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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오리 May 29. 2024

맡겨진 소녀/클레어 키건/ 다산북스

  -외로울 땐 독서



  소설의 주인공인 소녀는 엄마가 동생을 낳을 때가 되어서 친척인 킨셀라 아저씨 집에 맡겨진다. 소녀의 아빠는 가부장적이며 노름을 즐겨 카드게임으로 암소도 잃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데 형제자매들까지 많아서 엄마는 셋째 딸인 소녀에게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


 소녀의 아빠는 소녀를 맡기면서도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하지 않고, 나중에 데리러 오겠다는 말도 없이 떠났다. 그는 소녀의 옷가방을 내려놓은 것조차 잊고 그냥 가버렸다. 소녀에 대한 애정이 조금도 없는 아빠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킨셀라 아저씨 집에서 첫날밤을 보낸 소녀는 자기가 아침에 일어날 때 오줌을 쌌다는 걸 알았다. 소녀는 아주머니에게 꾸중을 듣고 쫓겨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매트리스에 습기가 차서 그렇다고 하면서 매트리스를 씻고 햇볕에 말렸다. 소녀는 자기 집 부모와 너무나 다른 킨셀라 부부에게 적응하기가 오히려 쉽지 않았다.

 늘 혼날까 봐 긴장하고 있던 소녀는 킨셀라 부부의 따듯함에 얼어있던 마음이 서서히 녹기 시작한다.

 아주머니는 소녀의 귀지를 파주며 농담을 한다.

 “여기다가 제라늄을 심어도 되겠다.”

 소녀의 엄마가 아이에게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부분이었다.

 킨셀라 아저씨는 자식이 없는데도 학교 지붕 교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자선 복권을 사는 사람이다. 따듯한 마음의 소유자이다.


 어느 날, 소녀는 킨셀라 부부와 함께 이웃의 장례식에 갔다가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잠시 맡겨졌다. 그녀는 킨셀라 부부의 아들이 사고로 죽었다고 했다. 아들이 죽고 두 사람 다 하룻밤 만에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는 말도 했다. 그동안 소녀가 입고 있던 옷은 킨셀라 부부의 아들 것이었다. 소녀는 놀랐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 이웃집 아주머니는 킨셀라 부부에게 소녀가 참 조용하다고 했다.

 킨셀라 아저씨는 말했다.

 “해야 하는 말은 하지만 그 이상은 안 하죠.”

 아저씨는 이웃집 아주머니가 소녀에게 쓸데없이 죽은 아들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눈치채고 그렇게 말한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온 아저씨는 소녀와 바닷가를 산책하며 말했다.


 “넌 아무 말도 할 필요 없다. 절대 할 필요 없는 일이라는 걸 꼭 기억해 두렴.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 (73쪽)


 아저씨는 소녀에게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자연스럽게 알려주었다.


 개학이 다 되어갈 무렵, 소녀의 집에서 편지를 보냈다. 소녀의 남동생이 태어났다고 했다. 소녀가 떠나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

 킨셀라 아주머니는 서운한 감정을 이렇게 말했다.

 “우리처럼 나이 많은 가짜 부모랑 여기서 영영 살 수는 없잖아.”

 소녀는 울지 않으려고 애썼다.


 소녀는 떠나기 전 자기가 마지막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아주머니가 차를 마실 수 있게 우물에 가서 물을 떠 오는 일이었다. 소녀는 물을 뜨려고 하다가 그만 우물에 빠졌다.  

 소녀는 물에 빠져 감기에 걸렸고, 예정보다 집으로 늦게 돌아가게 되었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소녀를 보고 엄마는 “좀 컸구나.” 말했다. 소녀가 “네.”라고 하자, “‘네’라고 했니?” 엄마가 말하고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엄마는 소녀가 예의 바르게 대답하는 것을 듣고, 그 사이 자기 딸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소녀의 아빠는 돌아온 딸을 보고 말했다

 “아, 탕아가 돌아왔네.”

 아빠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소녀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빠는 소녀가 재채기를 하고 코를 푸는 것을 보고 킨셀라 아저씨에게 말했다.

 “제대로 돌보질 못하시는군요. 본인도 아시잖아요.”

  자기 딸을 돌보아준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이럴 수는 없다. 배은망덕도 너무 심하다.


 킨셀라 아저씨는 소녀에게 입맞춤을 하고 아주머니는 소녀를 안아주며 작별했다. 차가 떠나고 엄마가 소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아무 일도 없었어요.”라고 소녀는 말하며 혼자 생각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가 묻고 있지만 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절대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만큼 충분히 배웠고, 충분히 자랐다. 입을 다물기 딱 좋은 기회다. (96쪽)


 소녀는 킨셀라 부부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고 무엇보다 진정한 사랑을 경험했다. 소녀는 정신적으로 성장했다.


 소녀는 자갈 진입로에서 자동차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와 대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달리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소녀를 안아 들었다. 소녀는 눈을 감은 채 아저씨에게 안겨 있었다. 그리고 눈을 뜨고 아저씨의 어깨너머를 보자 소녀의 아빠가 지팡이를 들고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소녀는 아저씨의 품에 안긴 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아빠.” 내가 그에게 경고한다. 그를 부른다. “아빠.”


 소설은 이렇게 끝난다. 소녀는 아저씨에게 아빠가 달려온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아저씨를 ‘아빠’라고 부른다.

 소녀는 아저씨 집에 머무르면서 말하고 싶었지만, 결코 해보지 못한 말을 마침내 한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결말이다.



 90여 쪽의 짧은 소설이어서 가볍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깊은 감동을 받았다.

 짧은 이야기 속에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었고, 짧아서 더 긴 여운을 남긴 것 같다. 설명하는 말이 아니라, 짓는 표정에서 많은 것을 알려주는 멋진 표현들이 이 작품의 격을 한결 높이지 않았나 싶다.

 소녀는 킨셀라 부부에게서 부모에게 받아보지 못한 관심과 배려, 사랑을 받으며 아름답게 성숙한다. 특히 사랑은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놀라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녀가 성장해서 멋진 어른이 될 것이라고 믿으며 책장을 덮었다.


 이 소설을 읽고 내 영혼이 위로받는 느낌을 받았다. 현실처럼 사실적으로 펼쳐지는 전개에 몰입하며, 잠시 내가 소녀가 되어보는 경험을 했다고나 할까.

이야기의 힘을 절절하게 느꼈던 멋진 작품이다.

 이 소설은 <조용한 소녀>라는 제목으로 영화로 나왔다. 영화에서는 이 작품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궁금해진다.


 이 책을 통해 클레어 키건이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다. 정말 대단한 작가다. 그녀의 다른 작품도 찾아서 꼭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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