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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오리 Aug 16. 2024

잃어버린 부채가 준 선물

- 마음의 고샅길



딸이 오랜만에 여름 축제 음악회를 가자고 했다. 해가 지고 난 후 시간인 저녁 8시에 야외 공연이 있었다. 저녁 시간이긴 하지만 지열이 남아서 여전히 더울 것 같았지만, 여름밤을 즐기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았다.


저녁을 먹고 대전 예술의 전당 야외 원형극장으로 갔다. 더운 날씨에도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행사장 입구에서 일인용 돗자리를 쌓아놓고 있었다. 돗자리를 주느냐고 물었더니 ‘예술의 전당’을 카카오 채널에 추가하면 준다고 했다. 행사장 직원의 도움으로 돗자리를 받아서 입장했다.


계단식 좌석은 여전히 식지 않은 지열 때문에 방구들목처럼 따끈따끈했다. 그 위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서 공연을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집에서 가져간 쥘부채로 더위를 식혔다.

‘로페스타’라는 크로스오버 월드뮤직 밴드가 출연했고 그들의 신나고 생동감 있는 연주를 즐겼다.

그다음 연주는 모 그룹의 레게 스타일의 음악이었는데, 내게는 너무 시끄러워서 심장이 떨렸다. 나이 탓인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급하게 일어나서 나왔다. 일어날 때 가방, 물병, 부채, 돗자리를 챙겨서 나왔다.


근처에 수목원이 있어서 그쪽으로 갔다. 저녁 9시가 넘어서인지 수목원 문은 닫혀있었다. 여름에는 시원한 수목원을 개방해서 시민들이 더위를 식힐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 수 없이 근처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쉬다가 부채를 찾으니 없었다. 아까 급하게 나오느라 어딘가에 떨어트렸나 보다. 그 부채는 며느리가 일본 출장 갔다가 사 온 것이었다.

요즘은 다른 사람의 휴대폰이 떨어져 있어도 주워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부채를 누군가가 주워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비싼 것은 아니지만, 내게는 마음으로 받은 선물이기에 소중했다. 그래서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공연장으로 향했다. 공연은 이미 끝났고 입구엔 출입금지 표시로 줄로 막아놓았다. 그래도 부채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서 살펴보았는데 없었다. 그때 순찰 중이던 안전요원들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부채를 잃어버려서 찾고 있다고 했더니 자기들이 분실물이 있나 해서 돌아다녔는데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다.

너무 실망이 되었다. 남의 물건을 왜 가져갔을까. 그냥 그 자리에 두면 주인이 찾으러 올 수도 있는데 그 생각을 못한 걸까.

못내 아쉬워하자, 딸이 집에 다른 부채들도 많이 있지 않느냐고 했다. 그렇긴 하지만, 마음이 담긴 물건이어서 많이 서운했다.


집에 와서도 그 부채 생각이 계속 났다. 왜 그 부채를 들고 갔을까? 속상하기도 하고, 부질없는 줄 알면서도 계속 자책을 했었다. 괜히 다른 부채라도 꺼내어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서랍을 열어 보았더니 며느리가 선물한 부채가 있었다.

아니? 이럴 수가!

그제야 내가 가져간 부채가 예전에 중국에서 샀던 다른 부채였다는 것을 알았다. 잃어버렸던 그 부채를 왜 며느리가 준 부채로 착각했을까.

집에 얌전히 보관된 부채를 보니 그제야 안심이 되었고, 잃어버린 부채가 갑자기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그 순간, 마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부채를 잃어버렸을 때의 속상하고 안타까웠던 마음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

마음에 휘둘려서 혼자 슬퍼했다가 기뻐했다가 한 것이다. 문득 원효 대사의 해골 물 일화가 생각났다.

결국 행·불행의 실체는 실물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는 것.

새삼 마음을 잘 살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잃어버린 부채는 내게 깨달음이라는 선물을 주고 갔다.




(며느리가 준 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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