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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는 여행중 Jan 21. 2019

방콕 야시장의  멈추지 않는 회전목마

지난 여행 파헤치기 : 방콕 편 01

이번엔 방콕에 가기로 했다. 최근 몇 년 간 해외여행지를 정할 때면, 유아들이 물놀이하기 좋은 곳, 비행시간이 길지 않은 곳, 어린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아이템이 있는 곳 과같은 사항만을 고려해서 선택하곤 했다. '애들이 좀 더 클 때까지 당분간은 어쩔 수 없지.'하고 타협하면서도, 한편으로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후보지를 정하기 전부터 "여보, 난 올해만큼은 휴양지 말고 관광지로 가고 싶어." 하고 남편에게 선언해둔 상태였다. 아이들 뿐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즐거운 곳으로 가고 싶다는 의미였다. 다낭, 발리, 괌, 쿠알라룸프르와 같은 쟁쟁한 동남아 후보 도시들을 제치고 방콕을 고르게 된 이유는, 비용에 비해 좋은 퀄리티의 호텔에서 지낼 수 있고, 대부분의 호텔에 수영장이 있어 물놀이도 적당히 할 수 있으면서도 (내가 원하는) 다채로운 볼거리와 먹거리가 있는 도시였기 때문이었다. 하루 종일 발품 팔아 걸어 다니기만 하는 여행도 오랜만에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역시 아이들의 편안한 잠자리나 물놀이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늦은 8월, 우리 넷은 방콕행 타이항공에 몸을 실었다. 바퀴만 달리면 다 좋아하는 5살 율이는 이미 인천 공항에서 자기 부상 열차를 타보고, 많은 비행기와 수송용 차량들을 실컷 구경한 상태라 매우 흥분 상태였다. "타이 항공은 처음 타보네!" 하며 비행기 곳곳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하고, 키즈밀을 즐기기도 하고, 스티커북에 한참을 집중하고, 낮잠도 한 타임 자고 나니 수완나폼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의 아이들과 수완나폼 공항에서의 율

짐도 많고 애들도 둘이나 되어, 공항에서 바로 호텔로 가기 위해 택시에 올랐다. 예약한 호텔 영문명만 외워두고 있던 터라, 운전수 아저씨에게 자신 있게 "차트리움 리버사이드 호텔!"하고 외쳤는데, 아저씨는 여러 번을 말해주어도 "응? 응? 뭐라고?"하고 어딘지 알아채지 못했다. 제법 큰 호텔이라 택시 아저씨들은 다 알겠지 하고 쉽게 생각했던 우리의 오산이었다. 애들 때문에 정신이 없어 비행기 안에서 유심카드를 바꿔 넣는 작업도 하지 못한 상태였다. 어찌어찌 갤러리 사진 속 캡처 화면에서 겨우 호텔 전화번호만 찾아냈다. 그 번호로 아저씨가 직접 전화를 걸어 보더니 "아~ 짜티움~" 하고 그제야 이해했다며 출발했다. 태국식 영어 발음과 우리가 한 발음에 차이가 많이 나는 거 같았다. 만일을 대비해 호텔명과 주소, 전화번호 정도는 인쇄된 종이를 한 장 정도 준비하는 게 좋았겠다 싶었다.


숙소에 도착하니 이미 어둑어둑해져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그래서 체크인하자마자 저녁 식사도 하고 첫날 현지 적응도 할 겸, 야시장으로 유명한 아시아 티크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호텔에서 도보 15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어 아이들과 걸어가기에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호텔에서 나설 때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해 호텔에서 우산을 빌려 쓰고, 좁은 인도를 둘씩 나누어 걷기 시작했다. 넓지 않은 도로를 따라 낡은 건물들과 관공서, 사원들이 어져있었다. 그리고 그 앞으로, 에어컨이 없는지 창문을 열어둔 채 매연을 쏟아내며 달리는 버스, 알록달록한 색색의 택시, 화려한 조명을 단 툭툭 같은 것들이 큰 엔진 소리를 내며 쌩쌩 달렸다. 이제야 방콕에 온 것이 조금 실감이 났다.


비 오는 토요일의 아시아티크는 이미 주말을 즐기는 현지인들과 넘쳐나는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조금 돌아보려는데 율이 배가 고프다고 신호를 보내왔다. 그래서 길게 고민하지 않고 괜찮아 보이는 시푸드 레스토랑으로 바로 들어갔다. 우리 부부가 향신료에 강한 편이 아니기도 하고, 아이도 함께 먹어야 하다 보니 쏨땀, 오징어 볶음요리, 볶음밥, 땡모반 주스(수박주스) 같이 익숙한 음식들 위주로 시켰다. 한참 배가 고플 시간이기도 했고 음식 맛도 괜찮아, "우리 여기 잘 골라 들어왔어!' 하며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저녁식사로 먹은 요리들과 율

