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미의 왼쪽 눈 시력 저하로 인해서 드림렌즈를 착용하기 시작한 지 약 6주 정도가 되었다. 아직 열살 아가씨가 하드렌즈를 혼자 끼고 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되어 걱정을 했으나, 처음 병원에서의 시도에서도 곧잘 하고, 테스트하는 일주일동안에도 끼워주는 렌즈를 잘도 끼곤 하길래. 역시! 감탄하며 드림렌즈로 가보기로 결심했는데...
하루가 지날수록 공포감이 드는 것인지, 렌즈를 끼려고 하면 몸을 뒤틀고, 눈을 쉼없이 깜빡이고, 몸을 뒤로빼고 하면서 5초도 안걸리던 렌즈 삽입 시간이 30분씩 되는 것이 일쑤가 되었다. 렌즈를 끼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 둘에게 너무나도 고통스런 시간이었다. 가장 편안하게 맞이하고 싶은 휴식의 시간인 잠들기 전 시간과 가장 행복하게 맞이하게 하고 싶은 아침의 첫시간을 렌즈 하나 때문에 이렇게 괴롭고 힘들게 맞이해야 하는 것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다.
결국 내 입에서 먼저 '이거 관두자, 그만하자. 포기하고 싶다' 소리가 나오고 말았다. 아이는 눈물이 그렁그렁 찬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며, '포기하고 싶지 않아'라고 이야기했다.
포기는 오히려, 열살 꼬마 아가씨는 나보다 백배 더하고 싶지 않겠는가.
이 아이는 왜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하는가.
포기는 나쁜 것인가?
내가 지금 이 순간을 쉽게 지나가기 위해 마땅히 노력해야 하는 시간을 피하는 것인가?
대부분 무언가를 포기하려고 하면, 많은 조언들은 '얼마나 노력했어? 최선을 다했어? 포기해도 후회하지 않겠어?' 라는 질문들을 하겠지 싶었다.
이 작은 조각 하나를 눈 안에 넣기 위해, 우리 둘은 사력을 다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아이에게 좀처럼 화를 내 본적도 없는 나로서는, 무의식적으로 끓어오르는 짜증도 참아야했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아이의 몸의 반응, 정신적 괴로움을 이해하기 위해 수도 없이 아랫입술을 지긋이 깨물어야 했고, 그 사이로 흘러나오는 한숨을 들으며 나의 아이는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눈물을 꾹 참고 그 시간 버티고 버텨왔다.
렌즈를 넣고 나면 아이는 눌러담았던 눈물을 꿀꺽 삼키며 부러 밝은 목소리를 지어내며 이렇게 쉬운데, 매번 눈을 크게 뜨고 있으려고 마음 먹고 있는데 잘 되지 않는다며, 내일은 왠지 잘 될 것 같다고 나이가 서른 두살이나 많은 나를 위로한다.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두려움 뿐 아니라, '오늘은 엄마가 한숨을 쉬지 않았지?'하며 나의 마음까지 헤아려야 하는 아이의 사투가 매일매일 이어져오고 있다.
서른 두살을 먼저 살아본 나로서는, 아이에게 있어 '하루의 포기'는 '다시 시작'을 되풀이해도 결국 '포기하고 말것'으로 결론날 것이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그 '하루의 포기'를 최대한 미뤄보고 싶어서, 오늘까지만 오늘까지만 하면서 6주간의 지난한 밤과 아침을 맞이했다.
내 생에서도 '포기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항상 지니고 살았던 것을 문득 떠올렸다.
포기하면 안된다고 스스로에게 무던히 되뇌이며, 버티고 이겨내려고 노력해왔던 삶이었다.
마흔 두살이 되고서야 '포기하는 것'과 '버티어내는 것' 사이의 '내 줏대가 반영된 조율'을 해나가야 하는 힘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라고 깨달았는데.
이제서야 삶에 대한 이른 몇 발을 떼어내고 있는 열살 꼬마 아가씨에게는 '포기하는 것'보다는 '버티어 이겨냄'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세상이 그렇게 이야기해왔던 보편적인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기란 나쁜 것이고, 절대로 하면 안되는 것이다'라는 공식따위를 아이의 마음속에 심어주고 싶지 않다.
'포기'란 '최선'과 '합리적 판단'을 전제로 한 '댓가'이다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우리는 그간 최선의 노력을 해보았고, 이것을 지속할 경우에 우리가 얻을 댓가와 이를 내려놓았을 때 얻을 댓가를 비교해보고, 어느 것을 취하는 것이 우리의 삶에 궁극적으로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에 대한 합리적 판단을 하고 이를 내려놓았을 때 우리가 치러야 하는 댓가를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이, 마흔 두살의 엄마가 열살 딸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은 "포기해 마땅한 상황"이다.
그것이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게 될 "살아가는 방식"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것을 전해줘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서른 두살 차이 올리부와 에이미의 삶을 대하는 이야기들. 널 사랑하고 살아가는 나의 삶의 흔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