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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서른여섯. 그리고 아직 멀었다.

대한민국 갑자기 서른여섯, 싱글 여성 디자이너의 새해


늘 그랬지만 매년 맞는 새해를 받아들이는 것이 난 좀 느렸다.

원래 성격 탓인지 시큰둥한 해가 머리 꼭대기에 떠오를 때쯤 연휴 늦잠에서 깨어나기 일쑤.

이미 아침을 넘기고 퉁퉁 불어 눌어붙은 떡국 바닥을 닥닥 긁는 게 하루의 시작이었다.


올해 숫자를 쓰느라 2015를 몇 번 지우고 난 후에 아, 새해구나 하고 느꼈다가 마음이 쿵하고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새해구나, 나 36살이나 먹어버렸네.'


이미 한참 전 일이지만 사춘기 시절에 난 꼭 서른이 되면 콱 죽어버려야지 하고 생각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화려한 20대를 산 후에 멋들어지게 삼십 번째 생일 되는 날 이 세상에서 스스로 사라져버리는 불꽃이 되리라 하고 그렇게 심하게 사춘기를 앓았다.


화려한  20대는커녕 늦게 겨우 들어간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잃어버린 세월을  따라잡느라 바쁘게만 살다 보니 이미  서른여섯이 되어 있었다. 그때 그 시절에 꿈꾸던 내 삶에서 같은 거라곤 여전히 싱글이라는 것뿐 변변찮은 통장 잔고와 아직 먹고 있는 엄마 밥 그리고 하루  열댓 번은 내던지고 싶은 사직서가 오히려 나의 삼십 대 이야기이다.


새벽까지 미드를 보다 늦잠을 자고,  어제저녁 남은 국에 밥을 말아 마시고, 아침 회의에서는 그럴듯한 전문용어를 쓰는 디자이너였다가 졸리는 점심 후엔 눈치 보며 게임도 한다. 고질적으로 개발자와 투닥거리고 속상하다고 남자친구에게 쏟아부었다가 겨우 집에 들어가선 다시 새벽까지 미드를 보는, 사춘기  그때 바라던 나와는 확연히 다른 서른을 지나 올해로 여섯 더 먹었다.


그래도 말이다.

참 다행이다. 사람 냄새나서.

원하던 서른은 이미 넘었어도 마흔까지도  계속해 볼 힘이 남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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