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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는 여행중 Feb 11. 2019

아이들과 떠난 방콕 근교 반일 투어

지난 여행 파헤치기 : 방콕 편 05

이번 여행에서 꼭 가 봐야지 하고 마음먹고 있었던 곳 중에 하나는 수상시장이다. 사실 수상시장은 대학시절 친구들과 방콕 여행을 왔을 때 돈도 시간도 모자라 포기했던 곳이었어서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율이가 보는 유아용 책에서도 종종 사진과 설명이 나오는 곳이라, 아이도 직접 가 보면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대부분의 수상시장은 방콕 시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차를 타고 한 시간 넘게 가야 하는 교외에 위치하고 있어, 어린 두 아이들과 도전할 수 있을지가 고민이었다. 하지만 '반나절 정도는 아이들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용기 있는 생각으로 국내 온라인 여행사를 통해 담넉 사두억 수상 시장과 메끌렁 시장(위험한 기찻길)을 둘러보는 코스를 예약했다.


오전 8시, 집합 장소인 BTS ASOK역 맥도널드 앞으로 갔다. 흰색 봉고차 수십대가 주차장에 모여있었는데, 한눈에 '아, 여기서 대부분의 패키지 투어가 출발하는구나.' 하고 알 수 있었다. 여유 있게 도착해 우리의 예약자명을 확인하고 안내받은 봉고차에 미리 탑승해 기다렸다. 잠시 후, 엄마 아빠와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딸로 구성된 가족, 함께 여행 온 5명의 청년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한국어를 곧 잘하는 태국인 가이드가 조수석에 탑승하고 운전수까지 탑승하자 우리 봉고차는 바로 출발했다.


가이드 아저씨는 출발하자마자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오늘 어떤 일정으로 다닐 예정인지를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한국말이 조금 서툴렀지만 전달하려는 내용이 꼼꼼한 것을 보아 아마도 이 쪽 일을 오래 하지 않았을까 하고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가 탄 봉고차는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율이는 어른 벨트를 하고 있고, 린은 내가 아기띠를 해서 안은채 벨트를 하고 있었다. 두 아이가 카시트 없이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는 것이 너무 불안해서, 줄곧 얼른 도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오가는 차 안에서 아이들이 잘 버텨줄지가 걱정이었는데, 한참을 바깥 구경에 집중하던 율이 지겨워할 때쯤 미리 챙겨간 과자를 꺼내먹으니 시간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 시간 반 정도를 달려 담넉 사두억 수상시장에 도착했다. 가이드의 안내로 대기하고 있던 배에 올라타니, 잠시 뒤  붕~ 하고 큰소리를 내며 배가 출발했다. 열대 나무들 사이로 난 물길을 따라 배가 미끄러지듯 달렸다. 사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노 젓는 배 위에서 수상시장만의 이국적인 정취와 풍경을 볼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운전수가 운전하는 모터보트 배라니... 예상 밖의 모습이었다. 게다가 배에 달린 모터는 소리도 소리지만 매연이 엄청났다. 우리 배는 뒤쪽으로 연기가 나서 다행히 괜찮았지만, 지나치는 배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커먼 연기의 독한 냄새가 혹시나 아이들에게 들어갈까 계속 부채질을 해댔다.

담넉 사두억 시장에서 구경 중

담넉 사두억 수상 시장은 더 이상 현지인들의 생활공간은 아닌 듯했다. 배에 탄 모든 손님들은 수상시장을 구경하는 외국인 관광객이었고, 판매하는 제품들은 말 그대로 관광객들이나 사겠다 싶은 태국 여행 기념품, 옷과 가방, 소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수상시장 전체가 '만들어진 관광지' 같이 느껴졌지만, 배 위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을 경험한다는 것이 특별하고 재미있기는 했다. 누구든 태국만의 날 것의 문화를 접하길 기대하고 온다면 조금은 실망스러울 수 있겠다 싶었다.


차 안에서 가이드가 '판매자가 처음 제시한 가격에는 물건을 사지 마라. 꼭 두세 번 깎아서 사라!' 하고 팁을 준 터라, 웬만해서는 여기서 물건을 사지 말아야지 하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린이 빼고) 셋이 나누어 먹으며 눈으로만 시장을 구경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배의 주인과 가게의 주인이 연계가 되어 있는 듯했다. 물길을 조금 달리다 배 주인이 특정 가게에서 배를 멈추면 그 가게 주인이 물건을 보여주며 호객 행위를 하는 것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그리고 어떤 가게를 지나다 손님 중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는 눈치면, 가게 주인은 갈고리가 달린 기다란 장대로 배에 턱 하고 걸어 배를 자기 가게 쪽으로 잡아당기는 스킬도 발휘했다. 견물생심이라고 했던가. 이게 반복되다 보니 뒷자리에 앉은 가족도 이것저것 물건 값을 물어보고, 남편도 '율이 툭툭 모형 기념품 하나 사줄까?'하고 슬금슬금 구경하기 시작했다. 가이드의 지침대로 두어 번 가격을 깎아 플라스틱으로  툭툭을 구매했지만, 어쩐지 시세보다 비싸게 산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율이는 마음에 든다며 잘 가지고 놀았지만, 내구성이 별로였는지 이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수완나폼 공항에서 손잡이가 망가져버렸다. 결국 한국에는 가져오지도 못하고 바로 공항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시장은 물길 양옆뿐만이 아니라, 배 승하차장 옆으로 난 길을 따라서도 이어져 있었다. 그래서 배에서 내린 후, 집합 시간까지 남는 시간을 돌아보며 한 바퀴 걸어보았다. 하지만 배 위에서 보았던 물건들과 별반 차이가 없어서 구매하지는 않았다.


