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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오리 May 31. 2024

매일 쓸 것, 뭐라도 쓸 것/금정연 일기/북트리거

  -외로울 땐 독서



 읽고 쓰는 사람 금정연의 일기.

 작가가 쓴 일기에 다른 작가들의 일기를 인용한, 특이한 방식의 일기다.

 작가가 쓰는 일기는 독서일기, 육아일기, 오디오 일기, 딱히 분류할 수 없는 일상의 소소한 사건들과 아무에게도 보여 줄 수 없는 어둡고 축축한 마음의 바닥에 대한 일기(unabridged diary)라고 한다.

 자기의 일상에서 한 행동이나 벌어진 일에 대해서 쓴 것이라는 것.


 일기는 아주 개인적이고 혼자만의 내밀한 생각을 기록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금정연의 일기는 그렇지 않았다. 하긴 출판된 책은 독자들이 읽는 것이니 내가 생각했던 사적으로 내밀한

내용은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의 일기를 읽는 일은 재미있다.

 작가는 일기를 쓰게 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처음 일기를 쓴 건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알 수 없어서였다. 흔적 없이 사라진 하루들이 쌓여서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됐다. 계절이 바뀌고 나이를 먹었다. 인쇄가 잘못된 책처럼 인생의 페이지가 듬성듬성 비어버린 기분이었다. 그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나는 생각했다. 일기를 쓰자, 기억을 기록으로 바꾸자. 기록이 다시 기억이 될 수 있도록.(16쪽)



 100% 공감이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나이를 먹으면서 시간이 어느 순간 도둑맞은 것처럼 사라진다는 느낌이 자주 들었다. 그래서 일기가 아닌 최소한의 기록인 일지라도 써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가끔 생각이 나서 기록을 남길 때가 있다. 시간이 꽤 지나고 나서 그런 기록들을 보면 그때의 일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러니 이 책 제목처럼 매일 쓸 것, 뭐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자기의 일기에 다른 작가들의 일기를 인용하고 또 그 작가들의 책도 소개했다. 그런 중첩된 일기들을 읽어보면, 인간이면 누구나 하는 고민들을 그들 또한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왠지 마음이 편해졌다. 나의 고민이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는 동류의식 같은 것을 느꼈다고나 할까.


 이 일기의 마지막 인용 일기는 1922년 10월 10일 캐서린 맨스필드의 일기였다. 그 내용이 가슴에 와닿아서 옮겨본다.


 나는 살고 싶기 때문에 내 손과 감정과 머리를 써서 일을 하고 싶다. 정원이 있는 조그만 집과 잔디와 동물과 책과 그림과 음악이 필요하다. 이런 환경에서 글을 쓰며 살고 싶다(나는 마부에 대한 글을 쓸 줄 모르지만 그것은 문제 되지 않는다). 그러나 재미있게 열중해서 사는, (생활에 뿌리를 박고) 배우려고 하며, 알려고 욕망하며, 느끼며, 생각하며, 행동하는 생활을 나는 원한다. 그것뿐이다. 이것이 내가 해야 하는 것이다. (273쪽)


 그녀는 이 일기를 쓰고 3개월 후 폐결핵으로 요양원에서 삶을 마쳤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배우고 욕망하고 느끼며 생각하며 행동하는 삶을 살았다.

 우리의 삶은 누구에게나 다 유한하다. 그렇지만 그녀는 끝까지 삶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견지했다. 놀라웠고 충격적이었다.


 일기라는 것이 삶의 방향성을 잡아주는 키잡이 같은 역할을 해주는 것은 아닐까. 금정연 작가와 다른 작가들의 수많은 일기들을 읽으며 든 생각이다.

 일기는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삶에서  의미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작가가 부지런하게 읽은 다른 작가들의 일기들을 소개해주어, 이 책이 일당백을 한 같다. 이 책 한 권으로 많은 다른 작가들의 일기를 접했으므로.

 작가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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