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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는 여행중 Jan 25. 2019

아이들과 방콕 사원 나들이

지난 여행 파헤치기 : 방콕 편 03

방콕까지 갔는데 유명하다는 사원 정도는 다녀와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었다. 5살 율이 사원을 좋아할까? 지루하다고 징징거리면 어떻게 하지? 하는 엄마로서의 걱정들. 하지만 다녀오고서야 미리 짐작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음을, 아이들은 자신의 방식대로 여행을 즐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날은 왕궁과 왓 를 둘러보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날이 아침부터 흐려있어서 혹시나 비가 내리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흐리기만 할 뿐 다행히 괜찮아 보였다. 왕궁까지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갈 수 있었지만 우리는 짜오프라야 강을 따라 유람선을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먼저 호텔 셔틀 보트로 사톤 선착장까지 간 다음 그곳에서 왕궁 근처 선착장까지 가는 유람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율이는 호텔에서 셔틀 보트를 타는 순간부터 이미 신이 났다. "엄마, 저기 지나가는 건 기름 싣는 배 아니야? 저건 아파트 아니야?" 하며 잠시도 쉬지 않고 눈에 들어오는 풍경들을 말로 나열하느라 바빴다. 유람선으로 갈아타서는 안내 방송이 나오는 걸 듣더니 "엄마, 이건 무슨 나라 말이야?" 검표원들이 표를 검사하는 걸 보더니 "우리 표는 어디 있어? 아줌마는 왜 표 검사를 해?" 하고 궁금증을 해소하느라 심심할 틈이 없었다. 꽤 오랜 시간 유람선을 타고 있었지만 이쪽 의자에도 앉아보고 저쪽 의자에도 앉아보며 구경하는 사이 마하랏 선착장에 도착했다.

배를 타고 짜오프라야 강을 거슬러 왕궁으로 가는 중

선착장에 내려서는 가로수길을 따라 왕궁을 향해 걸었다. 왕궁은 복장 규정이 있었기에 반바지 차림이던 남편은 길가에 파는 100바트짜리 코끼리 무늬 냉장고 바지를 하나 사서 갈아입었다. 그리고 걸으며 더위에 힘들어하던 율이는 멜론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주었더니 금세 조용해졌다.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 관광지이자 왕궁이기도 해 주변 곳곳에 태국 경찰들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삼엄하다기보다는 든든한 느낌이었다. 왕궁 입구 쪽 넓은 도로는 차가 다닐 수 없게 전체가 통제되어 있었다. 그리고 수십 개의 펜스로 사람들이 다닐 수 있게 길을 만들어 놓았다. 우리는 미로의 종착점을 찾아가듯 그 길을 따라 왕궁으로 들어갔다.


왕궁은 전체가 개방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입구부터 이어지는 왓 프라깨우(에메랄드 사원)를 중심으로 일부만 공개되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공사를 하고 있기도 했다. 왓 프라깨우는 동서양 각국에서 온 수많은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뾰족 뾰족하게 솟아있는 금색의 지붕들, 도깨비들이(실제로는 정확히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지만 율이와 우리는 이렇게 불렀다) 두 팔과 다리로 지탱하고 있는 듯한 모양의 , 화려한 무늬의 타일들과 황금색 타일들로 촘촘하게 장식된 건물들이 사원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동아시아 국가 쪽에서는 볼 수 없는 태국만의 화려함과 유니크함을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소박한 멋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절과 대조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신발을 벗고 대웅전 내부 들어가 불상과 조용히 기도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에 우리도 자연스레 말수를 줄이게 되었다. 그리고 나와서 대웅전 기둥 사이로 탑들을 조망해 보기도 하고, 사원을 돌아보며 탑의 도깨비들의 자세를 흉내 내어 사진을 찍어 보기도 하고, 섬세하게 장식된 건물의 벽과 담벼락을 한동안 들여다 보기도 했다. 율이도 처음 와보는 사원이 신기한지 열심히 이곳저곳을 따라다니며 구경했다. 하지만 가장 좋아했던 것은 나오는 길에 발견한 여러 대의 대포들과 태국 소방차였다. 가까이서 보고 싶다며 내 손을 잡아끌고 바로 코앞까지 가서 들여다보기도 하고 "엄마 나 여기서 사진 찍어줘!" 하고 적극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나의 예상과 완전히 다른 포인트에서 감명을 받은 것 같았지만 '아무렴 어때 이 여행을 즐겨주기만 한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왓 프라깨우와 왕궁에서의 우리 가족.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여행을 즐기는 중이다

