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볼까요?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파도처럼 휘몰아칠 때면, 처음에는 그저 담담히 수용하려 애쓴다. 모든 게 다 필요한 일이고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니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하지만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하루 24시간뿐이다. 그 안에는 생명 유지에 필요한 수면과 식사, 최소한의 휴식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이 필수적인 공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 수많은 일을 동시에 가동하며 출력물을 만들어내야 할 때면, 주어진 시간 안에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엄습한다.
폭풍 같은 일정 속에서 타인과의 관계는 어느덧 업무에 필요한 정보를 주고받는 사무적인 대화로 채워진다. 해내야 할 일들을 하나씩 처리하며 느끼는 성취감도 분명 존재하지만, 머릿속은 이미 다음 과제를 어떻게 완수할지 고민하느라 쉴 틈이 없다. 뇌에도 '멍' 때릴 시간이 필요한 법인데, 잠시의 빈틈도 허락하지 않은 채 다음 단계로 나를 밀어붙이니 몸과 마음이 지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그럴 때마다 내면에서는 자동반사처럼… 기계처럼 말한다. "괜찮아. 괜찮아. 일이 없는 것 보다는 낫지. 감사하면서 일을 해야지. 그래도 이렇게 할 수 있는 게 어디야?" 하는 긍정 회로를 돌리면서 나 자신의 마음을 어루만지지 못한다. 마치 미리 짜인 스크립트를 읽듯, 긍정적인 말들이 주는 효과를 들이밀며 나 자신을 설득한다. 그래야 안전하고 덜 다칠 것 같아서다. 내 마음도 그 말들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지만, 사실 그 깊은 곳에는 외로움과 서운함, 짜증과 피로가 켜켜이 쌓여 있다. 마음은 그저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고 싶지만, 오늘도 묵묵히 참아낼 뿐이다.
문득 생각에 잠긴다. 나는 왜 이렇게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일을 정말 좋아해서일까, 성공을 갈망해서일까, 아니면 무언가를 더 소유하고 싶어서일까? 내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곰곰이 자문해 본다. 그 질문 끝에 마주한 솔직한 대답은 이것이다. 나는 배우는 것을 즐기고, 그것을 활용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행위 자체를 좋아한다. 그것을 조직화하고 현장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며, 내 분야에서 깊은 전문성을 갖추고 싶다는 뜨거운 열망이 있다.
한 분야에서 20년 넘게 일하며 이제는 전문가라는 인정을 받기도 하지만, 내 안에는 여전히 끊임없이 성장하고 싶은 욕구가 흐른다. 그리고 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애쓴다. 이러한 전문성 덕분에 타인과 협업할 기회가 생기고, 다양한 결과물을 통해 조직에 공헌하기도 한다. 그 흐름은 결코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잘 살아가고 있다고 자평할 수 있다. 목적도, 과정도, 결과도 무엇 하나 흠잡을 데가 없다. 체크리스트를 따져보아도 개인과 공공의 목적이 건강하게 설정되어 있고, 과정은 정직하며, 결과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최선의 본보기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찰 질문의 마지막 항목이 발길을 붙잡는다. “요즘 당신은 일을 하며 어떤 마음이 드나요? 왜 그런가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내가 어떤 상태로 그 일을 수행했느냐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진다. 한 건 한 건은 의미 있고 즐거웠을지 몰라도, 그 모든 일들이 촘촘하게 엉켜 숨 쉴 틈조차 없을 때 내 마음은 속삭인다. '외롭고 힘들다'고, '나를 좀 돌봐달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일해야 하니까 잠시만 가만히 있어줘"라며 마음의 입을 막고는, 열심히 시계를 보며 다시 일 속으로 침잠한다.
바쁜 나를 바라보던 마음은 어느덧 침묵에 길들여져 제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된다. 고요 속에 가라앉은 아픔과 쓸쓸함이 진동처럼 전해오지만, 나는 "바쁘니까 나중에 이야기하자"며 다시 쳇바퀴를 힘차게 돌린다. 겉으로는 상냥하게 웃고 있지만, 정작 내 마음과는 소통이 단절되어 마치 배터리가 방전된 사람처럼 일을 해나간다. 기쁘고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이제는 마음이 아프다고 아우성쳐도 멈추지 못하는 기이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포르투갈 작가 카타리나 소브럴의 글자 없는 그림책 『안녕하세요』를 보며, 마음이 텅 빈 채 바쁘게만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스스로와 안녕하지 못한 채로 얻어낸 결과물들이 과연 진정한 행복을 보장해 줄 것인가? 그림책은 내게 묵직한 물음표를 던진다. 나 자신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며 사이좋게 지내겠노라 몇 번이나 다짐했건만, 어느새 나는 또 빨간 구두를 신은 채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있었다. 적절한 '긍정 회로'까지 덧씌워 가면서 말이다. 어쩌면 나는 그렇게라도 나 자신을 설득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일을 멈추라는 뜻이 아니다. 다만 그 일을 왜 시작했는지, 어떤 마음으로 첫발을 뗐는지, 그리고 지금 그 마음을 온전히 지키며 가고 있는지를 살피는 일을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내 마음의 감사와 축하를 받으며 시작한 일인데, 정작 일을 하느라 마음을 소외시킨 텅 빈 사람으로 살고 싶지는 않다. 마음의 고유한 색깔을 잃어버린 채 거둔 성과가 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결과로 인정받고 혜택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내 마음이 나와 멀어진 대가는 그 어떤 보상보다도 뼈아픈 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다시 나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본다. 얼얼하게 부어 있는 마음을 가만히 쓰다듬고 지긋이 안아준다. 혼자 등 돌리고 앉아 있는 내 마음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속삭인다. 치열하게 살아내느라 고생하는 나를 더 이상 소외시키지 않겠노라고. 무엇이 가장 소중한 우선순위인지 기억하며 다정한 인사를 건넨다.
“안녕? 올리브. 많이 애쓰느라 정말 고생했어. 많이 힘들었지?”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 더 잘하고 싶어서 스스로를 너무 몰아세웠구나.”
“조금만 쉬어 가도 괜찮아. 이리 와, 내가 안아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