것이 아니라 거의 절단을 해버린 것이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순간적으로 저지른 만행을 나무들이 용서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전모(全貌)를 보지 못하고 무심코 한 행동의 결과가 처참했지만, 가지와 나뭇잎들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제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삶에서 이런 어리석음을 저지르면 과연 원상복구 될 수 있을까.

나이가 들어도 지혜로워지지 않음을 한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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