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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혐오/파스칼 키냐르/프란츠

-외로울 땐 독서

by 푸른 오리

『음악 혐오』

책 제목이 특이해서 눈길을 끌었다. 음악에 대한 찬양이라면 몰라도 ‘음악 혐오’라니? 단순한 호기심에 이끌려 책을 펼쳤다.


파스칼 키냐르는 1948년 프랑스 노르망디 주에서 음악가 집안인 부계와 언어학자 집안인 모계 사이에서 태어났다. 1991년 그의 소설 『세상의 모든 아침』 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이 작품은 영화화되었다. 그는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여해 소설가로서의 명성과 대중적 인지도를 동시에 얻었다. 1992년에는 베르사유 바로크 음악 페스티벌을 기획하기도 했다. 그런데 1994년 그는 모든 것을 그만두었다. 25년간 몸담았던 갈리마르 출판사에서도 물러났고, 음악과도 멀어졌다. 1996년에는 급성 폐출혈로 죽음의 문턱에까지 갔다가 살아났다. 「음악 혐오」는 그 사이에 쓰였다.






음악의 수혜를 듬뿍 받았던 그가 왜 갑자기 음악을 혐오하게 되었는지 몹시 궁금하다. 혐오는 지극한 증오이고, 증오는 사랑하지 않으면 생길 수 없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한 때 음악을 열렬히 사랑했던 그가 음악을 혐오하게 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그런 궁금증 때문에 책을 펼쳤지만 작가는 계속 딴청을 부리는 듯했다.

그는 음악의 시원始原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음악과 관련된 여러 신화와 악기가 만들어지게 된 역사 등을 이야기했다.

일반적으로 음악이라고 하면, 인간에게 무한한 즐거움과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으로 인식을 한다. ‘음악 혐오’는 음악에도 어떤 단점과 부작용이 있다는 말 같다. 물론 모든 면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이. 그렇지만 음악에 어떤 해악이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기에, 음악 혐오라는 말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음악 혐오』 는 키냐르의 음악에 대한 총체적인 사유라고 볼 수 있다. 그의 문장들은 시적 상상력으로 빛났지만, 결코 쉽게 해독되는 것들은 아니었다.

아포리즘 aphorism 식의 글들이 계속 나열되었고, 앞뒤의 글이 쉽게 연결되지 않았다. 글과 글 사이의 거리도 너무 멀었다. 이런 식의 책은 처음이라 좀 당황스러웠다.

음악과 악기의 시원始原과 소리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은 완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었지만, 나름대로 흥미로웠다. 이 말은 모순이 있지만 사실 내 느낌이 그러했다. 뭔지 정확하게 인지는 못했지만 상당히 매력적인 어떤 요소가 있었다. 그래서 끝까지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글들이 그랬다.


활은 멀리 있는 죽음이다. 불가해한 죽음. 더 정확히는 목소리만큼이나 비가시적인 죽음이다. 성대, 리라의 현, 활시위는 죽은 짐승의 내장이나 혈관으로 만든 단일한 하나의 줄로, 거리를 두고 상대를 죽이는 비가시적 소리를 발산한다. 활시위는 최초의 노래다. 호메로스가 말한 “제비 소리와 같은”노래다. 현악기의 줄은 리라를 위한 현이다.(34쪽)


인간은 여성의 뱃가죽을 재현하려고 짐승의 피부를 벗겨 내어 북 가죽을 만든다. 그 짐승의 뿔로 만든 나팔을 이용하여 먼 곳에서 크게 부른다.(46쪽)


우리는 종종 비를 묘사할 때, 망치로 두드리는 것 같다고 말한다. 혹은 북을 치는 것 같다고 한다. 또는 탁탁 소리가 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그것들이 불러오는 사실적인 느낌과는 무관하게, 엄밀히 말하면 기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비를 표현하기 위한 북, 불, 망치 등의 이미지들이 그 기원과 비유를 전도시키기 때문이다.
비가 북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었다. 비를 호명한 것이 바로 북이었다.
망치를 들고 있는 자는 천둥의 신 토르다.(70~71쪽)


그의 문장들은 말 그대로 화려한 상상력의 보고寶庫였다. 매혹적이고 신비로운 영혼을 만났을 때의 즐거움이 적지 않았다. 그렇지만 여전히 키냐르가 왜 음악을 혐오하게 되었는지 아직까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7장 ‘음악 혐오’에 이르러서야 겨우 단서를 쥘 수 있었다.


