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하는 자의 성숙도, 지켜보는 자의 성숙도
지난 2월 24일 월요일부터, 오는 3월 22일까지 우리는 계속 재택근무 중이다.
회사 생활을 한 지 올해는 이십일년이 되는 해이다.
이 긴 시간 중, 나는 지난 십년간 그 어느 누구보다 탄력근무제와 재택근무제를 적극적으로 실행해왔다.
아이가 세살인 무렵, 새로운 회사로의 이직.
나에게 있어 그 시기는 질풍 노도의 시기였다.
모든 일상이, 모든 기준이 뒤죽박죽인 때였고, 나를 향했던 모든 우선순위 따위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던 때였다.
일도 좋았고, 아이도 좋았고, 가족도 좋았고, 사람들도 좋았다.
무엇 하나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었던 시절이 있었으나, 그 시기에 나를 지배했던 괴로움은, 그 어느 것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이었다.
재택 근무 제도, 탄력 근무 제도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글로벌 회사.
나에게 있어서 탄력 근무 제도는, 권리와 의무의 유기적 연결고리였다. 이뤄내고 싶은 게 많았고, 아이와의 시간도 지켜내고 싶었던 두 무게를 나만의 균형과 규칙을 몸에 배우게 해준 엄청난 기회였다.
그 곳에서 삼년의 시간이 지날 무렵, 회사는 한 걸음 더 나아간 시도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심지어 자율 좌석제를 도입했다.
자율 좌석제를 시행한 이유는, 언제 어디서나 내가 있는 곳이 바로 나의 오피스가 될 수 있다는 것.
반드시 물리적으로 함께 있어야 '일이 되는것'이 아닌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는 것.
우리가 일하는 세상은 그렇게 빠르게 진화하고 변화하고 있고, 그것에 기업은 어떻게 생존해갈 수 있는 지에 대한 커다란 실험이었다.
자율 좌석제는 사람들의 호불호가 갈렸다. 그리고 많은 질문을 받았다.
"자율 좌석제 하고 그러면 일이 되긴 해?"
"눈 앞에 안 보이는데 팀원들이 일하는지 어떻게 알아?"
"오, 그러면 맨날 땡땡이 쳐도 되겠네?"
"자율 좌석제 한다고 해서 정말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앉아? 팀끼리 대충 모여 앉겠지."
조직은, 그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의 생각과 행동으로 변화하고, 성장하고, 진화한다.
자율 좌석제를 시행했던 그 회사에서, 우리는 모두 많은 것을 배우고 습득했다.
"눈 앞에 보이는 출퇴근의 시간이 누군가의 업무를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
"주어진 자율이라는 것은, 스스로 책임을 다함과 등가라는 것을 깨닫는 성숙함을 요구한다는 것."
"일하는 과정의 모든 순간이 나의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순간이라는 것."
"진정한 다면적 평가가 이루어지기 위해 조직이 투자해야 하는 시간과 가치가 엄청나게 큰 것이라는 것."
"조직의 진화는, 회사와 구성원 사이 단단한 신뢰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렇게 우리는, 누구의 눈 앞에서 일하는 조직원이 아닌, 스스로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언제 어디서든, 내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 같은 농도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또 한번의 이직. 나의 열망을 좇은 선택.
지금의 이 회사를 사랑하는 이유는, 이 조직의 건강함 때문이라고.
그리고 그 건강함을 지키기 위해 우리 모두가 노력하는 그 '문화'때문이라고 천번씩 말하는 나다.
나는 매주 수요일에는 재택 근무를 한다.
지난 삼년간 지켜오는 나의 리듬이다.
나의 일하는 호흡, 일하는 리듬은 비단 수요일 하루만의 것이 아니다.
월요일, 규칙적으로 정해진 모든 미팅들은 월요일에 한다.
화요일, 회사 내의 사람들과 해야하는 1:1 미팅들은 화요일에 한다. 격주 1:1 미팅과 월간 1:1 미팅들을 통해서 우리는 지속적인 소통과, 새로운 일들을 만들어내기도,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수요일, 재택 근무 날에는 아이의 이동시간에 맞춰 '이동 범퍼' 시간을 제외하고는 집 - 학원 앞 카페 동선으로 모바일 워킹을 한다. 집중할 수 있는 일들을, Back-to-Back 미팅의 월요일 화요일을 보내고 쌓여있는 메일을 처리하고, 집중해서 작성해야 하는 긴 메일들이나, 문서 작업들을 주로 한다.
목요일, 조금 긴 팀런치 등, 외부 사람들과 만나야 하는 미팅들은 목요일에 한다.
금요일, 해결하지 못한 미팅들, 좀 더 긴 호흡이 필요한 장기 프로젝트들의 일은 금요일에 한다.
(이 리듬을 완벽히 지키지 못하기도 하지만, 이 프레임을 단단히 만드는 것이 나의 일하는 과정이다.)
내가 속한 이 '일하는 세상'에는 나 말고,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내가 가진 다짐이, 내가 하는 행동이, 내가 만든 변화가 비단 '나'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기 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그 다짐과, 행동과 변화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용기가 되길, 또 다른 다짐이 되길, 그리하여 더 나은 '일하는 세상'을 향한 변화에 기여되길 희망한다.
"재택 근무 한다고? 와 부럽다!"
"재택 근무는 근무는 없고 재택만 있다며?"
"사람들이 일하는지, 노는지 어떻게 알아?"
"드디어 재택! 내일 낮에 친구 오라고 해야지!"
"전직원 근무시간 내 메신져 앞 대기, 100% 온라인"
요새, 재택 근무라는 단어를 두고 하는 많은 이야기들이었다.
불편했다.
준비가 안된 조직들에 대한 실망과, 준비가 안된 사람들의 사고 방식과 태도에 대한 아쉬움.
내가 지난 십여년동안 해왔던 재택 근무는 결코 쉬운 날이 아니었다.
아이를 학교를 등교 시키고, 아이가 하교할 때까지 빠르게 일에 집중해야 한다. 딱 다섯시간이다.
그리고 아이의 합기도 가방을 들고 하교길 마중하여, 합기도 학원 앞 벤치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영상 회의를 하기도, 불꽃튀는 키보드 워리어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아이를 영어 학원에 데려다주고는 학원 앞 카페에 자리를 잡는다. 세시간동안, 또 한번 회의와 문서 작업들에 집중한다.
몇 번, 나의 팀원들은 나와 함께 나의 재택 라이프를 체험하기도 했다. 우리 모두가 입을 모아, 진짜 어려운 재택 근무라고 동의한다.
두 가지의 역할에 스위치를 꼈다 켜며 끊임없이 집중의 시간을 초고도의 집중력으로 해내는 것.
재택 근무는 "Working from Home"이다. 일하는 시간이다.
조직들은, 조직원이 어디에서 일하던지 (Working from anywhere, anytime) 그들을 신뢰하는 성숙함을.
구성원들은, 스스로가 어디에서 일하던지 (Working from anywhere, anytime)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는 것에 부끄러움이 없는 성숙함을.
기대한다.
지금의 이런 상황이 장기화되어가고 있으면서,
많은 조직들과 우리 모두가 성장통을 겪고 성장을 할 것이라고.
+
결코 집중할 수 없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 하고 있을 이 세상의 엄마, 아빠들의 워킹프롬홈을 응원합니다.
#목요일의글쓰기 #재택근무 #memyselfol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