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키시마호 사건과 『유령 연구』
2001년, 북한에서는 <살아있는 영혼들>이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이 영화는 모스크바의 한 영화제에서 공개된 후, 홍콩 영화제 개막작이 되었으며, 한국과 미국에서도 상영되었다. 북한판 타이타닉이라는 별명을 얻은 이 영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45년 8월 22일, 일본에서 조선인 강제 징용자 만 명을 실은 배가 들뜬 분위기 속에서 한국으로 출항한다. 하지만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간다는 기쁨을 싣고 가던 이 배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폭발한다. 이는 폭파 직전 작은 배를 타고 먼저 도망친 일본인 선원들에 의해 계획된 일이었다. 한 조선인은 그 계획을 눈치채지만, 강제징용 시절에 혀가 잘리는 바람에 주변 사람들에게 사태를 정확히 알리지 못한다. 폭발 이후, 한 남자와 어린아이만 살아남는다.
이는 1945년 8월 24일에 벌어진 우키시마호 사건을 다룬 영화다. 김춘송 감독은 이 영화가 북한 사학자들의 치열한 연구 끝에 제작되었으며, 최소한 절반은 다큐멘터리의 성격을 갖는다고 말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서는 제대로 된 사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승선 기록도 남아있지 않고, 해당 사건과 관련해 일본 측이 주장하는 피해 규모(조선인 송환자 3,725명 중 524명 사망)와 생존자들의 진술(최소 5,000~7,000명의 조선인 탑승, 3,000~4,000명 이상 사망)은 크게 엇갈린다. 누가 죽고 누가 살아남았는지조차 확실하지 않다.
기지촌 여성과 한인 디아스포라를 연구한 《유령 연구》의 저자 그레이스 M. 조는 망령들이 유일한 목격자인, 이러한 종류의 사건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기계 비전(Machinic Vision)’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계 비전은 미국의 문학이론·미디어이론 연구자인 존 존스턴이 정립한 개념으로, 인간의 감각이 닿지 않는 영역을 비인간적 감각 장치를 통해 포착하려는 시도이다. 그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철학을 바탕으로, 기술적 시각과 인간적 지각의 경계를 허물며 “기계가 보는 세계”를 인간 사유의 새로운 차원으로 제시했다.
<살아있는 영혼들>의 주요 화자는 말하지 못하는 사람의 눈(혀가 잘린 사람)과 기억하지 못하는 자의 입(생존자인 아기)이다. 단절된 시선과 파편화된 기억이 결합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피해자들의 기억과 이후 영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폭발을 목격한 사람들의 눈이 하나의 아상블라주로서 기계적으로 결합할 때, 비로소 트라우마가 목소리를 얻는다고 말한다. 《유령 연구》의 저자에게 유령은 단순히 과거의 잔재가 아니라 세대를 초월해 배회하며, 해결되지 않은 폭력의 역사를 소환하는 존재다. 그런 점에서 ‘기계 비전’은 유령이 현실로 침투할 수 있게 하는 매개적 감각이라 볼 수 있다.
2002년, 뉴욕시에서 <살아있는 영혼들>이 상영되었을 때, 한국계 미국인들과 미국 거주 한인들이 앉을자리도 부족할 만큼 많이 모였다고 한다. 그들을 그곳에 모이게 한 힘, 영화를 보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숱한 경험들이 《유령 연구》의 저자가 말하는 ‘초세대적인 유령’의 힘일지도 모른다. 그 초세대적 유령이 사라지지 않고 배회한 덕분에 우키시마호 사건을 기억하는 아상블라주는 더욱더 큰 몸집을 갖게 되었다.
《유령 연구》가 내게 알려준 것은 이런 시각이다. 실증주의적 관점하에 보기 좋게 정리된 통계 자료로는 절대 포착할 수 없는 역사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사료가 없으면 역사는 성립할 수 없다’며 뒤로 물러나는 대신,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사료화’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 결과 만들어지는 것이 잘린 몸들과 베어져 나간 귀, 충격받은 눈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기괴하고 추한 괴물의 형상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그 추함을 견딜 때 역사가 ‘집단적 기록’에서 ‘집단적 기억’으로 확장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견딤은 유가족이나 후손, 연구자뿐만 아니라 기억으로 연결된 공동체 모두의 의무이다. 우키시마호 사건이 자연스럽게 세월호의 기억으로 이어질 때 느껴지는 슬픔과 분노를 변화의 동력으로 삼는 것. 그것이 남은 자들의 몫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