음악은 모든 예술 중에서, 1933년부터 1945년에 이르기까지 독일인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학살에 협력한 유일한 예술이다. 음악은 나치의 강제수용소 Konzentrationlager에 징발된 유일한 예술 장르다. 그 무엇보다도, 음악이 수용소의 조직화와 굶주림과 빈곤과 노역과 고통과 굴욕, 그리고 죽음에 일조할 수 있었던 유일한 예술임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187쪽)


피아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작곡자,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였던 시몬 락스는 본과 드랑시와 아우슈비츠와 카우페링과 다하우에 수용되었다가 풀려났다. 그는 수용소에서 전멸한 사람들에 관한 기억과 고통을 반추해보고자 했고, 유대인 학살 시 연주했던 음악의 역할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보려 했다. 그는 “음악이 파멸로 몰아넣었다.”라고 했다. 그리고 프리모 레비는 “음악은 수용소에 관한 기억 중 가장 나중에 잊힐 것이다. 왜냐하면 음악은 수용소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수용소 Lager에서 음악이 나락으로 끌고 갔다.”라고 했다.


이에 대해 키냐르는 그의 생각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음악은 죽음의 무리와 연관되어 있다. 죽음에 박차를 가하다. 이것은 프리모 레비가 수용소에서 음악이 연주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깨달은 것이다.(213쪽)


시몬 락스와 프리모 레비의 말을 통해서 추측을 해보았다. 키냐르는 전쟁의 세월 동안에 음악이 한 역할에 대해서 큰 실망과 좌절을 했고, 그래서 사랑하던 음악을 극단적으로 싫어하게 되었을 거라는.

키냐르는 ‘음악 혐오’라는 표현을 쓴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음악 혐오’라는 표현은 음악을 그 무엇보다 사랑했던 이에게, 그것이 얼마나 증오스러운 것이 될 수 있는지를 말하고자 한 것이다.(189쪽)


그렇다. 혐오나 증오는 한때 사랑했던 것에서 생기는 것이다. 음악을 많이 사랑했던 만큼 배신감 또한 컸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키냐르의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정상적인 환경에서 음악은 당연히 순기능을 한다. 그렇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적이고 비정상적인 환경에서는 음악조차 악용되었다. 이런 비극적인 일을 통해서 음악 또한 환경과 사용자에 따라서 다양한 얼굴을 가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어떤 대상이 완전히 선하거가 완전히 악한 것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키냐르는 정말 마음속 깊이 음악을 증오할까? 비록 그가 이런 고백을 했지만 말이다.


나는 언제 음악이 내게서 떨어져 나갔는지 끝내 알지 못할 것이다. 어느 날, 모든 울리는 것들에 대해 일순 무심해져 버렸다. 타성에 젖어, 혹은 외양적 아름다움에 이끌려 악기에 다가갈 뿐이었다. 간신히 악보를 펼쳐 보아도 더는 어떤 노래도 울리지 않았다. 음이 희박해졌다. 나는 음악을 다른 것과 마찬가지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권태로웠다. 책을 읽는 것은 책에 담긴 넘치는 탐욕과, 그 리듬과, 내 내면의 결핍을 고수하는 행위일 뿐, 노래에 대한 욕망 탓은 아니었다.
나에게 가장 절실했던 것이 지긋지긋한 심심파적에 불과해져 버렸다.(255쪽)


가장 절실했던 것이 어떻게 지긋지긋한 심심파적에 불과해져 버릴 수가 있을까? 슬프다! 절실했던 사랑이 그렇게 쉽게 소멸될 수 있는 것일까? 믿기 어렵다.

나는 여전히, 증오는 애정의 다른 표현일 뿐이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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