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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신형철 산문/한겨레출판

-외로울 땐 독서

by 푸른 오리


이 책은 산문집이어서 소설, 영화, 시, 시사, 에세이 등 여러 분야에 대한 글들이 섞여 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어떤 마음이 있는 듯하다. 그것은 타인의 슬픔을 이해해보려는 마음이다. 그래서 산문집 제목이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었을까.


슬픔을 이해하는 것은 인간의 ‘심장’이다. 이 심장 이야기를 하기 위해 신형철은 영화 <킬링 디어>를 소개한다. 그는, 술을 마시고 수술을 하다 의료사고를 낸 의사 스티븐과 사망한 환자의 아들 마틴과의 관계를 신화 속의 아가멤논과 아르테미스의 관계로 보았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고, 그 고민은 바로 인간다움의 회복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 영화를 직접 보지 않았지만, 신형철은 영화의 첫 장면을 가득 채우는 것은 뛰고 있는 심장이라고 했다.

심장은 언제나 제 주인만을 위해 뛰고, 타인의 몸속에서 뛸 수 없다. 그러므로 나의 슬픔은, 타인이 이해하지 못하고, 타인의 슬픔은,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은 인간의 한계이지만 작가는 그 한계를 슬퍼하며 타인의 슬픔을 향해 다가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슬픔을 공부하는 심장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이 심장에 대한 말은 허수경의 시집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에서도 언급된다. 그녀는 시집 첫머리 ‘시인의 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심장은 뛰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가장 뜨거운 성기가 된다. 그곳에서 가장 아픈 아이들이 태어난다. 그런데 그 심장이 차가워질 때 아이들은 어디로 가서 태어날 별을 찾을까.

허수경의 심장에서는 ‘가장 아픈 아이들’이 태어난다. 이렇듯 심장은 슬픔의 출생지이다. 심장에서 슬픔들이 하늘의 빛나는 별들처럼 돋아나지 못한다면, 그 심장은 얼음장같이 차가운 것이다. 시인은 차가운 심장을 위하여 아주 오래된 노래를 불러주고 싶어 했다.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내 것처럼 느끼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슬픈 한계이지만, 그곳에 닿아보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살아남은 자들의 의무일 듯하다. 그리고 그것은 신형철이 말한 것처럼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 되겠지만.


신형철은 책 말미에 독자들에게 멋진 선물을 한다. 노벨라 베스트 6권, 추천사 자선 베스트 10권, 에세이집 4권, 시집 1권, 인생의 책 베스트 5권이 그것들이다. 그중에서 읽은 책도 있었지만, 읽지 않은 책들이 훨씬 더 많았다. 지금 배달 중인 그 책들이 내 손에 닿을 때에야 그것들은 비로소 제대로 받은 선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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