왓 프라깨우와 왕궁을 보고 나와 왓 포로 가는 길이었다. 가져온 물은 이미 미지근해져 시원한 망고주스와 수박 주스를 사서 나누어 마시며 걷고 있을 때였다. 지도상으론 왓 포까지 직진만 하면 되는 것 같아 걷고 있었는데, 얼마를 더 가야 하는지 거리가 잘 가늠이 되지 않았다. 마침 율이 길가에 대기하던 툭툭을 보더니 "엄마, 아빠 나 다리 아파. 툭툭 타보고 싶어." 하며 쭈그리고 앉기 시작했다. 사실 나도 한번 타보고는 싶었는데 딱히 기회도 없던 터라 한번 타볼까? 하는 생각으로 왓포까지 가는 가격을 물어보았다. 운전수는 "아~거기?" 하며 조금 심각한 표정으로 300바트라고 한다. 거리도 잘 모르겠고 이 가격이 비싼 건지 아닌지 시세를 알 수 없어 망설이다, '에잇 모르겠다 경험으로 한번 타보자' 하고 툭툭에 올랐다. 붕~하고 출발하고 "우와, 율아 우리도 드디어 툭툭 타보네!" 하고 신나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출발한 지 1분도 안되어 도착했으니 내리라고 하는 것이다. 그제야 우리는 글로벌 호구가 되었다는 것을 눈치챘다. 이 금액에 이렇게 짧은 거리인 줄 알았다면 좀 더 고민해볼 것을. 하지만 금액을 OK 하고 탑승했기 하는 수 없이 약속한 금액을 지불하고 내렸다.


찜찜한 에피소드를 남기고 도착하게 된 왓 포는 방콕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이기도 하고 엄청나게 큰 와불상이 있어 매우 유명한 곳이었다. 우리도 들어서자마자 와불상이 있다는 건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일방 통행인 관람 방향을 따라 와불상을 둘러보았다. 엄청난 높이와 누워있는 불상의 길이, 발바닥의 자개 무늬 등에 감탄을 하며 돌아 나올 때쯤 율이가 "엄마, 저게 뭐야?" 하고 물었다. 와불상 뒤편으로 항아리 같은 것들이 벽 쪽에 죽 이어져있었는데, 그 안에는 동전들이 들어있었다. "동전함 같이 생겼는데 엄마도 잘은 모르겠네..." 하고 대충 설명하며 벗고 있던 신발을 신으려고 하는데, 율의 표정이 울기 직전이었다. 누가 그 항아리에 동전을 넣는 것을 보았는데 자기도 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남편과 린을 밖에 기다리게 두고 율이만 데리고 다시 와불상을 한 바퀴 돌았다. 내 주머니에 있던 동전 몇 개만 넣어보게 할 셈이었다. 하지만 다시 가 자세히 보니 거기에는 일반 동전을 넣는 것이 아니었다. 중간에 있는 동전 교환소에서 20 바트를 내고, 교환한 동전들만 넣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내 주머니 속 동전을 다 합해도 20바트가 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다시 나가 남편이 맡고 있던 가방에서 다시 20바트를 챙겨 또 한 번 들어갔다. 세 번째 입장 끝에 동전 그릇을 수중에 넣은 율이는 동전 함에 한 개씩 정성스럽게 동전을 넣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이것은 108개의 그릇에 동전을 넣으면서 소원을 비는 것이라고 한다. 의미도 모른 채 기계적으로 동전을 넣었던 율이는 마지막 한 개의 동전까지 다 넣은 후, 매우 흡족한 표정으로 와불상이 안치된 사원을 나설 수 있었다.

왓 포에서의 와불상과 동전 넣는 아들

왓 포의 다른 곳들을 돌아보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소나기는 금방 그쳤지만 또다시 비가 내리면 어쩌나 하고 마음이 급해져, 얼른 한 바퀴 돌아보고는 사원을 나와 점심을 먹으러 갔다. 우리가 가게 된 곳은 왓 포 근처에 있는 The Deck이라는 아시안 레스토랑이었다. 짜오프라야 강가에 접해 있는데 강 건너 정면으로 왓 아룬이 보여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좋은 곳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새벽 사원이라는 왓 아룬은 일정상, 아이들 컨디션상 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조금 아쉬운 마음이 있었는데, 왓 아룬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을 수 있다니 너무 마음에 들었다. 마침 우리가 갔을 때 왓 아룬이 잘 보이는 가장 강가 쪽 테이블이 운 좋게 비어있어 그쪽으로 자리했다. 사실 시원한 실내 자리도 있었는데, 왓 아룬 뷰를 포기할 수 없어 더위를 감수하며 이 테이블에서 식사를 했다. 볶음밥, 팟타이, 감자튀김 같은 음식들을 배부르게 먹고는 직원에게 왓 아룬을 배경으로 가족사진을 부탁했다. 그리고 여행 이후 이번 여행을 기념한 포토 앨범을 만들었는데, 그 표지로 들어간 사진을 얻었다.

The Deck에서 찍은 사진은 여행 이후 만든 포토 앨범의 표지가 되었다

밥을 먹고는 다시 유람선을 타고 사톤 선착장을 거쳐 호텔로 돌아갔다. 그리고 배와 툭툭도 타보고, 동전도 열심히 넣고, 주스와 아이스크림도 먹느라 피곤했던 율과 무더위 속에서 하루 종일 나에게 안겨 다니던 린은 달콤한 낮잠 타임을 즐겼다. 우리 부부도 모처럼만의 휴식을 취하며 다음 일정을 위한 에너지를 충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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