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울 땐 독서
한 남자가 오십여 년 전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케이시 폴이다. 그는 19살 때 대학 첫 해를 마치고 고향에 갔다가 테니스 클럽에서 마흔여덟 살의 유부녀 수전 매클라우드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그들의 은밀한 사랑이 발각되었던 것인지 그들은 테니스 클럽에서 제명되었다.
두 사람은 살고 있던 곳에서 벗어나 다른 지방으로 달아나 동거를 시작했다. 폴은 변호사 자격시험 공부를 했고, 매클라우드는 하숙을 하며 집에 있었다. 두 딸과 남편이 있던 수전은 모든 것을 팽개치고 젊은 연인인 폴과 달아났지만 현실의 벽을 뛰어넘기는 힘들었던 것 같다. 폴 한 사람만 보고 따라나선 그녀는, 혼자 있는 시간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외로웠다. 그녀는 술에 의존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버렸다.
현실의 사랑은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매클라우드는 심한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폴은 그런 수전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서, 수전을 그녀의 딸에게 맡겼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폴은 옛사랑을 기억해내려 애썼다. 그에게 있어서 그의 사랑 이야기는 단 하나의 이야기(the only story)였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자기 자신에게 수도 없이 되풀이한 이야기였다.
그는 자꾸 반문해보았다. 그렇게 이야기를 되풀이해봄으로써, 벌어진 일의 진실에 더 다가갔는가, 아니면 진실에서 멀어졌는가? 하고. 폴은 자기의 사랑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싶었으나, 결코 해내지 못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실과 상상이 마구 얽혀버렸고, 그는 과거의 사랑에 대해 무엇이 사실이었고, 무엇이 상상이었는지 이제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사실과 상상을 가려내는 일은 별 의미가 없는 일이기도 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이야기는 조금 각색되거나 변했을 것이다. 이미 일어난 일은 과거에 고정된 것이긴 하지만, 그 일을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결코 고정 불변한 것이 될 수는 없다.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은 불확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과거에 일어난 일에 대한 기억과 해석은 계속 변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슬픈 일이지만 인간이 가진 한계이다.
그는 수전과 있을 때 그들의 사랑을 토론하고, 분석하고, 그 형태, 색깔, 무게, 경계를 이해하려고 한 적이 없었다. 그 사랑은 그냥 거기 있었다. 불가피한 사실로서, 흔들 수 없는 주어진 것으로서. 하지만 동시에 그들 둘 다 그것을 토론한 말, 경험, 정신적 장비가 없었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들의 사랑은 그만큼 무모했고, 진지했다. 두 사람은 사랑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사랑 그 자체가 되었다. 그러므로 폴은 자신의 사랑에 대한 해석을 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폴은 그 사랑에 대한 ‘감정적 명료함’을 얻게 되었지만, 오히려 그 사랑으로부터 벗어나버린 기분을 느꼈다. 그는 자신의 사랑에 대해 어떤 정의도 내릴 수 없었다.
그는 사랑에 대한 좋은 정의를 찾으려고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좌절해서 오히려 온갖 나쁜 정의를 베껴 썼지만, 그 정의들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계속 줄을 그어 지워댔다. 그러나 그 정의들 가운데서 살아남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이랬다.
“내 의견으로는, 모든 사랑은, 행복하든 불행하든, 일단 거기에 자신을 완전히 내어주게 되면 진짜 재난이 된다.”
그는 이 글을 읽으며 생각했다. ‘사랑의 최대치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사람이 말한 사랑에 관한 진실이었으며, 여기에는 삶의 슬픔이 모조리 담겨 있는 것 같았다.’고.
그는 자신을 완전히 내어준 사랑을 했기 때문에 그 정의에 공감했을 것이다. 여기서 ‘재난’의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자신을 완전히 내어줬기 때문에 자기 몰락의 재난 상태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 아니면, 완전한 사랑은 삶의 슬픔이 모조리 담겨 있을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사랑이라는 것.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폴이 수전이 죽기 전에 그녀를 보러 간 장면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수전은 폴을 기억하지 못했고, 폴은 그런 그녀를 보면서 예전 기억을 더듬었다. 하지만 그렇게 몇 분이 흐르자, 그의 마음은 다른 곳을 떠돌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차에 기름이 얼마나 남았는지, 주차장을 얼마나 빨리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사업 매출이 얼마나 내리막길을 겪고 있는지, 그다음에는 그날 저녁 텔레비전에서 뭘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사실, 죄책감은 이제 아마도 끝을 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일어나서 마지막으로 한 번 수전을 보았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작품의 마지막 부분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그의 사랑은 너무 오래되어 닳고 닳아버려서 형체를 잃어버린 것이었나. 아니면 오래된 사랑에 너무 지쳐버린 것일까.
이 충격적인 장면에서 사랑에 대한 짙은 허무함이 느껴졌다. 모든 사랑의 종말은 이런 것일까. 그들의 사랑은 진짜 존재하기나 했던 것일까. 모든 것이 거짓말이거나, 그저 환상 같았다.
사랑은 두 사람이 함께 완성하는 이야기이지만, 그 이야기에 대한 해석은 각자의 몫이다. 어쩌면 사랑은 각자에게 각각의 이야기로 존재하는, 일인칭의 슬픈 이야기인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이 소설은 일인칭 시점으로 쓰였다. 그래서 폴의 입장에서, 폴의 기억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사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독자들은 수전의 생각은 알 길이 없고, 오로지 폴의 기억을 통해서만 그들의 사랑을 재구성해보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재구성된 사랑은 허술할 수밖에 없다.
폴이 기억하는 수전의 모습은 너무 추상적이어서 도무지 살아 움직이는 인물 같지가 않았다. 그의 재현은 불완전했고 그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했다. 그럼 독자들은 무엇에 기대어 수전의 삶과 사랑을 알아낼 수 있을까? 막막하다. 그렇긴 했지만, 수전의 친구인 조운 이야기를 통해 약간의 실마리를 찾아보았다.
폴은 조운이 십자말풀이를 하다가 막히면 규칙대로 하지 않고 글자 수만 맞으면, 아무 단어나 채워놓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폴이 어이없어하자, 수전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는 걸. 모든 사람에게. 대실패로 끝났을 수도 있고, 흐지부지되었을 수도 있고, 아예 시작조차 못 했을 수도 있고, 다 마음속에만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진짜에서 멀어지는 건 아니야. 때로는 어떤 쌍을 보면 서로 지독하게 따분해하는 것 같아.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을 거라고는, 그들이 아직도 함께 사는 확실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어. 하지만 그들이 함께 사는 건 단지 습관이나 자기만족이나 관습이나 그런 것 때문이 아니야. 한때, 그들에게 사랑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야. 모두에게 있어. 그게 단 하나의 이야기야.”
수전의 말에서, 그녀의 사랑에 대한 생각을 어렴풋이 추측해볼 수 있었다. 폴이 늘 말했던 ‘단 하나의 이야기’는, 수전이 그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러나 ‘단 하나의 이야기’는 재난에 이르는 이야기였고, 삶의 슬픔이 모조리 담겨있는 이야기였다.
*‘연애의 기억’이라는 책 제목은 뭔가 미흡한 느낌이 든다. 차라리 원제 그대로 ‘단 하나의 이야기 (The Only Story)’로 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만의 느낌이다. (예전에 이 책을 읽고 쓴 시를 브런치에 올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