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나요?
안데르센의 이야기 '빨간 구두'를 기억한다. 가난한 카렌이 화려한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화려한 빨간 구두를 신고 춤을 추게 된다는 이야기다. 처음엔 그저 신기한 일인 줄 알았지만, 빨간 구두는 낮밤을 가리지 않고 가시밭길과 험한 숲 속까지 카렌을 끌고 다니며 멈추지 않는다. 구두는 발에 딱 붙어 도저히 벗을 수 없었고, 카렌을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 끝없이 춤을 춰야만 했다.
결국 한계에 다다른 카렌은 도끼를 든 남자에게 자신의 발목을 잘라달라는 비극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잘려 나간 발목은 빨간 구두를 신은 채 멀리 춤을 추며 사라졌고, 홀로 남겨진 카렌은 의족에 의지해 살아가며 자신의 허영심을 깊이 뉘우친다.
이 이야기가 가끔 생각날 때가 있다. 나 스스로가 카렌처럼 무언가 화려한 것을 쫒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다. 내가 무언가 인정받고 싶어서 카렌처럼 빨간 구두를 신고 춤을 추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처음엔 신나고 신기하지만, 나중엔 그 빨간 구두에 이끌려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면서 멈추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난한 카렌이 화려한 빨간 구두를 열망했던 것은 결핍에 의한 것이었다. 유혹과 열망을 상징하는 빨간색을 고른 카렌은 검정 구두를 신어야 하는 엄숙한 자리에서도 빨간 구두를 고집한다. 극심한 빈곤과 상실을 경험한 아이에게 빨간 구두는 단순한 신발이 아니라, "이제 나는 더 이상 초라하지 않다"는 것을 세상에 증명하고 싶은 강력한 수단이었을지 모른다. 내면의 자존감이 무너진 자리를 외부의 화려한 장식(빨간 구두)으로 메우려 했던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빨간색'은 타인의 관심을 독점하고 싶은 욕구와 맞닿아 있다. 춤을 멈출 수 없었다는 것은, 한 번 타인의 시선과 인정에 맛을 들이면 그 쾌감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몰아붙여야 하는 현대인의 인정 투쟁과도 닮아 있다. 남들에게 박수받고 주목받는 동안은 살아있음을 느끼지만, 그 과정에서 정작 자기 자신은 소모되고 결국 발목(자아의 지지대)이 잘려 나가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인정받고 싶었던 것일까?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까? 표면적으로는 나름 가치지향적이고, 뭔가를 이루어 나가고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 열심은 과연 무엇을 위해서 작동하고 있는지 직면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굳이 그렇게까지 더 열심일 필요는 없는데, 나를 멈추지 않게 만드는 빨간 구두는 무엇이었고, 지금은 또 무엇으로 바뀌어 있을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카렌의 결말이 여전히 무섭고 두렵다. 발목이 잘려 나가야만 저주가 끝난다는 그 잔혹한 구원이 나에게는 공포로 다가온다. 내가 지금까지 인정받기 위해, 혹은 결핍을 메우기 위해 쌓아온 이 '열심'들이 사실은 내 발목과 단단히 엉겨 붙어버린 것은 아닐까 겁이 난다. 이것들을 멈추거나 내려놓았을 때, 정말 내 삶의 지지대마저 잘려 나가는 비극을 맞이하게 될까 봐 선뜻 구두끈에 손을 대지 못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 나를 증명해 주는 이 바쁜 일상을 당장 그만두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이미 구두는 내 발의 일부가 되었고, 나는 이 속도감에 익숙해져 버렸다. 무언가를 성취하며 얻는 에너지는 분명 나를 살게 하는 힘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춤을 멈추지 못하는 카렌의 비극은 구두의 화려함 때문이 아니라, 구두가 나를 어디로 끌고 가는지도 모른 채 그저 끌려다니는 상태 그 자체에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발목을 자르는 대신, 잠시 숨을 고르고 내 발을 내려다보기로 한다. 무작정 춤을 멈추거나 생업을 내팽개치는 극단적인 선택이 아니라, '왜 춤을 추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는 연습을 시작하려 한다. 타인의 박수 소리에 박자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 내면의 호흡에 맞춰 춤의 속도를 조절해 보는 것. 구두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비록 빨간 구두를 신었을지언정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내 의지로 선택해 걷는 것.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발목을 자를 도끼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진 채 '오직 나로 존재해도 괜찮다'라고 말해주는 아주 작은 틈인지도 모른다. 그 틈 사이로 숨을 쉬며, 나는 오늘도 빨간 구두를 신은 채 조금은 다른 리듬으로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