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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는 여행중 Jan 12. 2019

아기 여행객에게 친절했던 Paris

지난 여행 파헤치기 : 유럽 편 06

파리로 가기 위해 짐을 싸서 킹스크로스 역에 도착했다. 여유를 부리며 지하철 디파짓 요금을 정산하고 오니, 이미 우리가 타야 할 열차 플랫폼의 게이트가 잠겨 있었다. 출국이라 짐과 몸수색 등을 위해 여유 시간이 필요했는데 우리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런던 킹스크로스 역에서 유로스타를 타고 파리 북역으로 가는 것을 KTX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 가는 것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유럽 국가끼리는 비자 없이 자유롭게 나라를 넘나 든다는 개념을 '무 절차로 입출국을 한다'라고 이해했던 것이다. 굳게 닫혀버린 문에 당황했지만, 다행히 바로 티켓 창구에서 환불 후 재발매를 해서 1시간 뒤의 유로스타 오를  있었다. 열차에 올라서야 긴장이 풀리며 무지한 여행자에 대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유로스타에서 보이던 풍경과 기차 안에서의 율이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파리는, 같은 서유럽이지만 건물의 느낌이나 가로수, 사람들의 모습에서 런던과는 또 다른 도시임을 바로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스물다섯 가장 이쁘던 시절, 파리에서 유학하던 친구네서 신세를 지며 일주일간 지냈던 추억이 있는 곳이라 더 반갑기도 했다. 파아란 하늘과 기분 좋은 봄바람이 런던에서 막 도착한 여행객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피곤했지만 날씨가 아까워 도저히 쉴 수가 없었다. 우리 셋은 숙소에 짐을 던져 놓자마자 파리를 느끼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이번에도 역시 에어비앤비를 통해 구한 숙소는 오르세 미술관 바로 앞에 있는 작은 스튜디오였다. 그래서 우리는 오르세 미술관에서 출발해 콩코드 광장을 지나 개선문까지 일단 쭉 걸어보기로 했다.

튈르리 정원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모습

우선 오르세 미술관 정문 쪽에서 센 강을 건너 튈르리 정원으로 들어섰다. 깍둑깍둑 네모나게 손질된 귀여운 나무들도 그렇지만, 잔잔한 둥근 연못을 둘러싸고 편안하게 앉아 쉬는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아무런 생각 없이 여기 앉아 쉬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곳이었다. 또, 대도시 속에 이리도 평화로운 장소가 있다는 것이 부럽기도 했다. 


그리고 예쁜 산책로를 천천히 걸으며 정원 반대쪽으로 난 문을 나서니, 오랜만에 만나는 콩코드 광장을 마주하게 되었다. 확 트인 넓은 공간이 한눈에 들어오며 느껴지는 거대한 공간감에, 나도 모르게 '우와!' 하는 감탄사를 뱉게 되었다. 우리는 커다란 광장을 중심으로 이리저리 바삐 가는 자동차들도 보고, 광장 한가운데 우뚝 솟은 오벨리스크를 배경으로 기념사진도 찍은 뒤 다시 샹젤리제 거리 쪽으로 향했다. 초록 초록한 가로수와 상점들이 도로 양쪽으로 죽 늘어선 샹젤리제 거리는 명성에 맞게 각국에서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우리는 인파 속에 섞여, 시선을 끄는 가게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율이에게 '오~샹젤리제~'하고 노래도 불러주며 드디어 목적지인 개선문에 도착했다.


개선문 꼭대기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기 위해 입구를 찾아갔을 때였다. 문 앞에 서있던 경비 아저씨가 우리를 보더니 여기 말고 저쪽으로 가라며 반대쪽 기둥을 가리켰다.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눈치껏 아저씨가 말한 쪽으로 가 보았다. 그런데 거기에는, 예상 밖의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계단으로 걸어 올라야 하는데, 아이를 안고 있어서 배려해 준 것 같았다. 런던에서 휴대폰을 잃어버린 후로 여행에 대한 정보력이 많이 떨어지던 참이라(남편이 런던 일정, 내가 파리 일정을 나누어 맡아 준비했었다) 개선문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뜻밖의 선물같이 느껴졌다. 나와 남편은 너무 기뻤지만 티를 많이 내지 않으려 애쓰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층까지 단숨에 올라갔다. 율이에게 '니 덕분이야' 라며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개선문 옥상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는 파리 시내는 정말 아름다웠다. 같은 말인데도 런던이 '로맨틱'했다면, 파리는 '낭만적'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펠탑과 멀리 보이는 몽마르트르 언덕, 신개선문, 바로 눈 아래 내려다 보이는 샹젤리제 거리까지 파리의 랜드마크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니 두고두고 기억될 순간이었다.


개선문에서 보이던 몽마르뜨 언덕과 샹젤리제 거리, 그리고 에펠탑을 배경으로 한 율이와 나

사실 파리의 이러한 친절은 이후에 루브르 박물관을 갔을 때도 한번 더 경험할 수 있었다. 아기가 있는 가족은 루브르 박물관의 긴 입장 줄이 아닌 별도의 라인을 통해 대기 없이 바로 입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줄이 여러 번 구불구불 해질 만큼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그 관람객들을 뒤로하고 먼저 들어가려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사실 아기와 긴 대기 시간을 통해 입장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그 상황을 배려해주는 미술관 측에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덕분에 율이와 함께 멋진 그림과 조각들을 감상하며 루브르에서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었다.

 

파리 여행 중 기차나 지하철에서 율이가 울거나 보챌 때,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시끄럽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면 "신경 쓰지 마. 우린 괜찮아. 아기는 원래 그래!" 하고 다독여 주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그동안 시크한 이미지의 프랑스 사람들이었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서 아기에게 (혹은 아기와 함께 여행하는 가족에게) 많은 배려를 해주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따뜻함 덕분에, 힘들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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