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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는 여행중 Jan 24. 2019

아기를 안고 있지만, 마사지는 받고 싶어

지난 여행 파헤치기 : 방콕 편 02

본격적인 방콕 여행을 위해 우리가 향한 곳은 태국 최대 규모의 재래시장으로 유명한 짜뚜짝 시장이었다. 첫날 아시아 티크도 돌아본 터라 며칠 후로 일정을 잡고 싶은 곳이었지만, 휴일에만 크게 열린다고 해 일요일인 이 날 가 보기로 했다. 워낙 유명하고 사람이 많이 붐비는 곳이라, 그나마 덜 복잡한 시간을 노리고 오픈 시간에 맞추어 갔다. 일찍 왔다고 생각했건만 BTS MO CHIT역에서부터 길게 이어지는 관광객들의 행렬이, 지도를 보지 않아도 어느 쪽이 시장 방면인지 알려주었다. 사람들을 따라 육교를 지나 조금 더 걸으니 짜뚜짝 시장의 입구가 나왔다.

BTS를 타고 내려 짜뚜짝 시장으로 가는 중

짜뚜짝 시장은 약 15,000개의 상점이 있을 만큼 규모가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곳을 둘러보지는 않고 여행 책자에서 추천한 몇 군데를 중심으로 돌아볼 계획이었다. 시장은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곳도 있었지만, 아침부터 몰려드는 손님들과 이미 문을 열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는 가게들로 분주했다. 27개의 구역 중에서 우리가 돌아본 구역들은 여성과 아이들의 옷, 액세서리 같은 작은 소품들, 장식용 제품, 태국 여행 기념품들이 주로 보이는 곳이었다. 구역과 구역을 나누는 길가의 리어카에서는 망고, 코코넛, 수박과 같은 열대과일로 주스와 아이스크림 같은 것들을 만들어 팔았다. 그리고 타이 마사지 집에서 나온 사람들이 길가까지 나와 우리 가게가 싸다, 대기 없이 지금 당장 받을 수 있다며 호객행위를 했다. 나는 이때다 싶어 "여보, 태국에서는 1일 1 마사지가 필수라더라." 하고 남편에게 말하며 은근 마사지를 받고 싶다는 티를 냈다. 물론 마사지를 받는 동안 가만히 있을 리 없는 어린 두 아이들과 동행하는 여행인지라, 쉽게 도전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포기란 모르는 여자. 주위를 둘러보다 꾀를 내었다. "율아 아이스크림 먹을래?" 하고 가까이 있던 리어카에서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주고, 율이 먹는 동안 30분짜리 발마사지에 도전하기로 한 것이다. 마침 린이 아기띠 속에 자고 있어서 해 볼만했다. 나는 율이 에게 아이스크림을 사 주자마자 바로 옆에 있는 마사지 집으로 후다닥 가서 30분짜리 발마사지를 받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자마자 율이가 "엄마 나 심심해." 할 것이 뻔하기에, 린이 언제 깨어날지 모르기에, 1분 1초라도 빨리 시작해야 했다. 남편은 처음엔 이래도 괜찮을까 의심을 하다가, 율이 아이스크림에 푹 빠져 얌전히 먹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얼른 내 옆자리로 와서 앉았다. 마사지사들은 벽에 걸린 선풍기 방향을 우리 부부 쪽으로 틀어주고는 신속하게 세팅한 후 바로 마사지를 시작했다. 상체는 아기를 안고 있어 딱히 편하지 않지만, 하체는 릴랙스 하는... 절반짜리 힐링이었다. 가게 앞을 지나는 사람들이 우리 모습을 보며 '저것 좀 봐' 하고 웃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 중 마사지는 못 받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라도 즐길 수 있는 것에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물론 예상대로 조용하고 편안한 릴랙스 타임이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린은 눈치 없이 몇 분 지나지 않아 낮잠에서 깨어났고, 율은 아이스크림을 다 먹자마자 아빠 배에 올라타 놀아 달라고 장난을 걸어왔다. 결국 우리 부부는 배 위에 아이를 하나씩 올려두고, 아이들과 놀아가며 남은 시간 발 마사지를 받았다. 중간중간 마사지사들이 율과 린이 귀엽다며 말도 걸어주고, 율이에게 요구르트도 하나 주었기에 30분을 채워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덥고 습한 날씨였지만 발에 남아있는 말랑말랑한 로션의 느낌이 다시 한번 짜뚜짝을 돌아보는 힘이 되어 주었다.

아기와 함께하는 발마사지 타임. 안아주고 놀아주고 마사지를 받는 중

다시 시장을 돌아보다, 율이 망고주스 가게 앞에 멈추어 조르기 시작했다. "엄마 나 망고주스가 마시고 싶어!" 이미 아침부터 수박주스와 코코넛 아이스크림까지 먹은 상태라 또 사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덥고 습한 날씨에 계속 걸었더니 갈증이 나는 것은 우리 부부도 마찬가지였기에 한 잔 사서 셋이 나누어 마시기로 했다. 주문한 망고 주스를 받아 들고 가게 앞에 있는 작은 의자에서 마시려는데 갑자기 퍽 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난 곳에는 반쯤 쏟아진 망고주스 잔을 들고 주스 범벅이 된 채 서있는 율이 있었다. 아직 힘 조절을 잘하지 못하는 율이 주스가 담긴 투명한 플라스틱 뚜껑을 억지로 열려고 시도하다 옷에 와르르 쏟아버린 것이다. 옆에서 망고 주스를 기다리던 외국인들이 그 모습에 "Oh my god!" 하며 놀랐지만 율이 귀엽다는 표정이었다. 평소 같으면 "야!! 이게 뭐야!!"하고 버럭 소리가 나갔을 것 같은데, 눈앞의 장면이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서 그만 웃음이 나왔다. "하아...율아...이게뭐... 참나.ㅋㅋ" 남편도 너무 황당해서 같이 웃어버렸다. 눈동자를 굴리며 눈치를 보던 아이도 우리 둘이 웃는 것을 보더니 그제야 씨익 웃어 보였다. 외출 시엔 항상 아이들의 여벌 옷을 가지고 다니기에 그 자리에서 망설임 없이 율이의 옷을 갈아입혔다.  "진짜 너는 부모를 잘 만난 거 같아." 하며 옷 갈아 입히는 동안 아이에게 우리의 셀프 칭찬을 해댔다. 가게 앞 바닥에까지 주스가 쏟아졌다면 닦고 처리하느라 두배 세배 힘이 들었을 것 같은데, 그나마 아이 옷에만 쏟아진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 한숨 돌린 우리는 다시 의자에 앉아 남은 절반의 망고주스를 나누어 마셨다. 그리고 오후에는 방콕 시내 구경을 하고 싶어 MRT를 타러 이동했다. 그렇게 추억 가득한 짜뚜짝 시장과 아쉬운 이별을 하게 되었다.

옷 갈아 입은 후 개운하게 주스 타임을 즐기는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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