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노력하면 다 되나요?
어릴 적 우리 집 가훈은 '근면 성실'과 '하면 된다'였다. 새벽부터 일터로 향하시던 부모님의 뒷모습을 보며 자란 탓인지, 내게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일종의 습관이 되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 안에는 언제나 '자동 열심' 모드가 장착되어 있었다.
살다 보니 정말 마음먹은 대로 노력해서 일구어낸 일들이 많았다. 노력하면 결실을 맺는 것은 당연한 순리였다. 성취의 기쁨이 뒤따랐고, 나는 '더 많은 노력은 더 큰 성취를 보장한다'는 공식을 삶의 법칙처럼 믿으며 살았다. 노력 끝에 얻은 결과에는 만족했고, 혹여 열매를 거두지 못할 때면 자신을 검열하거나 원인을 분석하며 전보다 더 큰 노력을 쏟아부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최근 그림책 <코끼리 아저씨와 100개의 물방울>을 다시 펼쳤다. 전에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노력'이라는 키워드가 마음을 파고들었다. 주인공 뚜띠는 자식들에게 먹일 물방울 100개를 길어 조심스레 길을 나선다. 우물가에서 긴 줄을 기다려 얻어낸 100개의 물방울은 뚜띠가 바친 인내와 노력의 결정체였을 것이다.
양동이를 들고 집으로 향하는 길, 뚜띠는 뜻하지 않게 물방울을 빼앗기기도 하고 때로는 누군가에게 나누어주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한다. 물방울은 속절없이 줄어들고, 급기야 양동이는 바닥을 드러낸다. 자신을 위해선 단 한 방울도 쓰지 않은 채 오직 가족을 위해 애써온 수고가 허망하게 사라져 버린 것이다.
텅 빈 양동이를 바라보며 절망의 눈물을 흘리는 뚜띠.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 간절히 기다려 얻은 희망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그는 아마도 슬픔을 넘어 무기력한 원망에 휩싸였을 것이다. "열심히 산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이 닥치는가"라며 하늘을 탓하고 싶지 않았을까.
우리 역시 살아가며 뚜띠의 마음이 되는 순간이 있다. 노력하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세상에 훨씬 많다는 것을 깨달으며 인생의 녹록지 않음을 실감한다. 쏟아져 버린 물방울 앞에서 우는 뚜띠를 보며 내 마음 한구석도 아려왔다. 열심히 노력해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겪어보았을 시린 기억들 때문이다.
나의 공을 다른 사람이 가로챌 때
쏟은 정성만큼 돌아오는 것이 없을 때
상대의 일방적인 태도에 무력감을 느낄 때
진심이 왜곡되어 오해를 받을 때
다 된 밥에 재 뿌리듯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일이 엎어질 때
노력이 과열되어 결국 스스로가 방전되어 버릴 때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세상이 불공평하게만 느껴진다. 마치 관 속에 갇힌 듯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 그저 묵묵히 버티는 것이 유일한 방법인데, 무언가 해보려 발버둥 칠수록 상황은 나를 더 옥죄어 온다. 물방울을 지키려 애쓸수록 오히려 더 빨리 비워지던 뚜띠의 양동이처럼 말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눈물을 흘리던 뚜띠의 머리 위로 빗방울이 떨어진다. 이내 쏟아지는 소나기에 흠뻑 젖은 뚜띠는 자신이 애써 모았던 100개의 물방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풍요로운 물을 담게 된다. 이 장면은 내게 감동 그 이상의 경외감을 안겨주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의 끝에서, 기다림조차 희망이 되지 못해 그저 숨만 쉬며 버텨야 할 때, 그때 찾아온 빗줄기는 하늘 문을 열고 나를 건져 올리시는 하나님의 손길이었다. 나의 지식과 경험으로, 내가 살아온 방식대로 아무리 애써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달을 때가 있다.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으며 "살려달라"고 울부짖던 그 순간, 비로소 하늘 문이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힘을 철저히 빼고,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하는 바로 그 순간 말이다.
그 진리를 깨닫기까지 나는 참으로 먼 길을 돌아오며 물방울을 모으고 빼앗기기를 반복했다. 때로는 뺏기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고, 때로는 연민에 이끌려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이 아무리 재주를 부린들, 하늘 문이 열려 쏟아지는 소나기를 어찌 당해낼 수 있을까.
그림책 속 뚜띠의 모습에서 '노력 성공 신화'를 믿으며 달렸던 과거의 나를 보았다. 모든 게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때로 아프지만, 그것은 곧 내 힘을 뺄 시간이라는 신호이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 지혜로워진다는 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이 많음을 겸손히 인정하고 비로소 하늘의 뜻이 머물 빈 자리를 내어드리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