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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김금희 장편소설/창비

-외로울 땐 독서

by 푸른 오리



오랫동안 한국소설을 읽지 않았다. 그래서 요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거의 모른다. 그러다가 우연히 김금희 작가의 책을 처음 만났다. 그녀는 2014년 신동엽문학상을, 2016년 젊은 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그녀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다.

「경애의 마음」은 흥미롭게도 ‘마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마음’이라는 말에 이끌려 책을 잡았는지 모르겠다.




작품의 주축을 이루는 인물은 상수, 경애, 은총이다.

상수는 반도 미싱에 근무하는데, 회사 동료들에게서 국회의원 아버지 덕분에 취업한 낙하산으로 취급받고 있다. 그는 업무능력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팀장 대리로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팀에서 일하는 경애가 있다. 그녀는 사내 파업에 참여한 이후로 진급하지 못하고 있었다.


상수는 고등학교 때 영화광 친구였던 은총을 인천 호프집 화재 사고로 잃었다. 은총에게는 하이텔 영화 동우회에서 만난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그녀가 경애다. 경애는 은총을 사고로 잃고 나서 그의 자동응답기에 ‘미안해, 나는 아무래도 늦을 것 같아...... 그래서 눈을 네가 있는 곳에 먼저 보낼게.’라는 메시지를 남겼고, 아픔을 혼자서 삭였다.

상수, 경애, 은총. 이 세 사람은 기이한 인연의 고리로 엮어있었지만, 서로 모르고 있었다. 은총은 불의의 사고로 죽어버렸으니, 그 연결고리는 미지의 세계로 던져진 채로 있었다.


그런데 상수와 경애는 회사에서 같은 팀으로 일하게 되면서 만나게 된다.

상수는 낮에는 회사에서 근무를 하고, 퇴근 후에는 연애상담 페이스북 '언니는 죄가 없다(언죄다)'에서 회원들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는 '언니'역할을 하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다.

경애는 애인 산주와 결별 후 깊은 무기력함에 빠져있었는데, 그녀는 ‘언죄다’의 '언니'에게 메일을 보내며 위로를 받으며 그 힘든 여름을 견뎌냈다. 이후에 산주의 결혼이 평탄하지 못했는지, 산주는 경애와 다시 만나기를 원했고, 둘의 만남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산주는 다시 경애에게 상처를 주었다. 경애는 고민 끝에 오래전에 위로를 받았던 ‘언죄다’의 ‘언니’에게 다시 메일을 보냈다.


상수는 ‘언죄다’로 온 이메일의 주소가 프랑벤슈타인프리징(frankensteinfree-zing)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주소는 상수는 자기 팀원으로 경애를 받으며 보았던 경애의 이력서 사본에서 봤던 것이었다. 상수는 그 주소를 기억하고 있었던 이유는 주소가 너무 특이해서였다. 경애는 이메일로 산주와의 힘든 관계를 고백했다. 상수는 경애의 고통을 ‘언죄다’를 통해 알게 된 후, 경애를 볼 때마다 몹시 괴로워했다.


상수와 경애는 일 때문에 나갔다가 전철을 함께 타고 돌아오던 중에, 경애가 이어폰으로 듣던 음악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하게 됐다. 음악 이야기를 하다가 두 사람이 학창 시절에 같은 영화동호회에 있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이 일로 상수는 경애가 자기 친구인 은총의 옛 여자 친구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상수는 ‘언죄다’에 글을 올렸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당분간 빠른 회신이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예전에 자기에게 위로를 받고 싶어 했던 언니들에게 한 ‘마음을 폐기하라’ 말을 취소하는 발언을 했다.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상수는 경애에게 은총이가 자기 친구였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차마 하지 못했다.


