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서로 선 넘지 마시렵니까?

친하다면서 왜 서로 상처 줄까요?

by Olive

우리 친한 사이였지요?

살면서 만나는 길고 짧은 관계들 속에서 나는 인생을 만들어 간다.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에, 우리는 평생에 걸쳐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그중 결이 잘 맞는 이들과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되며, 때로는 가족이 되기도 한다. 기쁠 때나 슬플 때, 혹은 문제가 생겼을 때 서로의 마음을 감싸주며 도움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한때 친했던 모든 이와 지금까지 인연이 이어지지는 않는다. 서로 바빠 연락이 뜸해지며 어색해지기도 하고, 사소한 부딪힘으로 인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기도 한다. 가끔은 함께했던 시간이 그립지만 차마 먼저 연락하지 못한다. 다시 맞닿았을 때 서로가 더 힘들어질 것을 알기에, 여기서 멈추는 것이 서로를 위한 최선임을 직감하기 때문이다.


사랑한다면서, 왜 자꾸 서로를 찔렀을까요?

부모와 자식, 부부, 연인, 그리고 친구 사이. 우리는 사랑한다 말하면서도 서로에게 상처를 내고 가시를 세운다. 누구보다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었기에, 때로는 타인보다 더 깊숙이 서로를 찌르기도 한다. 깊게 사랑했다는 고백이 무색할 만큼 눈빛은 냉랭해지고 마음은 싸늘하게 식어간다.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밤새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입술은 이제 굳게 닫힌 채 침묵만을 머금는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담은 [필로니모 2]에는 추위를 피하려 모여든 고슴도치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처음엔 서로의 온기가 따스해 좋았지만, 너무 가까워진 탓에 서로의 가시에 찔려 아파하기 시작한다. 우리 역시 너무 좋아서, 더 가까이 가고 싶어서 서로를 찔렀던 것일지도 모른다. 서로를 온전히 존중할 수 있는 거리, 그 사람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적당한 거리만큼은 떨어져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가까이 다가갈수록 상대의 가시가 나를 찌르고 나의 가시도 상대를 찌르며, 우리는 서로를 탓하며 지쳐갔다.


우리, 서로 조금 거리를 두는 게 어떨까요?

서로 너무 가까운 나머지 계속해서 상처를 주고받는다면, 그것을 최선이라 할 수 있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아픔만 커진다면 결코 건강한 관계라 할 수 없다. 그렇다고 고슴도치의 가시를 다 뽑아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시 없는 고슴도치는 더 이상 고슴도치답지 못하며, 자신의 본모습을 잃어가면서 유지하는 관계는 결국 한쪽의 착취나 희생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가시에 찌르지 않을 만큼의 거리두기'다. 잠시 거리를 두고 서로를 바라볼 수 있을 만큼 멀어지면, 격앙되었던 감정은 가라앉고 힘들었던 시간을 차분히 돌아볼 수 있게 된다. 관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허용하는 것. 그것이 관계를 바로 해석하고, 그다음을 향해 담담하게 나아갈 마음의 공간을 마련해 주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