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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레오 Mar 21. 2020

늙어도 귀여울 테니까

마흔, 그 애도 벌써 저 멀리


저학년 때부터 간간이 엄마의 얼굴을 뚫어지게 관찰하며 얼마나 더 '늙었는지'를 점검하던 아이는 늘 심사 말미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붙였다.  흰머리가 많아졌네, 이 말의 끝에 그래도 숱이 많다, 흰머리가 나도 숱이 엄청 많다, 그러니 예쁘다, 이런 식으로. 부정적인 마음이 엄마에게 깃들지 못하게 상황을 바꾸려는 제 딴의 노력인 것이다.  (애초에 흰머리 많아졌다는 말을 하지 말 것이지) 이따금씩 거울 앞에서 와, 언제 이렇게 나이 먹었는 감? 할 때가 있는데 그 장면을 보게 되면 득달같이 달려와 아이는 내가 생각을 바꾸도록 유도했다. "아이고, 아직도 이렇게 젊네~ 엄마, 여전히 젊고 예뻐" 


한없이 긍정적인 아이 아빠와 늘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엄마의 영향으로 아이는 매사에 긍정적인 아이가 되었다. 하지만 아이 아빠에 비해 우울의 깊은 심연에 갇혀있다 겨우 파닥이며 수면 위로 떠오른 나는 아이에겐 요주의 인물이었다. 아이 앞에서는 한없이 유쾌하고 다정하며 개구쟁이인 엄마였지만 내면의 전쟁으로 시간과 시간의 틈 사이, 보이지 않는 그늘에 숨어서 탄식하는 나를 예민한 아이는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해결해야 할 걱정거리로 근심에 휩싸여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진 날이면 아이는 내 등을 토닥이며 말하곤 했다.

부정의 마음으로는 되는 일이 없어 엄마, 사람을 병들게 해 부정의 생각은. 잘될 거라고 생각해야 정말 잘되지. 

그럴 때면 아이를 바라보며 네가 내 스승이다. 네가 엄마를 키우네. 알았어. 걱정하지 않을게. 라며 한껏 웃음을 지었고 정말 웃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짓누르는 돌덩이 하나는 사라진 기분에 일어날 힘이 생기곤 했다.


어느새 예비 중학생이 된 아이가 내 머리를 쓸어주며 지그시 바라보더니 말한다. " 우리 엄마 많이 늙었네" 

오랜만이다. 엄마의 '늙음'을 점검하는 것은.  잠시 아이의 손이 내 눈가 주름과 팔자주름을 훑는다.

느리고 부드러운 손끝에서 안타까움이 전해진다. 

"엄마 많이 늙었냐?"

"옛날보다 그렇다는 얘기지 엄마가 늙었다는 말은 아니야."

(그 말이 그 말이지.) 

일부러 장난스레 얼굴을 찡그리니 아이가 다급히 걱정하는 표정을 치우고 활짝 웃어 보인다.

" 아냐 아냐,  엄마는 그래도 귀여워. 지금보다 더 늙어도 귀여울 거야" 

사춘기 소년, 꽃피는 봄날에 집에만 갇혀있다 보니 내가 다 귀여워 보이나?

아들은 앞으로도 늘 귀여울 엄마의 뺨에 대 여섯 차례 뽀뽀를 해주고 어쩌다 기르게 된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방에서 나간다.


늙어도 더 귀여울 거라니. 

문득 아주아주 귀여운 호호할머니가 되는 일이 근사한 미래로 그려지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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