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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는 여행중 Jan 15. 2019

프랑스 작은 도시에서의   
소풍 같은 하루

지난 여행 파헤치기 : 유럽 편 07

파리에 있는 3일 동안 오르세와 루브르 박물관은 물론이베르사유 궁전과 몽마르트 언덕, 에펠탑, 노트르담 성당 등 이름 있는 곳들은 모두 둘러보았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일정이자 마지막 일정인 '친구 Y의 결혼식 피로연 참가'만 남겨두고 있었다. 피로연은 파리가 아닌 브히아흐(Briare)라는 작은 도시에서 진행될 예정이라, 우리는 기차로 이동을 해야 했다. 친구 남편인 제프는 부르주(Bourges)라는 도시 출신인데, 브히아흐는 부르주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한국에서부터 예약해둔 티켓 일정에 따라 아침부터 파리 리옹역으로 가서 기차를 탔다. 작은 도시로 가는 디젤 열차였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지 않고 듬성듬성 앉아있는 게 전부였다. 리옹역을 벗어난 뒤 1시간 반 정도 달려 브히아흐 역에 도착했다. 역에는 오늘의 주인공 제프가 차로 마중을 나와 있었다. 한국에 오래 살기도 했고, 워낙 한국말을 잘해 '김제푸'라는 귀여운 별명을 가진 그였다. 한국에서도 종종 만났지만 이렇게 제프의 나라에서 만나고 보니, 한국에서 보았을 때와 또 다른 '장 클로드'씨를 만나는 것 같은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소박하지만 정감 있는 브히아흐 역

피로연의 장소는 역에서 차로 3~4분 정도 거리에 있는 작은 호텔이었다. 먼저 도착해 손님맞이 준비를 하고 있던 Y와 한국에서 딸의 결혼식 피로연을 위해 오신 Y의 부모님이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Y의 부모님은 중학교 시절부터 뵈어 온 분들이라 그렇지 않아도 매우 친근한 분들인데, 프랑스에서 만나니 해외에서 동포를 만난 기분이라 더 반가웠다. 이 날 한국에서 온 손님은 Y의 부모님과 우리 세 식구뿐이었다. 그래서인지 뭔가 한국을 대표하는 듯한 마음이 들어, 오늘 만나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프의 어머니와 친지들, 친한 친구들과 그 가족들이 차례로 도착했다. 그리고 시간이 되자, 호텔 건물 마당에 모두 모여 파티의 시작을 알리는 축하주를 들며 건배를 나누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서로 안부를 나누기도 하고, 오랜만에 만나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나와 남편은 이런 입식 파티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살짝 떨어져서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마치 TV 속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이 신기하고 재밌었다.


식사 전, Y의 전통무를 보여주는 시간이 있었다. Y는 현대무용을 전공했지만 이 날 참석하는 제프의 친지들과 친구들을 위해 특별히 우리 전통춤을 보여주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 별다른 무대 장치 없이, 초록 잔디 위에서 한복을 입고 부채를 들고 춤추는 모습이 하늘하늘 거리는 한 마리의 나비 같았다. 프랑스의 작은 도시에서 우리 가락과 우리 춤, 우리 옷의 조화를 보게 되다니! 무언가 감격스러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둘러앉아 관람하고 있으면서도, 한국의 아름다움에 시선을 떼지 못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도 여러 번 친구의 공연을 본 적이 있었지만, 이런 이국적인 환경에서는 처음이어서인지 더욱 집중해서 보게 되었다.

파티의 시작 즈음. 서서한 파티 문화는 익숙하지는 않지만 재밌는 경험이다
잔디밭에서 춤을 추는 Y와 지켜보는 관객들

춤이 끝난 뒤, 잔디밭 한쪽에 만들어진 흰 천막 건물로 이동해 식사를 시작했다. 말로만 듣던 '프랑스 코스요리'였다. 프랑스 코스요리를 정식으로 먹으려면 몇 시간에 걸쳐서 먹어야 한다고 알고 있어 조금 긴장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이 날은 그렇게 긴 코스는 아니었다. 전채요리부터 시작해 메인, 디저트까지 사람들은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식사를 했지만, 평소 한국에서 먹던 코스요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양한 종류의 와인이 테이블에 놓이는 것이 조금 새로운 정도였다. 우리와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제프의 사촌과 친한 친구들의 가족이었는데, 모두 아이를 동반하고 있었다. 그래서 편하게 서로의 아이에 대해 물어보기도 하고, 한국에 대해, 각자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특히, 아기들에 대한 이야기는 분위기가 살짝 어색해질 때 꺼내기 좋았다. 역시 아이들이 애매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해주는 것은, 세계 어딜 가나 공통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가 어느 정도 끝날 무렵부터, 몸이 근질근질해진 아이들이 하나둘 잔디밭에 나가 뛰어 놀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와 율이도 화창한 날씨 속에서 산책을 즐기러 나가 보았다. 이 날 제프 어머니의 친구분께서 파티에 모인 아이들을 위해 여러 가지 소품들을 봉투에 예쁘게 포장해 와서 나누어 주었는데,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율이는 아직 어려 직접 가지고 놀지는 못했지만, 선물 봉투를 골라 풀어보고 율이에게 보여주느라 우리 부부가 더 신이 났다. 대단한 장난감은 아니지만 후~ 불면 긴 혀처럼 길어졌다 말리는 빨대, 피에로 코, 귀여운 집개핀 같은 작은 소품들로 한참을 웃고 떠들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오는 아이들과 교감하기도 하고, 잔디에 앉아 햇살 아래 신나게 아이들이 뛰노는 것을 바라보기도 했다. 이곳에서 만난 아이들이 잔디에 아무렇게나 눕고 뒹굴기도 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달리는 것을 보니, 율이도 저렇게 신나게 뛰어 놀 줄 아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티를 여유롭게 즐기는 사람들과 초록 잔디에서 신나게 즐기고 있는 우리 가족


늦은 오후, 기차 시간이 다 되어 우리는 만났던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다시 제프의 차로 브히아흐 역으로 향했다. 역에서 열차에 올라 파리로 향하는데, 문득 친구들과 교외로 소풍을 나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를 타고 수십 시간을 날아온 낯선 땅이었지만, 따뜻하고 편안했던 하루의 분위기가 우리를 친구처럼 익숙하게 만들어 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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