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관성 없음에 대하여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속 기지촌 여성과 소련 낙태죄의 역사

by 올가의 다락방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뺏벌’이라 불리는 의정부의 기지촌에 남은 한 노년 여성, 박인순 님의 삶을 다룬 영화다. 필자는 영화의 주인공인 박인순 님이 실제로 기지촌에서 일했던 여성이며, 스스로를 연기하고 있다는 걸 알고 나서부터 너무 혼란스러워서 10분 단위로 영화를 끊어서 봤다. 영화 내레이션에 따르면, 할머니의 진술에는 ‘일관성’이 없다. 할머니는 기지촌에 팔려 갔다고 말했다가, 또 본인이 자발적으로 몸을 판 것이라고 말한다.


뜬금없을 수도 있지만, 이 장면을 보면서 낙태죄 폐지와 재입법에 대한 소련 여성들의 ‘일관성 없는’ 반응이 떠올랐다. 러시아에서는 1918년에 새로운 가족법(“1918년의 시민혼, 가족, 후견법에 관한 법령”)이 통과되었는데, 이 법령에 따라 여성과 남성의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 모성 보호 조치들이 법제화되었다. 교회의 주관 하에 실시되던 결혼과 이혼이 시민 사회의 영역으로 옮겨지면서, 매우 복잡했던 이혼절차가 간소화되기도 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1920년에는 세계 최초로 낙태 시술을 합법화하는 법령이 통과되었다.

부엌 노예제를 타도하라!

하지만 1936년 5월, 새로운 ‘가족법‘이 통과되면서 낙태죄가 재도입되었는데, 낙태 시술을 한 여성은 벌금형에 처해지게 되었으며, 여성의 생명이 위협받는 예외적인 상황이 아닐 경우 낙태 시술을 해준 의사도 처벌 대상이 되었다. 여성에게 낙태를 강요하는 행위도 2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는 행위로 엄격히 금지되게 되었다. 본래 한쪽의 의사만 있어도 가능했던 이혼 절차 또한 한층 복잡해졌다. 양측의 합의 없이는 이혼이 불가능해졌으며, 이혼을 신청할 때 지불해야 하는 비용 또한 크게 늘어났다. 이혼 후 양육권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양육 수당도 ‘아이가 한 명일 경우 수입의 1/3, 두 명일 경우 수입의 1/2, 세명 이상일 경우 수입의 3/5’로 책정되었고,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을 경우 받는 처벌 또한 한층 엄격해지게 되었다.

“낙태는 위험한 결과를 낳습니다! 스스로를 고독으로 내몰지 마십시오!” / “불임과 쓰라린 고독 — 이것이 낙태의 흔한 결과입니다.”

1936년 가족법은 소련의 가장 큰 ‘여성해방’적 성취였던 ‘낙태죄 폐지’를 무효로 만들었으며, 임신·출산·양육 등과 관련된 여성들의 의무를 강화하는 법이라는 점에서 큰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가족법에 대한 소련 여성들의 여론은 결코 부정적이지만은 않았다. 소련 당국은 법을 통과시키기 이전에 여론을 확인하기 위해 신문에 법령 초안을 공개했는데, 인텔리겐치아 여성들은 원칙주의적인 입장에서 낙태죄 부활에 반대했지만, 여성 노동자들은 사뭇 다른 태도를 보였다.


물론 가족법이 전제하고 있는 전통적 가족 관념에 친숙함을 느껴 새로운 가족법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 여성들도 있었지만, 자신과 자녀의 생존을 위해 남편의 경제력에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었던 대다수의 여성들은 스스로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고려해 가족법에 대한 판단을 내렸다.


여성들은 가족법 중 ‘이혼법’에 가장 큰 지지를 보냈다. 새로운 이혼법에 따라 이혼절차가 까다로워지면서,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이혼을 당한 뒤 생계유지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상황을 피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쪽의 의사만으로 이혼이 가능했던 1920년대 말에 소련에서 이루어진 이혼의 약 70%는 남성에 의해 주도되었다고 한다. 양육 수당의 증가와 모성보호조치 또한 출산·양육에 대한 부담을 어느 정도 경감시킬 수 있는 조치라는 점에서 환영받았다.


낙태죄에 대한 의견은 분분했는데, 남성에 의해 낙태를 강요받았던 여성들, 이혼을 원하는 남편을 말릴 수단을 필요로 했던 여성들은 낙태죄 도입에 찬성했다. 대부분의 여성 노동자들은 낙태죄에 대해 하나의 일관된 입장을 취하는 대신, 임금이 낮거나 주거환경이 열악한 경우 예외조항을 마련해 달라는 식의 절충안 제시에 주력했다. 이와 같은 여론을 종합해 봤을 때, 1936년 가족법은 단기간 내에 노동력 재생산 기반을 바로잡기 위해 ‘가족’을 강화해야 했던 스탈린 정권의 이해관계와 생존을 위해 안정적인 가정을 필요로 했던 여성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탄생하게 된 일종의 ‘미봉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레이스 M. 조 지음, 성원 옮김, 김은주 해제, 《유령 연구》, 동녘, 2025, p.275.

그러니까 중요한 건 구조의 변화다. 낙태죄 재입법이 실제 여성들의 삶을 개선시켰다는 게 아니다. 소련의 사례는 여성이 더 취약한 경제적 조건에서 차별받으며 사는 사회에서는 여성해방을 상징하는 조치들(결혼의 세속화, 낙태죄 폐지)이 오히려 여성들, 특히 가난한 노동자 여성들의 삶을 힘들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박인순 님의 일관되지 않은 생애사 진술에서도 그런 아포리아를 엿볼 수 있다. 중요한 건 성노동이 자발적이었느냐, 비자발적이었느냐가 아니라, 당대를 살아간 수많은 박인순의 앞에 어떤 선택지가 놓여있었는가이다. 그가 순진무구한 소녀였는지, 아니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은 억척스러운 여성이었는지 여부를 가리는 것은 모든 책임을 소수자와 피해자에게 돌리는 비겁하고 무책임한 행위이다. 또한 이는 소수자의 트라우마를 기존의 가피해구도와 인과 관계가 명확한 대항서사 내로 편입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담론을 만들고 지배하는 자들은 알고 있다, 일관성이 없는 서사와 모순에 급진적인 잠재력이 내재되어 있다는 걸. 우리가 역사 속에서 포착해야 하는 건 그런 급진적인 잠재력이다.



*참고 문헌

-그레이스 M. 조 지음, 성원 옮김, 김은주 해제, 《유령 연구》, 동녘, 2025.

-Sheila Fitzpatrick, Everyday Stalinism (Oxford UP, 2000).

-Melanie Ilič (ed.), Women in the Stalin Era (Palgrave Macmillan, 2001).


*참고 영상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김동령, 박경태 감독,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