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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적인 여행자/정여울/해냄

--외로울 땐 독서

by 푸른 오리



여행을 떠나는 목적은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낯설고 새로운 것을, 혹은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을 만나러 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행을 떠나게 하는 것은 어떤 내적 욕망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작가 정여울은 내성적인 성격에다 길치로 어릴 때 길을 자주 잃었다고 했다. 성인이 된 후에도 그의 ‘신통한 능력(?)’탓에 여행지에서 자주 길을 잃은 경험이 있었다고 했다.

나 역시, 작가에 결코 뒤지지 않을 정도의 길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시절에 단짝과 전국의 산과 바다, 섬을 많이 돌아다녔다. 내 친구 또한 ‘대단한’ 길치였다. 두 길치에게 주어진 선택권이란 다른 사람에게 길을 묻고 또 묻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어설픔이 의외의 인연으로 연결되거나, 계획에 없었던 새로운 경험을 하게 했다. 길치라고 해서 여행의 즐거움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양한 모험을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물론 좀 불편할 때도 있었지만 나름대로의 즐거움 또한 있었으니, 크게 불평할 일은 아니었다.




정여울은 독일, 헝가리, 벨기에, 오스트리아, 영국, 그리스, 프랑스, 이탈리아 등을 다니며 그곳의 풍경과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 꼼꼼하게 묘사했다. 문학, 음악, 미술 등 다방면의 예술 이야기도 적절하게 곁들였다.

그런데 한 상 잘 차려진 식탁 앞에서 나는 전혀 식욕이 동하지 않았다. 그것은 다만 작가의 경험과 추억이며, 기록일 뿐이라는 생각만 들었고, 이상하게 내게는 떨림이 별로 전해지지 않았다. 그런 사실에 나 스스로도 충격을 받았다. 그렇지만 한 사람의 경험이 타인에게 전이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경험은 그 사람의 것일 뿐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내성적인 여행자>는 바깥 세계의 여행기이다. 그 여정에 동참하지 못한 나는 방향을 꺾어, 나의 내면세계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결혼 후에는 전업주부로 살았고, 언감생심 배낭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다. 물론 가족여행은 많이 다녔지만, 진정한 여행의 즐거움은 친구와, 혹은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닐까 싶다. 주부의 자리가 선뜻 길 떠나지 못하게 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요즘은 주부들도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많이 하는 추세다. 그러니 길을 떠나지 못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나 자신도 궁금했다.


반복되는 일상에 매몰되어 바깥 세계에 대한 어떤 호기심 따위는 거세되어버린 것일까? ‘나’라는 개인의 정체성보다 ‘가족’이라는 집단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살아와서일까? 학창 시절에 나를 바깥 세계로 이끌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때 존재했던 그 무엇인가가 지금은 거세되어 욕망 자체가 부재하는 것일까? 그 무엇은 내적 정열 같은 것이었을까? 온통 의문투성이다.


나는 정말 욕망하지 않는 사람인가.

욕망은 어떤 면에서는 삶을 추동하는 에너지이다. 욕망의 부재라니? 무척 당황스럽다. 그래서 이런 생각까지 해보았다. 욕망이 여행을 이끌지만, 여행이 욕망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역전이도 가능한 것이 아닐까. 내부의 욕망은 꼭 탐색해 보아야만 하는 것일까?


그러나 이런 의문은 다 쓸데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단순히 떠나는 것에 대한 환상이 없는 사람이고, 여기저기를 떠도는 방랑의 에너지보다는, 내가 머무는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싶은 안정성의 에너지가 더 큰 사람일 수 있다. 이렇게 나도 나를 잘 모르니, 다른 사람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나는 이 책에서 ‘모네에게 가는 길, 빛의 심장을 찾아서’ 편이 가장 좋았다.

모네가 평생 머무르며 연못과 온실을 만들었고, 여섯 명의 정원사를 고용하여 온갖 꽃들과 나무들을 심고 가꾸었던 지베르니는 모네에게 제2의 고향 같은 곳이었다. 파리에서 무뚝뚝하고 차갑다는 평을 들었던 모네가 지베르니로 이사한 후 온화하고 자비로운 성격으로 변했다고 한다. 그곳에서 그가 만든 인공의 천국에서 그는 영감을 받으며 노후를 보냈다고 한다.

젊은 시절 모네는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 색채를 찾아 세계 곳곳을 여행했지만 지베르니에 인공의 낙원을 만든 후, 더 이상 세계를 떠돌지 않았다고 한다.




모네의 이야기를 통해서, 여행에 대해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보았다. 여행을 하는 이유는 지금 있는 공간에서는 없는, 다른 무언가를, 즉 현재에 결핍된 어떤 것을 찾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여행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거나, 어떤 불안을 떨쳐버리기 위한 것이 아닐까.

나는 바깥 세계에서 지베르니를 찾기보다는, 내가 있는 곳에서 나만의 지베르니를 구축하고 싶다.

눈을 감고 나의 지베르니를 그려본다.

작은 뜰이 딸린 소박한 집에서 꽃을 가꾸고 책을 읽으며, 집 주변을 천천히 산책하며 노후를 보내고 싶다. 멀리 떠나지 않고도 일상에서 떨림을 경험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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