상수팀은 베트남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곳 사업은 지지부진했고, 경애가 다른 부서에서 벌어지는 비리를 언급했다가, 그쪽 사람들의 농간으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경애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경애 집에 들렀다가, 상수는 벽에 붙어있는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 포스터를 보게 됐다. 경애는 친구가 좋아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상수는 데이비드 린치를 좋아하던 은총을 떠올렸다. 상수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경애에게, 자기 한국 집에 「멀홀랜드 드라이브」 DVD가 있으니 가져가서 보라며 자기 집 열쇠를 건넸다. 상수가 그 DVD 이야기를 하니, 경애는 예전에 영화관에서 봤던 어떤 남자애 얼굴을 떠올렸다.


예전에 경애가 데이비드 린치 영화를 보러 갔는데, 그날 영화관 이벤트로 리뷰를 남기면 추첨해서 DVD를 준다고 했다. 경애는 응모함에 응모권을 넣으면서, 자기 앞에 있던 남자애가 넣은 응모권 이름 란에 E라는 닉네임이 적혀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닉네임을 보고 그 남자애가 은총이 늘 말하던 은총의 친구였음을 직감했다. 경애는 바로 남자애를 따라 나갔지만 찾을 수 없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경애는 어렴풋이 상수가 은총의 절친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일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두 사람은 서로가 은총과 관계있는 사이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은총에 대해서 선뜻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 일은 다시 상처를 들쳐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고, 결국 경애와 상수는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상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것은 10월의 어느 깊은 가을날 우리가 떠안을 수밖에 없었던 누군가와의 이별에 관한 회상이었지만 그래도 그 밤 내내 여러 번 반복된 이야기는 오래전 겨울, 미안해 내가 좀 늦을 것 같아 눈을 먼저 보낼게, 라는 경애의 목소리를 반복해서 들으며 같이 울었던 자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 서로가 서로를 인식하지 못했지만 돌아보니 어디엔가 분명히 있었던 어떤 마음에 관한 이야기였다.(352쪽)


이 작품에서는 여성작가의 특유의 감정 선과 섬세한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그런데 남자인 상수는 아주 섬세하고 여성적인 인물로 그려졌다. 그는 연애상담 페이스북 '언니는 죄가 없다(언죄다)'에서 ‘언니’ 역할을 능숙하게 해낼 정도의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그에 비해 여자인 경애는 선이 굵고 터프해서 오히려 남성적인 느낌마저 주는 인물이었다. 요즘 젊은이들의 성향이 반영된 듯도 했다.


작품에 쓰인 심리와 감정 묘사들이 과거 언젠가 내가 느꼈던 것과 매우 흡사했다. 나는 내 감정이 나만의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인간 감정의 ‘보편성’을 발견하고 놀랐다. 결국 거의 모든 인간은 비슷하다는 동류의식을 느꼈다고나 할까.

이 작품은 사람 마음의 결, 색깔, 냄새를 아주 섬세하게 보여주었다. 그래서 작품을 분석하거나 해석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느끼고 싶었다, 제목처럼. 그렇게 읽었더니 작품이 내 영혼을 통과했고, 내 영혼과 작품이 짙은 포옹의 시간을 온전히 가졌다. 작품이 독자 속으로 그렇게 깊숙이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작가의 뛰어난 묘사 능력 때문일 것이다.


예술의 목적은 마음과 마음을 만나게 하는 것이 아닐까. 마음과 마음이 만나서 서로 어루만져 주고, 위로하고, 애무하고, 궁극에 가선 영혼의 오르가슴에까지 이르게 하는 것. 이것이 너무 요원한 경지인지 모르겠지만.

사랑할 때 우리는, 상대방을 분석하거나 해석하지 않는다. 그냥 온몸과 온 마음으로 느낄 뿐이다. 예술작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마음에 끊임없이 가닿아 보려는 마음의 미세한 더듬거림. 이 작품의 상수와 경애에게서 그런 마음을 느꼈다. 우리는 서로에게 그런 존재로 살아가고 있을까.

마음에 길을 내는 일은 어쩌면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일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도를 높이는 일이라고 믿는다.


*사족; 내 서평은 분석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느낌에 의존한 것이어서 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경험이란 누구에게나 주관적인 것이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한 권의 책이, 불완전하지만 어떤 사랑의 경험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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