시장 모습과 코코넛 아이스크림 구입 중인 남편


다음 코스는 담넉 사두억 시장에서 차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메끌렁 시장과 역이었다. 메끌렁 시장은 기차선로를 가운데 두고 양옆으로 딱 붙은 재래시장이 실제로 운영되고 있는 곳이다. 선로를 사이에 둔 거리가 열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 만큼 좁았다. 그래서 열차가 지나가는 시간이 되면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고, 열차가 지나간 후 다시 문을 열어 영업을 이어가는 특이한 시스템이었다. 예전에 우리나라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이 곳이 '위험한 기찻길'로 소개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한국인 관광객들이 대부분이었다.


가이드가 우리를 내려준 곳에서 선로를 죽 따라 걸어가니 양옆으로 메끌렁 시장이 나왔다. 기찻길을 밟아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율이는 선로를 밟고 걸어가며 시장보다는 기찻길을 관찰하느라 바빴다. 시장의 대부분의 가게들은 어릴 적 5일 장에서 보았던 것처럼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바구니 위에 생선이나 과일을 쌓아 진열해두었다. 현지인들이 물건을 이리저리 살피며 구매하는 모습이 우리의 재래시장을 보는 것 같아 친근했다. 과일이나 야채를 손질하며 옆 가게 주인들과 깔깔대며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정겹게 느껴지기도 했다. 시장의 끝까지 걸어가니 메끌렁 역이 나왔. 지붕이 있는 작은 시골역이었다. 기차가 들어오는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율이와 우리는 선로의 가장 끝까지 걸어보기도 하고, 역의 이곳저곳을 구경하기도 하고, 가이드에게 선물로 받은 파인애플을 먹으며 잠시 의자에 앉아 쉬기도 했다.

매끌렁 시장과 역


"엄마 왜 기차는 안 와?" 하고 율이가 스무 번 넘게 물어봤을 때쯤, 연착으로 10여분 늦어진 기차가 재래시장 쪽에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들어오는 기차를 구경하느라 역사 안과 주변 일대는 갑자기 엄청나게 붐비고 있었다. 보아하니 메끌렁 역이 종점인듯했다. 기차는 재래시장 쪽에서 들어왔다 이 역에서 사람들을 싣고 다시 한번 재래시장을 지나 달리는 코스였다. 이 곳에서 우리는 가이드가 준 티켓으로 기차에 탑승한 뒤 세정거장을 가서 내릴 예정이었다.


율이는 기차를 보자 너무나도 신이 났다. 아빠 목마를 하고 기차가 들어오는 것을 구경하다가, 기차가 정차하자마자 올라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에어컨은 없고 천장에 달린 몇 대의 회전형 선풍기가 더위를 쫓아주는, 한마디로 '옛날 기차'였다. 창문은 모두 수동으로 여는 방식이었고, 의자는 쿠션감 없는 딱딱한 소재였다. 기차 곳곳에 옛 향수를 자극하는 요소들이 넘쳐났는데,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율이는 기차 안팎을 둘러보고 우리에게 자신이 아는 내용을 설명해주느라 입이 쉴틈이 없었다. "엄마 여기는 의자가 이렇게 같이 볼 수 있게(=마주 볼 수 있게) 되어있네.", "우리나라 기차는 창문이 안 열리던데 여기는 창문이 열려있네." 하는 식이었다. 이렇게 아이가 좋아하니, '정말 다행이다!' 하는 마음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시간이 되자 열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고 곧 재래시장에 들어섰다. 가게 주인들은 약속한 것처럼 좌판을 정리해서 안쪽으로 밀어 넣고, 문을 닫거나 천막으로 된 처마를 접었다. 척척척 움직이는 것이 잘 훈련된 한 편의 마스게임을 보는 것 같았다. 대단하다는 말보다는 신기하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듯했다. 율이는 바삐 움직이는 가게 주인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해주었다. 그리 길지 않은 시장 구간을 빠져나가자 기차는 조금 더 속력을 내더니 시골길을 달렸다. 열린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덜커덩덜커덩 진동을 느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높은 건물은 거의 보이지 않고, 가끔 보이는 사원의 모습과 처음 보는 모양의 울창한 나무들이 이곳이 태국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주었다. 그렇게 세 정거장을 달린 후 아쉬운 마음으로 기차에서 내렸다. 율이는 다시 출발하는 기차에게 "안녕, 기차야! 다음에 또 보자!" 하며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기차가 보이지 않게 되고서야 기다리고 있던 봉고차 쪽으로 갔다.

기차안과 밖의 모습들

ASOK역까지 돌아가는 봉고차 안에서 아이들이 다행히 잠을 자 주어 우리 부부도 잠시 쉴 수 있었다. 돌아보면 기대했던 것보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수상시장과 기대보다 재밌는 경험을 한 메끌렁 시장이었다. 짧은 투어였지만, 무엇보다 아이들과의 첫 투어가 무사히 끝난 것, 그리고 율이가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투어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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