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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는 여행중 Jan 11. 2019

런던 여행에서 깨달은  육아에 대한 나의 편견

지난 여행 파헤치기 : 유럽 편 05

내가 율이와 함께여서일까, 여행 중 아이와 함께 있는 엄마들에게 유독 시선이 자주 갔다. 그리고 런던에서 마주친 (아마도 각국의) 엄마들로부터 신선한 문화 차이를 종종 경험할 수 있었다.


모유 수유하는 장소
만 9개월 율은 하루에 2번은 이유식을 먹지만 틈틈이 모유수유로 식사 보충을 해 주어야 했다. 런던에는 우리나라 마트나 백화점처럼 수유실이 따로 만들어진 곳이 거의 없었기에 여행 중 나는 종종 수유할만한 곳을 찾아 이곳저곳을 떠돌며 불편을 겪어야 했다. 그런데, 여기서 마주친 많은 엄마들은 대영 박물관에서도 자연사 박물관에서도 큰 공원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가슴을 드러낸 채 수유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잘 본 게 맞는 건지 화들짝 놀랐지만, 여러 번 이런 장면을 보게 되자 '아.. 런던에는 수유실이 따로 필요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모유수유를 하고 있는 엄마'인데도 막상 다른 엄마와 아기의 수유 장면을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다른 곳을 보며 시선을 피하는 편이었다. 여행을 와서도 피치 못할 사정으로 공공장소에서 수유를 해야 할 경우, 매우 후미진 곳에서 가리개를 하고 (내 딴에는 티 안 나게) 수유를 하는 중이었다. 아이가 엄마 젖을 먹는 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거지, 당당하자!라는 이론과 실제로 공공장소에서 수유를 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런던에서 만난 엄마들이 자연스럽게 수유하는 장면을 여러 번 목격한 이후에는 적어도 후미진 곳까지는 가지 않게 되었다. 거리나 공원의 벤치에 앉아서 가리개를 하고 수유를 하는 정도로 내 나름의 용기를 낼 수가 있었다. 여긴 해외잖아! 하는 생각도 솔직히 없지 않아 있었고, 아기와 함께하는 이 여행을 좀 더 편하고 자연스럽게 생각하자고 스스로 마음먹기도 했다. 덕분에 율은 이번 여행이 끝날 때까지 각국의 명소에서 모유수유를 하는 영광을 누렸다.


어느 공원에서나 볼수 있었던 유모차와 아이들. 그리고 (사진에는 없지만) 수유하는 장면

신생아와 산모를 대하는 자세
산후조리를 이렇게 돈과 시간 들여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더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출산을 직접 겪어 본 나로서는 산후 몸조리가 매우 중요하다고 믿는 편이다. 그런데 런던 템스강변에서 '정말 저 아기는 이번 주에 태어났을 거야' 싶은 아기를 안고 산책하는 엄마를 보았다. 처음에는 아기인 줄도 잘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너무나도 작은 아기가 슬링 속에 안겨있었다. 정말 괜찮은 건가? 저 아기는? 저 엄마는? 삼칠일, 백일을 아직도 많이 믿고 따르는 우리나라의 정서와 큰 차이가 있었기에 걱정부터 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아니 유럽 엄마들은 이렇게 출산 후에 자연스럽게 생활하는데 그동안 내가 너무 몸을 사리며 유난을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아기의 음식
런던 아이 근처 일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할 때였다. 율이 낮잠 중이라 우리 부부는 모처럼 우아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우리의 바로 옆 테이블에서 북유럽계로 보이는 엄마 아빠와 엄마 무릎에 앉은 아기가 식사 중이었다. 아기는 5~6개월 정도로 율이 보다 훨씬 개월 수가 어려 보였다. 그런데 이 엄마가 자신이 먹던 볶음 국수 속에서 골라낸 소스 범벅 파프리카를 아기 손에 쥐어주는 것이었다. 아기는 그것을 입 쪽으로 가져가며 온 얼굴에 소스를 칠하고 혀를 날름거리며 맛도 보고 있었다. 나는 밥을 먹다 말고 남편에게 "여보 옆 테이블 엄마 좀 봐. 진짜 대단해!" 하고 속삭였다. 우리끼리 한국말로 이야기하는데도 괜히 들킬까 봐 목소리가 낮아졌다. 남편도 깜짝 놀란 눈치였다. 율은 아직도 간이 안된 육수에 쌀가루를 넣은 이유식을 먹는 중이었다. 아직 장이 약한 아기가 저렇게 자극적으로 먹어도 탈이 나지 않는 것인지 걱정이 되었다. 서양에서는 아기의 다양한 경험을 존중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어  본 적은 있었지만 직접 목격하니 또 새로웠다. 아이를 키우는 데는 정답이 없다는 말에 다시 한번 격하게 공감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육수를 얼려가서 숙소에서 이유식을 만들어 먹였다


아마도 아이와 함께 여행을 하지 않았다면 영영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찰나들이었을 것이다. 다양한 문화를 접하면서 육아에 대한 나의 좁은 식견이 조금은 넓어지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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