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하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보내는 메세지

by 올리브

나는 자칭 '효녀'다.

내가 좋은 곳을 가도 엄마, 아빠, 동생생각이 나고 맛있는 걸 먹어도 가족과 함께 먹고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마음은 내가 자라온 척박하지만 따뜻했던 토양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난 것이다.


부모님은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린 20대에 결혼하셨다.

우리 집은 여유롭기보다 가난에 가까웠다.

바퀴벌레가 나오던 지하 방을 전전하며 수차례 이사를 다녀야 했다.

이제는 궁궐은 아니어도 네 식구 충분히 발 뻗고 잘 집으로 옮겨왔고,

부모님은 100평 남짓한 가게를 운영하신다.

그 과정은 두 분의 인생을 통째로 갈아 넣은 고군분투였다.

팍팍한 살림 속에서도 나랑 동생만큼은 배불리 먹이려 애쓰시던 모습이 어린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사랑만큼은 곱절로 받았기에, 나는 가족을 끔찍이 아끼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5년 전, 내가 먼저 자취를 시작하며 집을 떠났다.

남겨진 집엔 엄마, 아빠, 동생 그리고 강아지가 살았다.

그런데 이제 곧 동생마저 결혼하며 완전히 독립하게 된다.

사실 부모가 되어보지 않은 내게 '자식의 독립'이 갖는 진짜 무게를 알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카톡 메세지

늘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시던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낸 문자 한 통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자식을 번듯하게 키워 세상으로 보내고 가정을 이루게 하는 것이 부모에겐 큰 기쁨이지만,

동시에 그들이 감당해야 할 서운함과 아쉬움의 크기는 내가 상상하던 것 그 이상이라는 것을.

부모님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순 없겠지만, 그 먹먹함이 내게도 전해져 가슴이 아려왔다.


나의 첫 독립 역시 설렘으로 시작했지만 그 유효기간은 짧았다.

산더미 같은 빨래, 끝도 없는 설거지, 매 끼니 무얼 먹을지 고민해야 하는 일상.

이 모든 것을 엄마는 평생 혼자 짊어지셨다는 생각에 "우리 엄마, 정말 힘들었겠구나" 하는 뒤늦은 고백이 터져 나왔다.


동생의 야간 업무와 나의 독립으로 가족 외식은 점점 줄어들었다.

한 달에 한 번은 집에 가려 노력하지만, 동생까지 떠나고 난 뒤의 그 쓸쓸한 빈자리를 누가 채울 수 있을까. 부모님이 느낄 공허함이 벌써 걱정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독립은 나를 인격적으로 성장시켰다.

부모님의 노고를 몸소 체험하며 감사는 깊어졌고, 가족을 향한 그리움은 더 짙어졌다.

이제는 만나는 시간이 짧더라도 그 밀도만큼은 이전보다 훨씬 단단해질 것이라 믿는다.

최근 겪었던 갈등조차 결국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깊이 연결하고 싶어 하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었음을 이제야 안다.


나에게 가족은 삶을 지탱하는 뿌리다.

안정적인 회사를 나와 내 사업을 시작하고, 불안정함 속에서도 끊임없이 균형을 찾으려 애쓰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나 자신의 성공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부모님의 건강을 '돈'이라는 현실적인 제약 앞에 포기하고 싶지 않는게 가장 큰 이유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자식들이 집에 와서 "엄마, 김치 좀 해줘", "아빠, 이것 좀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는 소소한 순간들이 당신이 살아가는 행복의 원동력이라고.


서른네 살의 나는 여전히 부모님 댁에 가면 어린아이로 돌아간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해도 결코 미워하지 않을 유일한 내 편.

언젠가 사랑하는 부모님이 곁을 떠나시면 나는 무엇을 동력 삼아 살아야 할지 벌써 걱정이 앞서곤 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늘도, 내일도 나는 가족을 생각하며 살아갈 힘을 얻는다.

나에게 가족이란, 세상 그 어떤 단어로도 정의할 수 없는 거대한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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