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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는 여행중 Jan 29. 2019

방콕, 가장 기억에 남는 짐 톰슨 하우스

지난 여행 파헤치기 : 방콕 편 04

조식을 먹자마자 물놀이를 하러 풀장으로 달려갔다. 사실 이틀 전, 흐리고 비가 내리는데도 풀장에 가고야 말겠다고 우기는 아들 덕분에 남편과 율이만 짧게 한 번 다녀온 터였다. 예상대로 그 날은 추워서 몇 분 물에 있지도 못했는데, 오늘은 날이 괜찮아 나와 린이까지 넷이 즐겨보기로 했다. 호텔 풀장은 짜오프라야 강이 내려다 보이는 6층에 있었다. 눈부시게 새파란 바다의 휴양지의 느낌과는 또 다른, 투박하지만 이국적인 풍경을 바라보며 물놀이를 하는 것이 색다른 느낌이었다. 매번 튜브만 타다, 처음으로 어린이집 형아에게 물려받은 퍼들 점퍼를 착용해본 율이는 초흥분 상태였다. "엄마 나 좀 봐! 아빠 나 좀 봐!" 하고 1초 정도 혼자 물에 뜨는 것을 수십 번쯤 자랑했다. 반면 유유자적 오빠 튜브에 몸을 맡긴 린은 혼자만 무릉도원에 있는 게 아닌가 싶은 표정으로 둥둥 떠다니며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풀장 조형물의 동작들을 흉내 내어 보기도 하고, 넷이 대롱대롱 매달려 이곳저곳을 떠다니기도 하고, 중간중간 간식을 먹기도 하며 물놀이 타임을 즐겼다.

신나게 물놀이를 즐기는 중

1시간 정도의 물놀이를 마무리한 후, 서둘러 외출 준비를 하고 향한 곳은 짐 톰슨 하우스였다. 미국인인 짐 톰슨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태국에 첩보원으로 파견되어 왔다. 전쟁 이후에는 태국에 남아 실크 사업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크게 성공을 거두며 세계적으로 '타이 실크'를 알린 인물이다. 휴가 기간 중 말레이시아로 여행을 간 후 행방불명되어 아직까지 생사가 확인이 되지 않고 있는데, 실종 직전까지 현재의 '짐 톰슨 하우스'에 실제로 거주했다고 한다. 짐 톰슨 하우스는 큰 쇼핑몰들이 가득한 BTS SIAM 역에서 한 골목 죽 깊이 들어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완벽하게 도시화된 것 같아 보이는 동네에 아직 이런 전통 건축물이 남아있다는 것이 의외였다. 서울 중심부에 자리한 북촌 한옥마을을 방문하는 외국인들도 아마 이런 기분 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입장권을 끊고 들어서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실을 뽑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었다. 손으로 물레를 돌리니 그릇 속에 둥둥 떠있는 누에고치들의 끝에서 희고 가는 실들이 죽죽 따라 올라왔고, 그 실들은 굵은 한 줄로 모아져 바구니에 담기고 있었다. 누에고치에서 실이 나온다는 이야기는 들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라 아이들보다는 우리 부부가 푹 빠져서 한참을 구경했다. 지금이야 기계로 많은 부분이 진행되겠지만, 예전에는 직물을 얻기 위해 이렇게 일일이 실부터 뽑아내는 작업을 했겠다고 생각하니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실을 뽑는 남자와 종이 팽이에 푹 빠진 율

마당으로 들어서니 왼쪽으로 가이드 투어를 신청하는 작은 집이 나왔다. 투어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으로 진행되어 선택할 수 있는데, 우리는 영어로 신청했다. 투어 시작까지 20여분이 남아 마당의 벤치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카운터에 모여있던 여성 가이드들 중 한 명이 율이에게 종이로 접은 팽이와 새를 선물했다. 거창한 것은 아니었지만 율이는 신이 나서, 바닥에 철퍼덕하고 앉아 팽이를 돌리는데 초집중 모드였다. 덕분에 기다리는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


시간이 되자, 태국 전통 의상을 입은 담당 가이드가 나와 "12 15분 영어 가이드 투어 예약하신 분들 이쪽으로 오세요." 하고 불렀다. 우리 그룹은 12~3명 정도였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모든 짐과 신발을 보관소에 맡긴 후 1층부터 돌아보며 함께 투어를 시작했다. 나무로 만든 붉은색 가옥은 건기와 우기가 있는 태국의 날씨를 고려해 전통 양식으로 지어졌다. 그래서인지 지붕과 처마, 창문 같은 것들이 다른 나라의 건물들과는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1층과 2층, 집 뒤편 마당까지 집안 곳곳을 돌며 짐 톰슨이 사용했던 가구와 그릇, 그와 관련한 자료들, 그가 모은 남아시아 골동품들을 직접 볼 수 있었다. 당장 사용해도 될 것 같이 깨끗하게 관리된 식탁이며 의자, 침대, 테이블 같은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주인이 없어진 물건들이라니 어쩐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율이는 아빠의 손을 잡고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궁금한 것은 우리에게 물어보았다. 그러다 가이드의 설명이 길어질 때면, 조금 앞서가며 구경하거나 왔던 길을 한번 더 다녀오기도 했다. 내가 안고 있던 린이 중간중간 보채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일행들에게 조금 떨어진 채 천천히 따라가며 구경을 했다. 건물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이 불가라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투어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재밌었던 것은 우리 그룹에 있던 어느 가족이었다. 영어와 스페인어를 섞어 쓰는 5인 가족이었는데, 6~7세쯤 되는 막내에게 전시된 물건을 만지지 말라고 계속해서 주의를 주는 엄마의 모습이 꼭 내 모습 같아 볼 때마다 웃음이 났다. 나도 투어 시작 후 몇 번이고 율이에게 주의를 주었기 때문이다. 다른 문화권의 부모들이 아이를 대하는 것을 볼 때면, 참 다르다 싶다가도 어떤 때는 또 너무 똑같아 절친한 육아 동지를 만난 듯 반가워지기도 한다.


30분 넘게 이어진 가이드 투어를 끝내고는 다양한 열대 식물들이 가득한 정원을 둘러보기도 하고, 한쪽에 자리한 작은 오두막에도 들어가 보았다. 그리고 나오는 길에 짐 톰슨 브랜드의 기념품 샵에 들어가 멋진 디자인의 실크 제품들을 구경했다.

짐 톰슨 하우스 마당에서 바라본 건물들의 모습

사실, 짐 톰슨 하우스는 크게 기대를 하고 방문한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까지도 울창한 나무들이 가득한 작은 정원과 그 속에 자리한 붉은 집의 모습, 뒤편으로 운하가 보이던 2층 방의 모습 같은 것들이 잔잔히 기억에 남아있다. 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던 화려한 황금색의 사원들 보다, 초록 나무들 속에 조용히 자리 잡은 전통 가옥 한 채가 내게는 더 강렬한 인상을 준 것 같다. 방콕에는 멋지고 럭셔리한 호텔들이 많이 있지만 대부분 서양식 시설인데, 우리나라 한옥집과 같이 전통 가옥을 체험할 수 있는 숙박 시설이 있으면 한 번쯤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누군가 방콕에 간다면 한 번쯤 이곳에 다녀와보아도 좋다고 꼭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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