배도 불렀겠다 이제 야시장을 구경해볼까 하고 돌아보기 시작했을 때였다.  "엄마, 저것 좀 봐!" 하며 율이 손을 잡아끌었다. 눈에 들어온 것은 작은 회전목마였다. 방콕 야시장에 와서 아직 구경은 제대로 시작도 못했는데 뜻밖의 회전목마라니... 예상했던 그림은 아니었지만 아이도 함께 즐기는 여행이어야 하니까. "그래 율아 여행 기념이다!" 하며 티켓을 샀다. 남편이 든 린이를 안고 있어, 나와 율이만 타기로 했다. 우리 둘과 현지 어린이 한 명이 더 타서 손님은 달랑 세명뿐이었지만 회전목마는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는 신나는 노래와 함께 출발했다. 그런데 몇 바퀴 돌지 않았을 때부터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갑자기 폭우로 바뀌었다. 주변 가게들은 무섭게 쏟아지는 비를 피해 급하게 비닐 커튼을 내리고 창을 닫기에 바빴다. 가까이 있던 남편과 린도 어느새 저쪽 처마 밑으로 피신해 있었다. 억수같이 내리는 빗속에서 아들과 타는 회전목마라니, 지금 눈에 보이는 것들이 하염없이 떨어지는 빗줄기와 방콕 야시장의 다닥다닥 붙은 가게들이라니, 갑자기 꿈꾸는 것처럼 현실감이 없게 느껴졌다. 낯선 공간과 시간 속을 말을 타고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빗속에서 회전목마를 타는 나와 율

'이거 꽤 오래 태워주네' 하고 탑승구 쪽 눈치를 보고 있을 때쯤 회전목마의 속도가 점점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내려야지 하고 내릴 포즈를 잡고 있는데 입장과 탑승을 봐주던 청년이 느리게 움직이는 말들 사이로 다가와서는 "one more one more?" 하는 것이었다. "No no no, thanks." 하는 대답을 하고 있는데 "free, free!" 하며 이미 청년은 등지고 내려가 운전 담당하는 동료에게 출발 신호를 전달하고 있었다. 결국 다시 말들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비가 갑자기 너무 많이 내려 다음 손님들은 오지 않고, 마냥 회전목마를 세워두는 것보다는 손님들이 탄 모습이 나았기 때문일까. 우리는 강제로 다시 한번 비현실적인 풍경 속으로 들어가 회전목마 위에 앉아있었다. "엄마 아저씨가 우리 또 태워준대?" 율이는 어리둥절하지만 기뻐하는 얼굴이었고, 멀리서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남편의 웃음 터진 모습이 보였다.


몇 분의 시간이 지나고 말의 속도가 떨어지며 다시 한번 내릴 타이밍이 왔다. 아직도 비는 많이 내리고 손님은 오지 않은 상태라 나는 혹시나 또 못 내릴까 봐 긴장이 되었다. 어질어질한 것이 이번에는 꼭 내리고 싶었다. 그래서 '아 끝나가는구나'하고 천천히 도는 것이 느껴질 때부터 말에서 후다닥 내렸다. 그리고 다 멈출 때쯤 율이를 내려 주었다. 예상대로 청년이 다가와 "one more? it's free! " 하고 한번 더 타라며 권했다. 우리는 이제 타지 않겠다며 내리자, 그는 '공짜인데 왜 마다하고 그래?' 하는 표정을 보였다. 성의를 거절한 것 같이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도망치듯 율이 손을 잡고 남편 쪽으로 갔다. 재미있는 경험이었지만, 컨디션을 생각하면 딱 여기까지가 좋았다. 하마터면 또 못 내리고 방콕까지 와서 계속 회전목마만 타고 있을 뻔했다는 생각이 드니 뒤늦게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야시장 구경에 나섰다. 우리는 코끼리 무늬 냉장고 바지, 라탄 백, 열대과일 모양의 비누, I LOVE THAILAND 티셔츠 등을 보며 이 가게 저 가게를 돌아다녔다. 그런데 긴 비행시간과 이동으로 피곤했기 때문인지, 처음에는 귀엽다 싸다 신기하다 하면서 자세히 구경했던 것들이 몇 골목 다니다 보니 이 가게가 저 가게 같고 파는 물건도 다 비슷비슷해 보였다. 율이도 지루하게 느껴지는지 슬슬 몸을 꼬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사지 않고 망고 디저트가 유명하다는 망고 탱고로 갔다. 그리고 이 곳의 시그니처 메뉴인 망고 아이스크림과 푸딩을 먹으며 지루했던 마음을 미각으로 달래었다.

망고 탱고에서 율

 숙소로 돌아갈 때는 왔던 길과 다르게 아시아 티크의 셔틀보트를 타보기로 했다. 그동안 빗줄기는 약해져 있었지만 여전히 비는 내리는 중이었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의 차오프라야 강을 배로 달리니 더위와 습기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사톤 선착장에서 우리 호텔로 가는 보트로 다시 한번 갈아 탄 후, 방으로 돌아와 첫날의 여정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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